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없는 진보>
진중권 “비과학적이며 보수적이기까지…”
박권일 “진보의 분열에 혁혁히 기여할 것”
박권일 “진보의 분열에 혁혁히 기여할 것”
‘진보 싸가지론’을 둘러싼 온라인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2일 트위터에 “진보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에 던질 메시지가 없다는 것”이라며 “싸가지 환원론은 비과학적이며, 심지어 보수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강준만 교수의 신간 <싸가지 없는 진보>에 대한 반박이다.
강 교수는 <싸가지 없는 진보>에서 구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이 도덕적 우월성을 보수에 대항하는 ‘무기’로 활용하면서 대중적 지지를 잃었다고 비판했다. 옳고 그름의 대결로 치환하면서, 자신이 옳다는 도덕적 우월감에 빠져 ‘싸가지 없이 호통치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 ▷ 관련 기사 : 강준만 “잘난 척만 하는 ‘진보’는 필패다” )
진중권 교수는 이에 대해 진보의 패인은 ‘전달 방식이 아닌 콘텐츠의 문제’라며 강 교수의 논리를 정면 반박했다. “진보든 개혁이든 김대중-노무현 이후 ‘시대정신을 읽어내는 능력을 상실”해, 복지나 경제민주화 등의 의제를 새누리당에게 빼앗겼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싸가지가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싸가지가 있어도 그 좋은 싸가지로 대중에게 할 말이 없다는 것”이 진 교수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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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싸가지론’에 대한 논쟁은 본격적으로 불붙을 모양새다. 박권일 칼럼니스트는 자신의 페이스북( ▷ 박권일 칼럼니스트 페이스북 바로가기 )에 “새누리와 새정치연합 사이의 소위 ‘중도층’에게 강준만이나 김규항이 다 진보인데, 결론적으로 ‘싸가지 없다’는 저 고급스럽기 짝이 없는 비판이 중도층에게 엄청난 호응을 얻을 것 같지 않다. 되레 ‘저 자식들 정신 못 차리고 또 싸우네 어휴’라는 욕이나 안 들으면 다행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바로 그 순간 강준만의 ‘싸가지’ 논변은 진보의 분열에 혁혁히 기여하며 자가당착에 빠진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강 교수의 정치적 세계관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민주주의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인데, 시민을 정치의 주체가 아니라 정치 소비자로만 바라본다는 것”이라며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수사는 평범한 시민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고, 시민들을 철저히 정치상품의 소비자로, 정치라는 장의 호객대상으로 고정해버린다”고 지적했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국민 절반 이상이 진보가 아닌데 내재적 접근법에 매몰되면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공감 능력이 나와 같은 수준이 아니라고 한심한 인간으로 몬다면 ‘싸가지’로 귀결될 수 있다”며 “이 책을 계기로 큰 논쟁이 시작되었으면 한다”고 페이스북( ▷ 이근 교수 페이스북 바로가기 )에 썼다.
정치와 ‘도덕성’에 대한 논쟁은 현재 영미권에서도 뜨거운 화두다. 뉴욕 스턴 경영대학원 교수인 조너선 하이트는 저서 <바른 마음>에서 “이 시대 중요한 문제들은 모두 옳음과 옮음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느 한쪽이 옳고 다른 쪽이 ‘틀린’ 이념적 전투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진보는 보수를 ‘수구 꼴통’ ‘일베충’이라고 무시하고, 보수는 진보를 ‘싸가지 없다’ ‘감성 팔이’라고 매도하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 현실에서, ‘진보 싸가지론’ 논쟁이 어디로 불을 지펴갈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 진중권 교수 트위터 전문
강준만 “잘난 척만 하는 ‘진보’는 필패다”( ▷ 관련 기사 : 강준만 “잘난 척만 하는 ‘진보’는 필패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상황을 좀 안이하게 보는 듯. 진보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에 던질 메시지가 없다는 것. ‘민주화’는 87년 이후 어느 정도 실현되었기에 대중의 욕망을 사로잡지 못하고, ‘통일’은 북한의 변화가 없는 이상 개성공단이 할 수 있는 최대치....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에게 진보의 의제를 모두 빼앗겼죠. 분배의 측면에선 복지와 경제민주화, 성장의 측면에선 창조경제... 그 좋은 의제들, 선거용 의제로 새누리당에 의해 소모되어 버렸죠. 그 사이에 새정연(민주당)에선 내놓은 슬로건은 없고...
진보정당은 낡은 NL이라는 낡은 이념 하나 처리 못하고 허우적거리다가 결국 이석기 사태 만나 산산조각이 나고... 이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즉 진보든 개혁이든 김대중-노무현 이후 ‘시대정신’을 읽어내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
쉽게 말하면 싸가지가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싸가지가 있어도 그 좋은 싸가지로 대중에게 할 말이 없다는 것. 할 말만 있으면 싸가지는 문제가 안 됩니다. 진보/개혁이 무슨 도덕재무장 운동도 아니고...
아니, 도덕재무장 운동은 나름 중요하죠. 야당 의원들 비리로 들어가면서 진보개혁의 비교우위마저 흔들리는 상황이니. 아무튼.... 싸가지 소지의무를 강조하는 걸 보니 이 사회가 그 사이에 많이 보수화되긴 한듯.
MB 정권 초기부터 주장하는 건데, 진보개혁의 싱크탱크가 필요합니다. 집권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 바로 사회를 새롭게 기획하는 능력이니까요.
아, 그래도 저는 장기적으론 상황을 낙관합니다. 아무리 과거로 돌아가려 해도 현 체제는 어차피 87년 체제의 연장이거든요. 그 안에는 부침이 있을 수 있죠. 아무튼 이 상황을 타개할 의지와 노력, 그리고 머리가 필요합니다.
물론 거기에 싸가지까지 갖춘다면, 특정 계층이나 연령층을 상대하는 데에 효과적인 측면이 있겠죠. 다만 싸가지 환원론은 비과학적이며, 심지어 보수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정유경 기자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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