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원 사회2부 기자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볼 권리, 경관권은 어느 정도까지 보장되어야 하나? 서울시민들은 이미 그 경관권의 상당 부분을 내놓고 있는지 모른다. 한강변에 병풍처럼 서 있는 수많은 고층 아파트들을 보라. 그나마 최근 들어서는 아파트 재건축을 심의하는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차별화된 건축 외관까지 따질 정도로 경관권은 조금씩 확대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재산권 등에 비하면 여전히 소홀히 다뤄지는 권리인 것이 사실이다.
무대를 조금 바꿔보자. 역사문화재는 빽빽한 고층빌딩 경관으로부터 어느 정도까지 보호받아야 할까? 불행히도 서울 한복판에 있는 세계유산 종묘가 그 질문의 대상이다. 더욱 애석한 점은 이 질문을 던진 것이 재산권 행사를 요구하는 민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시 산하 기관인 에스에이치(SH)공사는 오세훈 시장 재임 시절인 2009년 8월 최고 122.3m 높이의 빌딩 여러 채를 종로구 예지동 ‘세운 4구역’에 짓겠다고 했다. 세운 4구역은 종묘 외대문 앞 종묘광장과 도로 하나만 사이에 두고 있는 곳이다.
종묘는 높은 나무 등으로 주변 도심과 격리돼 있다. 그래서 종묘에 들어서면 경건한 분위기 속에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까지 준다. 이런 점을 고려해 문화재위원들은 종묘의 중심건물인 정전에서 바라볼 때의 경관권을 두고 심의를 벌이고 있다. 시행사인 에스에이치공사는 첫 심의 이후 10번이나 빌딩 높이를 낮추거나 계획을 수정해 문화재위원회 심의(소위 포함)를 받았지만 아직 통과하지 못했다. 현재 공사가 제시한 55~70m 높이의 개발계획은 정전에서 볼 때 건물 3~4개 층이 종묘 주변 나무에 가려지지 않은 채 드러나 보이는 수준이다.
공사는 이 높이를 양보하지 않을 것 같다. 개발비 등을 회수할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에스에이치공사가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상급 기관인 서울시 때문이다. 서울시는 2008년 공사 쪽에 일을 맡기며 “사업 추진 과정에서 경제적인 손실 등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여 추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란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는 경관권과 수익성 등의 사이에 놓인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할 당사자다. 하지만 서울시는 문화재청이 적절히 잘 판단해줄 것이라며 뒷짐만 지고 있다.
그런데 문화재위원회의 관심사는 오로지 정전에서 볼 때의 경관권뿐이다. 서울시가 돈을 들여 역사복원 작업을 벌이고 있는 종묘광장에서의 경관권 등은 논의 대상조차 아니다. 권한을 남용하는 건 아닌지 우려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얼마 전 만난 문화재청 전직 고위관료는 “계속 똑같은 개발계획이 제출되면 문제의식을 가진 문화재위원들이 하나둘 지쳐 나가떨어지고, 결국 그 계획이 통과된다”고 말했다.
나는 종묘의 경관권에 무게추가 실리길 바란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온 종묘제례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종묘가 세계유산에 등재된 주요 이유도 이것이다. 종묘제례 행사 때 왕의 행차가 시작되는 종묘광장까지 복원되면 정말 굉장할 것 같다. 하지만 그곳 바로 앞에 고층빌딩이 우뚝 서 있다면? 제사가 재현되는 정전 앞에 육중한 빌딩의 3~4개 층이 눈에 띈다면? 조선시대의 감성을 느껴보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타임머신은 작동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신 그 빌딩에 들어갈 수 있는 여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은 아름다운 종묘와 종묘제례 행사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것이다.
음성원 사회2부 기자 e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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