감사원이 서울시와 강남구가 부딪쳐온 강남의 무허가 판자촌 구룡마을에 대한 개발방식 변경을 무효로 보기는 곤란하다며 사실상 서울시의 손을 들어줬다. 감사원은 표류하고 있는 구룡마을 개발사업에 대해 서울시와 강남구가 협의해 조속히 실행가능한 방안을 마련할 것도 촉구했다.
감사원은 27일 이러한 내용을 뼈대로 한 ‘구룡마을 개발사업 관리 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를 내놓았다. 감사원은 지난해 10월~11월 서울시장과 강남구청장 등이 잇따라 공익감사를 청구하자 올해 1~2월 서울시·강남구 등에 대한 감사를 벌였다. 시행자와 토지주가 각각 얼마나 개발이익을 얻는지 가늠하기 위해 국토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맡겨 개발이익 배분에 대한 분석도 했다.
감사원은 먼저, 서울시가 수용방식에서 일부 환지방식으로 바꾸면서 별도의 주민 공람을 빠뜨렸지만 “재공람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고 판례도 없어 법리 해석이 명백하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무효로 보기는 곤란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강남구는 서울시가 개발방식을 바꾼 뒤 주민 공람을 다시 하지 않아 주민 의견을 듣도록 한 도시개발법을 어겼다고 주장해왔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토지 매입비용을 줄이기 위해 토지 소유자에게 땅값 대신 일부 토지의 개발권을 주는 일부 환지방식을 주장해 왔다. 반면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환지방식으로 개발할 경우 대토지주에게 특혜를 준다며 지방자치단체나 건설사가 토지를 모두 사들인 뒤 개발하는 수용·사용방식(현금 보상)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시가 충분한 협의 없이 변경된 개발방식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 상정(2012년 6월)한 것이 도시개발법 위반이라는 강남구의 주장에 대해 감사원은 “지정·고시 과정에서 이견을 제시할 수 있었는데 뒤늦게 의견을 제기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또 다른 쟁점인 특정 토지주에 대한 특혜 논란에 대해선 판단을 미뤘다. “일부 환지방식이 특정 토지주에 대한 특혜”라는 강남구의 주장에 대해 감사원은 “개발사업이 구역 지정·고시까지만 진행된 상황에서 특혜 여부에 대해 판단하기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시는 특혜 논란등이 이어지자 환지규모를 애초 제시했던 18%에서 지난해말 2~5%로 대폭 줄였다. 감사원은 환지규모가 축소됨에 따라 전체 토지주에게 돌아가는 개발이익도 18%일 때 2169억원에서 2%일 때 310억원으로 줄어든다는 국토연구원의 추정액도 공개했다.
감사원은 이밖에 구룡마을에 주민등록이 등재된 1092 가구 중 저소득층 187가구를 뺀 905가구의 자산과 소득을 확인한 결과, 고액 자산가를 비롯한 174가구의 실제 거주 여부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강남구청장에게 전입 신고자의 실제 거주 여부 조사를 소홀히 한 관련자를 징계하도록 요구했다. 감사원은 또 이곳에 지을 임대아파트가 고액 자산가에게 분양될 우려가 있는데도 서울시가 실태 조사 없이 거주민 전체에 임대아파트 공급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서울시장에게 합리적인 임대주택 공급기준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구룡마을은 2011년 서울시가 수용방식의 개발 방침을 발표하며 개발 논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2012년 서울시가 사업비 부담 감소를 내세워 일부 환지방식 도입을 발표한 뒤 강남구에서 이에 반대하면서 진통을 겪어 왔다. 오는 8월2일까지 개발계획이 수립·고시되지 않으면 도시개발구역지정이 해제돼 개발 자체가 무산될 처지다.
서울시와 강남구가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수용해 도시개발구역 지정 해제 시한인 8월2일까지 합의점을 도출할 지 주목된다.
정태우 기자 windage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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