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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가장 적나라한 대한민국을 보았네

등록 2014-08-22 19:07수정 2014-08-23 10:03

<한겨레> 토요판에 71주간 매주 두 쪽 전면씩 실렸던 대하역사만화 <인천상륙작전>이 끝났다. 윤태호 작가는 전작 <이끼>에서 당위를 찾았고 <미생>에서 설득을 역설했던 것처럼,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집요하리만큼 한국전쟁을 부른 원인에 주목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한겨레> 토요판에 71주간 매주 두 쪽 전면씩 실렸던 대하역사만화 <인천상륙작전>이 끝났다. 윤태호 작가는 전작 <이끼>에서 당위를 찾았고 <미생>에서 설득을 역설했던 것처럼,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집요하리만큼 한국전쟁을 부른 원인에 주목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만화 ‘인천상륙작전’을 보내며]
▶ 송이버섯이 먹기 싫다고 칭얼거리던 꼬마 철구는 원자폭탄의 버섯구름과 함께 찾아온 해방을 갑작스레 맞이합니다. 그날 백주대낮의 거리에서 철구 삼촌 상배는 흉악한 살인을 저지릅니다. 2013년 3월30일치 <한겨레> 토요판에서 그렇게 출발했던 윤태호 작가의 대하역사만화 <인천상륙작전>이 1년5개월 만에 오늘 71화를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한국 일간신문 사상 처음으로 두 페이지 전면을 할애한 파격 속에서 한국 현대사의 이면을 정면으로 겨누었던 이 만화에 관해 되짚어보았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이 만화 <인천상륙작전>으로 되는 데 걸린 시간은, 아마도 5년 이상이다. 윤태호 작가가 차기작 아이템을 거론할 때 인천상륙작전은 언제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는 깊은 밤에 맥아더 장군이 영흥도 물길에 발을 딛는 순간까지를 시간 단위, 분 단위로 쪼개고 다각도로 전개하는 스타일리시한 군사액션물을 만들고 싶다던 부가설명은 취재량이 증가할수록 조금씩 변모하며 오늘 최종화를 맞은 <인천상륙작전>의 모습이 되었다.

해방은 갑자기 찾아왔다. 태어나서 내 나라를 가져본 적 없는 민초에게는 대한독립 만세 외침이 어리둥절했고, 어딘가 망설임이 있었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갑자기 굴러들어온 독립은 대다수의 국민과 소수의 위정자에게도 비슷한 무게의 혼란을 선사했다. 고개를 숙여야 할 사람이 바뀌고 타도해야 마땅한 면면들이 바뀐다. 천지가 개벽했다. <인천상륙작전>은 굳이 한국전쟁이 아닌, 해방 직후에 출발선을 긋는다. 작가는 한국전쟁 자체를 그리기보다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부터 설명하고 싶었다. 전작 <이끼>에서 당위를 찾았고 <미생>에서 설득을 역설했던 것처럼, 집요하리만큼 결과를 부른 원인에 주목한다. 전쟁이 일어나고, 북한 인민군의 남침과 국군의 후퇴, 전진이 반복되는 전쟁 자체의 양상은 창작자 입장에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다.

“아주 커다란, 대한민국 역사라는 원작이 존재하고, 나는 각색을 하고 있는 입장이다. 엄중한 이야기인 탓에 집중하기 위해 시선을 좁히지 않으면 안 됐다. 선택한 것이 시대를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였고,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말글은 깨쳤지만 장사엔 젬병인
가장 안상근과 억척스런 인천댁
생계형 친일파라 할 안상배와
코흘리개 철구의 가족사를 통해
소시민의 다양한 유형을 만났다 

‘오! 한강’ 이후 한국현대사의
이면까지 정면으로 마주한
최초의 만화로 기록될 작품
만화 속의 1950년은 모든 것이
침몰하는 현재를 거울처럼 비춰

“세상만 바뀌었지…사람은 그대로 아니냐고!”

윤태호 작가의 그림
윤태호 작가의 그림
거시적 흐름에 파묻혀 보이지도 않을 한 가족사를 끄집어냈다. 공부에 재주가 있어 말글은 수월히 깨쳤지만 아버지가 남기신 전답을 말아먹을 정도로 장사에는 수완이 없고, 책상머리에만 앉아봤지 막일할 체력도 없는 가장 안상근과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 억척스레 잡히는 일을 했던 아내 인천댁, 코흘리개 아들 철구가 <인천상륙작전>의 얼굴이다. 일제강점기 소학교에서 조선말을 했다 얻어맞은 뒤 폭력을 극도로 두려워하게 된 상근은 인천에서 서울로 온 뒤에도 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아내에게 의탁하거나, 재력 있는 친일파 영감의 해결사가 되어 이른바 ‘(적극적) 생계형 친일’ 행각으로 살아가는 동생 안상배가 물어다 주는 일로 겨우 입에 풀칠만 하고 산다.

<인천상륙작전>의 초반부는 해방 전후 친일파의 발 빠른 행동양식의 변화와 생존 자체를 위한 정치적 판단과 행동이 어떤 과정을 겪으며 막 새로 시작하려는 나라의 근간에 스며들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춘 채 없는 듯 못 들은 듯 개인의 안온을 위해 아무것도 탐하지 않았던 상근과 친일의 꽁무니를 쫓다 해방이 되자 바로 친일파를 숙청하자 외치며, 그의 과거를 폭로하려는 자를 백주대낮 대로에서 칼로 짓이기고 살아남는 상배는 정확히 대척점에 선 채 격랑의 시대를 살았던 소시민의 다양한 유형을 품어낸다. 친일파와 독립운동파는 헤쳐 모였다가 좌익과 우익 세력으로 갈라지고 해방이 되고 단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켜켜이 쌓여온 수많은 문제들은 결국 전쟁으로 귀결된다.

천지개벽이 일어나고 또 일어나는 동안 상배는 “계절이 바뀌면 옷을 바꿔 입듯이” 변절해 더욱 적극적으로 목을 내밀고 현재 거리의 주인에게 충성을 바친다. 사람을 칼로 베었던 꺼림칙한 감촉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지만, 수라의 길로 들어서 달리기 시작한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주인이 바뀔 때마다 고개를 숙여야 할 곳이 바뀌었구나, 하릴없이 순응하던 쪽에 가깝던 상근 역시 타인을 협박해서 이익을 취하고, 부패한 재력가가 더욱 많은 재물을 취할 수 있게 돕는다. 제가 살기 위해, 가족을 살리기 위해. 미군과 친일파와 우익이 뒤엉켜 국민을 멸시하고 나라를 반으로 쪼갤 때, ‘먹고사니즘’보다 중요한 가치는 모두가 멀찍이 뒤로하고 만다.

혹자는 <인천상륙작전>의 역사가 너무 편향된 시선으로 정리된 것이 아닌가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예컨대 한국전쟁에서 자행된 수많은 학살은 비단 미군의 손을 잡은 정부만의 탓은 아닐 텐데, 낮에는 좌익을 처형하고 밤에는 우익의 목을 가져가는 어지러운 시절이었는데 하고 말한다. 이에 작가는 “<인천상륙작전>은 지극히 보수적인 입장의 만화다. 정부와 우익 세력이,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했을까에 대한 이야기가 핵심이다. 결과에 대한 행동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고 말한다.

허영만 화백의 <오! 한강>(1987)은 당시 안기부의 청탁으로 만든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생의 반공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만화는 주인공 이강토가 해방 후 공산주의에 심취해 월북하지만 다시 남한으로 내려와 민주주의의 품에 안긴다는 줄거리로, 이념과 혁명에 대한 철학적이고 밀도 있는 고찰로 오히려 ‘운동권’ 대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오! 한강>의 열혈 독자들은 군사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일구어냈다. 비록 모래알 같은 개인이라 할지라도 역사와 정치적 이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 사람의 정치관이 곧 인격일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면 <인천상륙작전>은 “세상만 바뀌었지… 사람은 그대로 아니냐고!”라는 상배의 일갈을 차근차근 증명해 나가듯 시간을 훑어간다.

다른 성향의 형제는 정도의 차이일 뿐 세상의 혼탁한 사정에 이리저리 부유하지만 그럴 필요 없는 자들은 공고히 뿌리를 박고 모두가 평등한 나라에서 영원한 지배를 하고, 현재에 이른다. <인천상륙작전>은 <오! 한강> 이후 한국 현대사의 이면까지 정면으로 마주한 아마도 최초의 만화일 것이다. 작가는 한국전쟁에서 가장 인상적인 포인트, ‘인천상륙작전’을 기치로 내세워 한국전쟁에 관심 없는 요즘 독자를 끌어들이는 장치로 삼았다. “한국전쟁을 잊힌 과거 정도로 생각하는 젊은 독자에게,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진행 중임을 보여줄 생각이다. 세대 간 갈등 역시 최근 나타난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 과거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란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2013년 3월29일 한겨레 인터뷰)

‘태백산맥’과 ‘오! 한강’을 안 본 독자라면…

윤태호 작가는 철구네 가족으로 대표되는 고통스러운 민생, 역사적 사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의식하며 작업했다고 한다. “그때 이렇게 힘들었다는 것만이 드라마틱하게 비치는 것을 원치 않아 영화사에서 들어오는 판권계약 건도 모두 고사했다. 있었던 일과 그에 따른 결과가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걸 환기시켜주는 것도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등장인물의 픽션적인 상황보다, 픽션을 경험하던 순간 역사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아주길 원했기 때문에 출처를 밝히고 전문서적을 인용했고 관련 인물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작가의 말은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과 동일선상에서 읽힌다.

<한겨레> 토요판에서 연재한 <인천상륙작전>은 나흘의 간격을 두고 온라인 포털 사이트 ‘네이트’에도 실렸다. 신문과는 달리 실시간으로 누리꾼들의 댓글이 달리며 만화를 소비하는 독자들이 <인천상륙작전>을 대하는 태도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한국전쟁 전후의 역사를 목격하지 못한 젊은 층이 주로 웹툰의 독자라는 것을 고려하면 비교적 작가의 의도대로 “교과서 뒷면에 사실로서 존재하는 역사”를 보고, 지난 세대의 필독서와도 같았던 <태백산맥>과 <오! 한강>을 소비하지 않는 새로운 세대에게 새로운 역사의 거시담론을 제시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왜곡된 사고방식으로 작품에 접근하며 원색적 비난을 일삼으며 대화가 불가능한 극우 청년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시대의 격랑을 이기지 못하고 상배는 그리운 어머니를 품에 안고, 상근과 인천댁 역시 생을 이어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부모의 시신 앞에 망연자실 주저앉고 전쟁고아가 된 철구는 주한미군의 눈에 띄어 입양을 가면서 <인천상륙작전>은 막을 내린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철구네 가족은, 사라진다. 그들이 본 적도 없는 저 위의 누군가가 내린 판단과 결정의 대가는 우리들의 해체, 아니 소멸이었다. 2014년의 대한민국에서도 껍데기만 다를 뿐, 본질은 같은 일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인천상륙작전>의 1950년은 현재를 거울처럼 비춘다. 모든 것이 침몰해가고 있는 지금 이곳의 대한민국에서, <인천상륙작전>은 지난 세대의 <오! 한강>처럼 과거에서 현재까지 우리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만화가 된 것이다.

임지희 만화웹진 에이코믹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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