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서울역사 안에 있는 ‘여행 장병 라운지’ 유리벽에 ‘국방 헬프콜 1303’ 포스터가 붙어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육군 28사단 보통군사법원(재판장 이명주 대령)이 맡은 윤아무개(21) 일병 사망 사건 재판은, 한마디로 ‘허술하고 한가하게’ 뻔한 결론을 향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사건의 진상이 폭로된 뒤 일반 시민과 취재진이 몰려든 5일 공판(4차 공판) 이전까지 28사단 보통군사법원은 세 차례 공판을 열었다. 10일 <한겨레>가 단독 입수한 세 차례 공판조서를 보면, 5월23일 1차 공판에서는 이아무개 병장 등 기소된 가해병사들의 신원 등을 확인하는 인정신문과 증인신청 등이 이뤄졌다. 군검찰은 윤 일병을 사망에 이르게 한 4월6일 폭행 현장에 있었던 김아무개 일병 등 목격자 2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가해자인 지아무개 상병의 변호인은 폭행 사실을 처음으로 간부에게 알린 김아무개 상병 등 2명을 신청 증인명단에 올렸다. 재판장은 군검찰 쪽 증인을 우선 2차 공판에 부르기로 하고, 변호인 쪽 증인신문은 ‘추후에 기일을 지정하겠다’고 했다.
한달 뒤인 6월27일 열린 2차 공판에는, 그러나 가장 중요한 목격자인 김 일병이 출석하지 않았다. 그 대신 사망 사건과 관련 없는 폭행 목격자 1명만 증인으로 나왔다. 4월6일 폭행 당시 의무반에 입원해 있던 김 일병은 폭행 사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목격자다. 군검찰이나 재판부의 ‘노력’에 따라 단순 상해치사가 아니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가능성 등을 따져볼 수 있는 핵심 증인인 셈이다. 그러나 군검찰은 김 일병에 대한 추가 증인신청을 하지도 않았고, 재판부도 불출석 사유나 출석 가능 여부 등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대신에 군검찰은 윤 일병의 부검의를 증인으로 신청하는데 그쳤다. 지 상병의 변호인은 4월6일 오전 폭행 장면을 목격한 이아무개 상병을 3차 공판의 증인으로 신청했다.
7월10일 열린 3차 공판에는 부검의만 증인으로 나왔다. 재판장은 증인신문만 한 뒤 이날 공판을 끝냈고, 8월5일을 모든 심리를 종결하는 ‘결심공판’일로 잡았다. 이날을 마지막으로 추가 심리 없이 선고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핵심 증인인 김 일병에 대한 신문도, ‘추후에 기일을 지정하겠다’던 증인들에 대한 신문도 없이 재판을 끝내려 한 것이다. 김 일병은 ‘천식과 부모의 반대로 재판에 불출석’한 뒤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에 ‘조기 전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가해병사 쪽 변호사가 주범인 이아무개 병장의 살인죄 적용을 주장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 변호사는 1·3차 공판 당시 “윤 일병이 이 병장의 아버지가 조폭이라는 얘기를 한 뒤 폭행 양상이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전까지는 이 병장이 생명과 지장이 없는 허벅지 등을 폭행한 반면, 그 이후에는 가슴과 복부에 폭행이 집중된 상황이 수사기록에 나와 있다. 이 병장에게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3차례 공판 중 가장 ‘날카로운’ 지적이, 군검찰이나 재판부가 아니라 전혀 뜻밖에 변호인 쪽에서 나온 것이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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