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군 인권침해 관련 진정 사건 4건 중 3건은 ‘각하’ 처리된 것으로 나타났다. 각하는 ‘조사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조사하지 않고 종료’했다는 뜻이다. 집단구타로 숨진 28사단 윤아무개 일병 사건 역시 ‘진정인이 취하를 원한다’는 이유로 인권위 진정이 각하(<한겨레> 8월7일치 1면)됐는데, 인권위의 이런 관행적 업무 처리가 사건이 터지면 축소·은폐에 급급하는 군의 행태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9~2013년 인권위에 접수된 군 인권침해 관련 진정은 모두 1177건이다. 이 가운데 무려 889건(75.5%)이 ‘조사할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각하됐다.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인정돼 긴급구제나 권고 등 구제 조처가 이뤄진 ‘인용’ 사건은 75건(6.4%)에 그쳤다.
진정 각하 사유를 보면 ‘진정인이 취하한 경우’가 507건(57.9%)로 가장 많았다. ‘사건 발생 1년이 지난 뒤 접수’됐다는 이유로 각하된 건수는 160건(18.3%)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사건이 발생한 날로부터 1년이 지나서 진정한 경우’에는 각하할 수도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수사 중 또는 종결된 경우’에 해당돼 각하된 사례는 87건(9.9%)이었다.
진정 사건 중 상당수가 진정인의 취하로 각하되지만 인권위가 그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는 전화 통화나 구두로 조사관이 물어보는 정도다. 진정인의 판단을 도울 구체적인 사실관계나 정보를 제공하기 힘든 구조다. 인권위 관계자는 11일 “취하서를 서면으로 받는 경우도 있지만 번거롭기 때문에 대개 전화로 취하 의사를 확인하고 조사관이 보고서를 쓴다. 보고서에 진정 취하 이유를 따로 적도록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윤 일병 사망 사건 역시 윤 일병 가족이 먼저 전화를 걸어 진정 취하를 요청하지 않았다. 인권위 조사관이 먼저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조사 종결 의사’를 보였다는 게 인권위의 설명이다. 현재 윤 일병의 유족은 ‘인권위에 진정 취하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군대나 구금시설은 민간인의 정보접근성이 지극히 제한돼 있는 폐쇄적인 조직이다. 이 때문에 진정인이 진정 취하를 원한다 하더라도 취하에 이르는 과정에 보이지 않는 압박이나 압력, 회유 등은 없었는지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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