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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내의 대소변을 받을 때…마음속 악마가 소곤소곤

등록 2014-07-18 18:58

[토요판] 가족
중증환자, 그녀를 사랑해
▶ 끊임없이 재발하는 난치병 아내를 돌보는 일은 순애보 드라마처럼 현실에서 쉽지 않습니다. 병원비로 통장은 말라붙고 가정에 닥쳐온 어려움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는 허약해집니다. 아내의 입원으로 친척집에 맡겨진 자녀들은 어린 나이에 “인생이 너무 힘들다”고 울며 이야기합니다. 아내를 그만 포기하라는 강렬한 유혹은 매일 남편의 마음속에 찾아와 뱀처럼 똬리를 틉니다. 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일이 잘 안 풀리고 꿈이 퇴색되어 가면서 나는 조급해졌다. 욕심대로 안 되면 화풀이 대상은 아내이자 아이들이었다. 살림이나 돈 씀씀이, 아이들 공부, 때로 위생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사실 분노의 바닥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올 때 꿈꾸던 전원생활은 예상과 달랐다. 아이들 셋을 먹이고 입히며 만만찮은 생활비를 벌어오느라 육신은 지쳐갔다. 불황으로 직장은 위태로웠고 늘어나는 빚에 대한 불안도 똬리를 틀었다.

사람들은 그럴 때 스트레스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퍼붓는다. 폭언으로, 폭력으로. 힘들고 슬픈 일을 나눈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만만하고 후환이 두렵지 않아서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해? 이건 사는 게 아니야, 연명하는 거지, 연명!” 그렇게 들기름도 안 넣고 들들 아내와 아이들을 볶으면서 살다 7년 전 아내가 몸져누웠다. 염증으로 신경이 죽고 몸이 굳어가는 다발성 경화증이었다.

신경 굳어가는 다발성 경화증
평생 못 고친다는 희귀 난치병
난 직장 그만두고 수발들었다
주변 사람들은 포기하라 했다

병원 생활 5년이 지나면서
사지마비가 조금씩 풀려갔다
사랑이 뭔지 이전엔 몰랐는데
아내가 아프며 깊이 알았다

호전과 재발을 10여차례 반복하며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보따리 싣고 떠도는 동안 집도 직장도 폭풍 맞은 자리처럼 황폐해졌다. 치료약도 없어서 평생 못 고친다는 희귀 난치병 판정을 받았다. 몸의 기능은 전기 꺼지듯 하나씩 꺼져갔다. “못할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애 엄마는 포기하고 직장 복귀해서 아이들이나 챙겨야 되지 않을까?” 직장도 못 나가고, 학교 다니는 3명의 아이들을 친척 집에 맡겨 방치 상태로 사는 꼴을 본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생활비는 고사하고 병원비도 바닥난 사람이 사지마비되어버린 중증환자 아내 대소변을 받으면서 버티는 막막한 꼴을 보다 못해 하는 말이었다.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해요? 포기 안 해요. 못 해요!” 나는 고개를 저었지만 자꾸 솔깃해졌다. 돌아누우면 따라오고, 병원비 청구서를 손에 받아 쥐면 또 생각이 났다. 이러다 애들까지 다 죽이는 건 아닐까? 정말 아내를 포기하고 남은 가족이라도 살아야 하는 거 아닐까? 중환자실을 들어갈 때는 ‘이번에 혹시 끝이 나는 건 아닐까? 그러더라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드는 나 자신에게 철렁 놀라 머리를 흔들었다. 내 속에 악마가 들락거리는 걸까? 아내는 방광 세균 감염으로 소변 주머니조차 찰 수 없어 소변을 직접 빼내야 했다. 어두운 밤, 6인용 병실에서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조심조심 소변을 빼내다 이불과 환자복을 적시는 날도 많았다. 아내가 잠이 들면 병원 인근 숲으로 나가 울다 소리치고 미친 사람처럼 노래를 불렀다. ‘신이여! 발길에 차이는 돌부리가 너무 많아요. 뼈와 살 한 점 속에 있는 기름마저 짜내서 불을 밝혀야 하나요? 말라붙은 정서, 비어버린 통장.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해마다 오는 봄이 참 미웠다. 노랗게 피어가는 춘삼월, 산수유꽃 사진이나 봄의 화면이 텔레비전에 나올 때는 미움이 커졌다. 우리는 감옥살이처럼 콘크리트 병실에서 해를 보내는데 참 잔인하게도 봄은 해마다 왔다. 우리는 여전히 문밖에도 못 나가는 생활의 계속이었으니 산수유만 미운 게 아니라 가을 단풍, 여름날의 바닷가, 성탄절의 들뜬 분위기, 명절과 연말연시 이 모든 것이 얄미웠다. 이것들은 각각 떨어져 살아야 하는 가족 모두에게 몹시 힘든 마음을 안겨주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내가 죽어 세상에 없는 꿈을 꾸었다. 빈 침대 곁에 내가 하루 종일 넋이 나간 사람처럼 허탈하게 있었다. 꿈속에서 창밖으로 지는 노을을 보며 ‘나도 그냥 죽고 싶다’ 그렇게 눈물을 그렁거렸다. 뒤척이다 잠에서 깨니 거짓말처럼 아내가 누워 자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난 아내에게 살아서 이렇게 곁에 있어주어 정말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꿈 이야기와 함께. 그렇게 아내는 어느새 아프기 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큰 자리로 머물게 됐다.

병원 생활이 3년, 5년 지나면서 달팽이가 지구에서 우주의 안드로메다로 가는 것처럼 아주 조금씩 아내의 사지마비가 풀려갔다. 목도 못 가누고 밥도 못 떠 먹고 내가 침대에서 대소변을 받던 상태에서 자기 손으로 안경도 걷어 올리고 가려운 곳도 긁을 수 있게 됐다. 그사이 아이들은 극도의 시험대에서 저마다 조금씩 이겨나갔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방치된 막내딸은 ‘미친 중학교 2학년’이라는 사춘기 시기에 강가를 따라 걷느라고 수업을 거부해 학교에 비상이 걸렸다. 그런 막내도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 갔다. 사랑이 무엇인지 이전에는 몰랐는데 아내가 아프면서 오히려 깊이 알았다. 내 위주의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고 고마워하면서 내 삶을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사랑의 샘터는 아내였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결혼 후 20년이 넘도록 자기 삶을 가족을 위해 미루었다. 이제는 내가 아내에게 돌려줄 차례다.

가족은 나무와 같다. 밤낮을 보내면서 여물어가고, 비와 바람을 견디며 튼튼해진다. 여름과 겨울 혹독한 날씨를 넘기면서 쑥쑥 자라난다. 그 세월들이 뿌리를 깊게 하고 열매를 맺도록 한다는 것이 닮은 점이다. 우리 가족들은 이제 아주 사소한 일로는 쉽게 흔들리지 않고 불평하지 않게 되었다. 나도 아내에게 뭘 해달라고 내 맘을 먼저 알아달라고 떼쓰지 않고, 아내도 내게 자주 고맙다고 말한다. 다른 남자들은 너무 힘들어 병든 아내를 버리기도 한다는데 안 그래줘서 고맙다고. 우리 가족들이 자라고 있다. 밤낮 비바람과 혹한과 더위를 넘기고 세월이 길어지면서 더더욱. 7년간 쓴 일기를 아내에게 주면서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마요”라고 말했다. 70억 인구 중에 나를 만나 살아주어 고맙다고.

뒤늦게 사랑에 눈뜬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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