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4200만원 빚내 양파 농사 지어 1100만원 수입

등록 2014-07-20 19:39수정 2014-07-20 22:08

전남 무안군 해제면 입석마을의 나태주씨가 직접 쌓아올린 양파 더미 앞에 서 있다. 나씨는 이 양파를 수확한 지 한달이 넘도록 팔지 못하고 있다.
전남 무안군 해제면 입석마을의 나태주씨가 직접 쌓아올린 양파 더미 앞에 서 있다. 나씨는 이 양파를 수확한 지 한달이 넘도록 팔지 못하고 있다.
시장 개방에 우는 채소 재배농들

정부대책 불구 양파값 폭락 계속
도로마다 산처럼 쌓아놓고 한숨
고추·마늘 등도 30~70% 떨어져
“양파값, 12년전과 엇비슷” 허탈
지난 16일, 전남 무안군 현경면에서 해제면으로 가는 도로 곳곳에 ‘양파산성’이 늘어서 있었다. 양파 망 1400여개를 밭과 맞닿은 갓길에 한달째 쌓아놓고 있는 입석마을 나태주(65)씨는 지난해 양파 농사를 시작하면서 3000만원을 빚졌다. 나씨는 종자, 퇴비, 농기계, 인건비에 들어간 돈을 갚을 길이 막막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지난해 한 망에 1만원이던 양파값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재고 물량을 시장에 풀지 않는 ‘시장격리’, 수매 등 대책을 쏟아내는데도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다. 나씨는 “얼마 전 중간상인이 한 망에 4200원을 불렀는데 도저히 줄 수가 없었다. 3000원을 부르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25가구가 양파 농사를 짓는 입석마을 나광운(59) 이장은 “200망 생산에 딱 150만원이 든다. 한 망에 7500원 이상이 돼야 본전인데, 다들 빚더미에 앉았다”고 했다. 2003년 이후 처음으로 양파 수매에 나선 정부가 제시한 수매가는 6500원으로 농민들이 말하는 최저생산비에 못 미친다. 수매를 위해서는 광주까지 보내는 운반비까지 든다.

양파 수확 뒤 콩이나 여름배추, 참깨 등이 빼곡히 자라야 할 무안에서는 텅 비어 있거나 잡초만 무성한 밭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이은자(50)씨는 “다른 농사를 지으려면 또 그만큼 돈이 들어간다. 농사는 움직이면 빚이라 아예 농사를 안 짓는다”고 했다. 양파 농사 때 농기계를 빌려 쓴 돈 6만원을 갚지 못한 노인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통상 6월에 수확한 양파는 저온창고에 넣었다가 12월에 팔기도 하는데, 농민들은 한 망에 2000원씩 하는 보관비조차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고추, 마늘, 무, 배추 등 다른 채소류 재배 농가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이런 품목들은 지난해보다 30~70%까지 가격이 하락했다. 지난 10일 고추, 마늘, 양파 재배 농민 1만여명이 서울 여의도에서 궐기대회를 연 것도 이 때문이다.

농민들은 가격 폭락이 시장개방 때문이라고 한다. 4200만원의 빚을 내 1만여평에서 양파 농사를 지은 뒤 겨우 1100만원을 손에 쥐었다는 한 부부는 “농민도 계산을 못하지만 정부도 계산을 못한다. 작년에 양파값 좀 비싸다고 수입을 한다더니 너무 많이 했다”고 말했다. 실제 농식품부는 6만7000t의 양파 재고량이 소진되지 못한 것을 가격 폭락 원인으로 꼽는데, 지난해 양파 수입량이 6만5000t이었다. 마늘 재고량도 4만8000t으로 수입량 4만4000t과 큰 차이가 없다. 수입량만큼 재고가 남아도는 것이다.

지난해 수입 양파의 91.4%, 마늘 전량은 중국에서 들어왔다. “한국 김치를 더 많이 수입하겠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선물’을 농민들이 반기지 않는 이유다. 강정준 한국마늘산업연합회 위원장은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김치가 약 1만2000t인데, 중국에서 수입되는 김치가 13만~15만t이다. 한-중 자유무역협정이 농가의 이익으로 돌아올 리가 없다”고 했다.

시장개방 혜택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농민들의 열패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세 남매의 아버지인 무안의 박광순(40)씨는 “농사를 처음 시작하던 12년 전 양파값이 지금도 비슷하다”며 허탈해했다. 박씨는 “인건비를 비교해 보면 당시 일당이 3만원이었고, 지금은 14만원이다. 정부가 물가를 잡으려고 농산물 가격을 억지로 낮추는 게 아닌가 모르겠다”고 했다. 농식품부 통계를 보면, 2007~2012년 도시근로자 평균 가구소득이 4387만4000원에서 5390만8000원으로 1000만원 넘게 오르는 동안 농가소득은 3196만7000원에서 3130만1000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무안/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