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를 불법 유통한 텔레마케팅 업자와 이를 영업에 이용한 가짜 법무사가 재판에 넘겨졌다. 불법 유통되는 개인정보가 어떻게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텔레마케팅 업체를 운영하는 정아무개(36)씨는 2012년 4월부터 지난해 7월18일까지 개인정보 판매상에게 약 100만원을 주고 2만여명의 이름과 연락처 등이 담긴 ‘내구제 데이터베이스’를 샀다. ‘내구제’란 ‘나 스스로를 구제하려는 사람들’의 줄임말로, 개인정보 유통업자들이 대부업체 등에 대출 상담을 한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다. 대부업체나 개인회생 신청 대행업체 등에 잠재적 고객 명단인 셈이다.
정씨는 텔레마케터 6명을 고용해 명단에 있는 이들에게 전화를 돌려 개인회생 신청을 원하는지 물었다. 무작위로 ‘개인회생 신청을 돕는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회신이 오면 전화로 상담하는 ‘오토콜’ 방식도 병행했다. 이렇게 추려낸 개인회생 신청 희망자는 78명이었다. 정씨는 이들을 법무사사무소 사무장 황아무개(42)씨에게 소개해주고 1인당 50만~60만원씩 소개비를 받았다. 정씨는 다른 법무사사무실 사무장에게도 명단을 넘겨주고 총 9856만원을 챙겼다.
정씨에게서 개인회생 신청 희망자 78명을 소개받은 황씨는 1인당 수임료 150만~160만원을 받고 법원에 개인회생 신청을 대신 해줬다. 다른 업자한테서도 개인회생 신청 희망자를 소개받은 황씨는 모두 1609명의 신청을 대행해주고 25억7000만원의 수임료 수입을 올렸다. 황씨는 김아무개 법무사에게 이른바 ‘자릿세’로 매달 200만원을 주고 김 법무사 이름을 딴 사무실을 운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14일 “김 법무사는 출근도 하지 않아 황씨가 독자적으로 사무실을 운영했다. 황씨는 변호사 자격은커녕 법무사 자격도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중앙지검 개인정보유출범죄 합동수사단(단장 이정수)은 정보통신망법 위반 및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정씨와 황씨를 구속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1차로 유출된 개인정보로는 큰 수익을 올리지 못하지만, 정보가 유통·활용되면서 불법수익이나 피해 규모가 커진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단순 불법유출·유통 범죄보다는 개인정보를 활용해 큰 수익을 올리는 이들에 대한 수사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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