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온유에게…” ‘하늘나라’로 보낸 조희연의 편지

등록 2014-07-24 17:01수정 2014-07-24 17:07

조 교육감, 친구 구하려다 희생된 여학생에 편지
편지는 진도 팽목항 ‘하늘나라 우체통’에 보내져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은 24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친구들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생 양온유(17)양에게 편지를 써 진도 팽목항 ‘하늘우체통’에 보냈다. 온유양은 4월16일 참사 당시 갑판 위로 빠져나왔다가 친구들을 구하려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간 뒤 숨진 채로 발견됐다.

조 교육감은 이날 오후 트위터에 띄운 ‘온유에게’로 시작하는 편지에서, 노란 리본을 달면서 “미안해, 잊지 않을게”를 되뇌었지만, 100일이 되도록 진상 규명과 근본적 대책 마련에 진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미안하다”고 썼다.

그는 사람이 먼저인 교육, ‘경쟁’보다 ‘협동’을 가르치는 학교로 바꾸기 위해 제대로 된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며 “세월호 304분의 넋으로 언제든 곁에서 우리를 다잡아달라”고 호소했다. 조 교육감은 편지 전문과 함께 봉투·본문을 찍은 사진을 싣고 인편으로 하늘우체통에 보냈다고 적었다.

온유양의 어머니는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나 감사하다던 딸 고맙고 감사했고 진짜 많이 사랑한다’는 편지를 딸에게 보낸 바 있다.

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9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세월호 정부 공식 합동분향소를 찾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당선인이 조문 후 유가족 텐트 앞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 2014.6.9 /연합뉴스
9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세월호 정부 공식 합동분향소를 찾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당선인이 조문 후 유가족 텐트 앞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 2014.6.9 /연합뉴스
  

▷ 조희연 트위터 글 전문 

온유에게

그날, 2014년 4월16일,

참사가 벌어진 날,

다친 동료를 버려두고 어른들이 속옷 바람으로 도망쳐 나올 때,

시시각각 가라앉는 배 주변에서 어른들이 허둥대고만 있을 때,

온유야,

넌 친구들의 만류도 뿌리친 채 “살려 달라”는 비명 소리를 따라 객실 안으로 내려갔지. 닷새 뒤에 넌 차가운 시신으로 우리 앞에 돌아왔구나.

바보같이 순백한 네 영정 앞에서, 우리는 부끄러워서 눈을 감고 울었단다.

경쟁에서 이기는 법만 가르쳐 온 선생들이라서,

욕심을 위해서는 타인의 생명도 유린하는 어른들이라서,

의로운 길보다는 평탄한 길만 찾아 요리조리 살아 온 늙은이들이라서,

팽목항, 안산, 서울, 전국 곳곳에 노란 리본을 달면서 수없이 되뇌었단다.

“미안해, 잊지 않을게.”

 

오늘, 2014년 7월24일,

대참사 100일,

우리의 눈물은 어느새 흔적 없이 말랐고, 희망의 리본은 진작부터 변색되기 시작했단다. 부끄러움도 아픔도 씻은 듯 사라지고, 0416은 달력 속에 하나의 사건으로 앙상하게 남아 있는 것 같구나. 이젠 분향소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나오고, “유족이 무슨 감투냐”고 비아냥대기도 하는구나. 진상 규명과 근본적인 대책 마련 쪽으로는 아직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 하고 있는 형편이란다.

온유야,

그저 또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나보다. 하지만 ‘슬퍼하지만 말자, 이제 시작이니까.’ 너희들의 희생을 목도하면서 자성하는 어른들도 많아졌으니까. ‘사람이 먼저인 교육’을 만들어가자고 학교 안팎에서 뜻을 모으고 있어. 고등학교 간 격차 해소와 ‘상향평준화’를 위해서 제도를 개혁하기 시작했고, ‘경쟁’보다는 ‘협동’을 가르치는 학교로 바꾸려는 중이야. 특히 제대로 된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전국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온유야,

물론 아무 것도 이루어진 것은 없단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을 테고 갈등과 대립으로 혼돈이 몰아치겠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의 가슴 속에서 별이 되어 지혜와 용기를 주려무나. 아니, 우리가 게으르고 나약해질 때마다, 또 다시 우리가 평탄한 길로 가려는 유혹에 빠질 때마다 꾸짖어다오. “슬퍼하지도 말고, 겁내지도 말라.”고 가르쳤던 것처럼 세월호 304분의 넋으로 언제든 곁에서 우리를 다잡아다오. 이젠 네가 우리의 스승이니까.

  

양온유 님을 기리면서

  

2014.7.24

서울시교육감

조희연

  

* 본 편지는 인편으로 팽목항 하늘우체통에 보낸 편지에 전달합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