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무안군 해제면 입석마을의 나태주씨가 직접 쌓아올린 양파 더미 앞에 서 있다. 나씨는 이 양파를 수확한 지 한달이 넘도록 팔지 못하고 있다.
시장 개방에 우는 채소 재배농들
정부대책 불구 양파값 폭락 계속
도로마다 산처럼 쌓아놓고 한숨
고추·마늘 등도 30~70% 떨어져
“양파값, 12년전과 엇비슷” 허탈
정부대책 불구 양파값 폭락 계속
도로마다 산처럼 쌓아놓고 한숨
고추·마늘 등도 30~70% 떨어져
“양파값, 12년전과 엇비슷” 허탈
지난 16일, 전남 무안군 현경면에서 해제면으로 가는 도로 곳곳에 ‘양파산성’이 늘어서 있었다. 양파 망 1400여개를 밭과 맞닿은 갓길에 한달째 쌓아놓고 있는 입석마을 나태주(65)씨는 지난해 양파 농사를 시작하면서 3000만원을 빚졌다. 나씨는 종자, 퇴비, 농기계, 인건비에 들어간 돈을 갚을 길이 막막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지난해 한 망에 1만원이던 양파값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재고 물량을 시장에 풀지 않는 ‘시장격리’, 수매 등 대책을 쏟아내는데도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다. 나씨는 “얼마 전 중간상인이 한 망에 4200원을 불렀는데 도저히 줄 수가 없었다. 3000원을 부르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25가구가 양파 농사를 짓는 입석마을 나광운(59) 이장은 “200망 생산에 딱 150만원이 든다. 한 망에 7500원 이상이 돼야 본전인데, 다들 빚더미에 앉았다”고 했다. 2003년 이후 처음으로 양파 수매에 나선 정부가 제시한 수매가는 6500원으로 농민들이 말하는 최저생산비에 못 미친다. 수매를 위해서는 광주까지 보내는 운반비까지 든다.
양파 수확 뒤 콩이나 여름배추, 참깨 등이 빼곡히 자라야 할 무안에서는 텅 비어 있거나 잡초만 무성한 밭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이은자(50)씨는 “다른 농사를 지으려면 또 그만큼 돈이 들어간다. 농사는 움직이면 빚이라 아예 농사를 안 짓는다”고 했다. 양파 농사 때 농기계를 빌려 쓴 돈 6만원을 갚지 못한 노인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통상 6월에 수확한 양파는 저온창고에 넣었다가 12월에 팔기도 하는데, 농민들은 한 망에 2000원씩 하는 보관비조차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고추, 마늘, 무, 배추 등 다른 채소류 재배 농가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이런 품목들은 지난해보다 30~70%까지 가격이 하락했다. 지난 10일 고추, 마늘, 양파 재배 농민 1만여명이 서울 여의도에서 궐기대회를 연 것도 이 때문이다.
농민들은 가격 폭락이 시장개방 때문이라고 한다. 4200만원의 빚을 내 1만여평에서 양파 농사를 지은 뒤 겨우 1100만원을 손에 쥐었다는 한 부부는 “농민도 계산을 못하지만 정부도 계산을 못한다. 작년에 양파값 좀 비싸다고 수입을 한다더니 너무 많이 했다”고 말했다. 실제 농식품부는 6만7000t의 양파 재고량이 소진되지 못한 것을 가격 폭락 원인으로 꼽는데, 지난해 양파 수입량이 6만5000t이었다. 마늘 재고량도 4만8000t으로 수입량 4만4000t과 큰 차이가 없다. 수입량만큼 재고가 남아도는 것이다.
지난해 수입 양파의 91.4%, 마늘 전량은 중국에서 들어왔다. “한국 김치를 더 많이 수입하겠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선물’을 농민들이 반기지 않는 이유다. 강정준 한국마늘산업연합회 위원장은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김치가 약 1만2000t인데, 중국에서 수입되는 김치가 13만~15만t이다. 한-중 자유무역협정이 농가의 이익으로 돌아올 리가 없다”고 했다.
시장개방 혜택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농민들의 열패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세 남매의 아버지인 무안의 박광순(40)씨는 “농사를 처음 시작하던 12년 전 양파값이 지금도 비슷하다”며 허탈해했다. 박씨는 “인건비를 비교해 보면 당시 일당이 3만원이었고, 지금은 14만원이다. 정부가 물가를 잡으려고 농산물 가격을 억지로 낮추는 게 아닌가 모르겠다”고 했다. 농식품부 통계를 보면, 2007~2012년 도시근로자 평균 가구소득이 4387만4000원에서 5390만8000원으로 1000만원 넘게 오르는 동안 농가소득은 3196만7000원에서 3130만1000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무안/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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