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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야속타 맹골수야…보고파라 우리 아이” 넋 달래는 씻김굿

등록 2014-06-29 20:28수정 2014-06-29 22:24

28일 오후 전남 진도군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 열린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을 위한 ‘씻김굿’ 공연이 열렸다. 진도군립민속예술단 단원들이 망자의 영혼이 극락으로 가는 길을 닦아주는 ‘길닦음’을 하고 있다.
28일 오후 전남 진도군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 열린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을 위한 ‘씻김굿’ 공연이 열렸다. 진도군립민속예술단 단원들이 망자의 영혼이 극락으로 가는 길을 닦아주는 ‘길닦음’을 하고 있다.
진도서 세월호 희생자 위한 공연
27년전 주민 안철호씨 위로했던 굿
단원고 학생 등 영혼 위로
관객들도 노잣돈 놓으며 슬픔 함께
“지척에 아이 두고 보지 못할 이내 심정. 보고파라 우리 아이 안 보이네 볼 수 없네. 엄마 아빠 외치며 부르는 듯 이내 가슴 사무치네.”

28일 오후 전남 진도향토문화회관 대공연장. 느릿한 중모리장단의 한소리(흥타령)가 검은색 무대에 낮게 퍼졌다. 소복 차림의 남도잡가 예능보유자 강송대(74) 선생과 제자 12명이 세월호 사고로 숨진 원혼들을 달랬다.

“야속타 맹골수야 무심타 병풍바위 피지도 못한 봉오리들. 온누리가 슬피 우는 이내 설움을 누가 알리.” 원혼의 한을 푸는 한소리는 원래 가사와 달리 단원고 아이들, 그리고 이들을 집어삼킨 맹골수와 병풍바위를 탓하는 내용으로 개사됐다.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은 세월호 사고 직후 중단했던 토요공연을 재개하며,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씻김굿’을 했다. ‘씻김’의 마지막 절차, 원혼을 저승길로 인도하는 ‘길닦음’. 관객들은 하나둘 무대로 나가 ‘노잣돈’을 놓고 갔다. 저승길을 대신한 무명필 위에 만원짜리 수십장이 놓였다.

험한 바다와 부대끼며 살아온 진도 주민들에게 죽은 이의 영혼을 달래는 씻김굿은 익숙한 풍경이다. 27년 전 진도 주민 안철호(당시 26)씨가 러시아 캄차카반도 남쪽 300㎞ 해상에서 숨졌을 때도 ‘넋건짐굿’과 씻김굿을 했다. 소설가 김훈이 과거 기자일 적에 안씨가 살던 진도 의신면 송군마을 앞바다를 다녀간 뒤 기사로 쓰기도 했다.

안씨는 4남2녀 중 넷째였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형제 중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해 3등항해사가 됐지만, 항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참변을 당했다.

27년이 지났다. 안씨의 고향집에는 막내아우(49)만 살고 있었다. 그는 형이 숨진 뒤 형이 다니던 해운회사에 들어갔지만 3년을 못 버티고 나왔다. 몸도 성치 못하다. 2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이웃들이 밥과 찬을 나눠주며 돌본다고 했다. “없는 가정에서 철호를 가르쳤는데 충격이 엄청 커부렀지. 가족들이 다 넋이 나가부렀어.” 이웃 하양호(61)씨는 “안쓰럽다”고 했다. 아직도 실종된 이들을 찾지 못하고 진도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가족들이 겹쳐 보였다.

27년 전 ‘기자 김훈’의 글을 보면, 안철호씨의 씻김굿 때 누나의 몸으로 들어온 안씨의 넋은 이렇게 따지며 울었다고 한다. “어머니 나는 돈 땀시 죽었소. 돈으로 대체 무얼 하자는 것이요. 돈으로 날 살려주오. 어머니.” 김훈은 “그는 돈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생명 위에 자행되었던 폭력들을 낱낱이 말했다”고 썼다. 27년 뒤 세월호 사고의 큰 원인도 돈 때문이었다. 당시 안씨의 씻김굿은 ‘큰당골’로 진도씻김굿 예능 보유자였던 김대례씨가 했다. 김씨는 2011년 타계했다.

이날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 열린 씻김굿은 실내에서 여는 무대공연에 적합하도록 순서와 의례를 다듬었다.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은 해마다 10차례 정도 씻김굿 공연을 한다. 사고로 숨진 이들의 가족이 요청을 하면, 직접 상가를 찾아 씻김굿을 하기도 한다. 김오현 예술감독은 “팽목항에서 넋을 건지는 의식과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씻김굿을 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실종자들을 다 찾지 못한 상황이라 조심스럽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75일째인 29일, 아직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가 11명이다. 진도/글·사진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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