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합의 파기 선언 없이 ‘투쟁’
‘3자 협의체’ 촉구에 새누리 ‘뒷짐’
여당-유가족 직접 대화에 ‘뒷전’
‘3자 협의체’ 촉구에 새누리 ‘뒷짐’
여당-유가족 직접 대화에 ‘뒷전’
세월호 특별법 정국이 표류하는 원인은 철저한 진상규명에 거부감이 있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완강한 태도 탓이 크다. 하지만 그동안 새정치민주연합이 여당과의 협상 과정에서 결정적 실수를 하며 갈팡질팡하다 중심을 잃은 것도 한몫했다. 여기엔 그동안 야당을 대표해 협상을 이끌어온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박 원내대표를 포함한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유가족이 동의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하라’라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새누리당을 향한 이 문구는 새정치연합 스스로를 향한 말처럼 비친다. 박 원내대표는 두 번이나 여당과 특별법 협상을 타결했으나, 그때마다 유가족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사전에 유족들과 충분한 소통을 하지 않은 채 서둘러 합의를 했다가 비판을 키웠다.
박 원내대표는 2차 합의 직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또다른 재협상은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유족들의 반대로 3차 협상이 불가피해졌다. 또다시 협상에 나서려면 2차 합의를 파기하겠다고 분명히 밝혀야 하지만 어물쩍 넘어갔다. 박 원내대표가 자신의 협상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합의해놓고 왜 이러느냐”는 새누리당의 반론에 새정치연합 전체가 논리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박 원내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조차 “자신이 아무리 최선을 다했더라도 유족들이 거부하고 국민들이 못 받겠다고 한다면 그건 실패한 거다. 깔끔하게 ‘내가 협상에 실패했다. 2차 합의는 파기한다’고 분명히 밝혀야지, 그냥 3자 협의체 하자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이 얘기를 박 원내대표에게 했는데도 별로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2차 합의안이 틀어진 뒤 박 원내대표가 꺼낸 카드는 여야와 유족이 함께하는 ‘3자 협의체’였다. 그는 새누리당이 이를 거부하자 즉각 강경투쟁 방침을 정하고 행동에 들어갔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25일부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에서 조를 짜 밤을 지새우며 ‘국회 거점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국회에서 매일 밤 모이는 ‘의총 투쟁’이 얼마나 지속될지, 어떤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의원은 “광화문에 나가거나 시민들과 함께하는 것도 아니고, 왜 우리끼리 매일 밤 국회에 모여야 하느냐”며 혀를 찼다.
박영선 원내대표는 27일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도 “3자 협의체는 야당과 유가족 대표가 충분한 협의를 통해 가장 현실적이고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야당의 요구는 들은 척 않고 유족과 직접 대화에 돌입했다. 유족들과 여당이 일대일로 만나면서 야당은 자연스럽게 뒤켠으로 물러났다.
일단 박 원내대표는 “세월호 특별법을 쟁취해야 한다”는 논리로 자신의 거취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는 리더십이 취약한 박영선 체제를 흔들 경우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새정치연합 내부 논리도 작용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이 이처럼 계속 지지부진하게 흘러갈 경우 앞으로 여야 관계는 물론 야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 또한 두고두고 내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박 원내대표는 현재 당내에 퍼져 있는 ‘대안부재론’과 ‘단결투쟁론’의 부력으로 간신히 숨을 쉬고 있다. 지금은 결연한 모습으로 강경투쟁을 촉구하고 있지만, 세월호 정국이 지나가면 언제든 그에 대한 책임론은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이유주현 기자 eidgna@hani.co.kr
박영선의 입장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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