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광역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수준의 임금체계인 ‘생활임금제’를 전면 도입한다. 이에 따라 이르면 내년부터 서울시와 산하기관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법정 최저임금보다 26%가량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서울 성북구와 노원구 등 기초단체 단위에서 논의의 불을 붙인 생활임금제도가 광역자치단체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최저임금의 현실화를 이끄는 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서울시는 2일 “근로자가 일을 해서 번 소득으로 가족들과 최소한의 기본적·인간적인 생활(주거·음식·교통·문화비용 등)을 누리고, 자주적인 경제 주체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서울형 생활임금제’를 2015년부터 전면 도입한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서울연구원과 함께 올해 기준 생활임금 수준을 6582원(시급)으로 산출했다. 이는 올해 최저임금 5210원보다 1372원(26.3%) 많은 액수다. 서울시는 이 생활임금을 서울시와 시 투자출연기관에 직접 고용된 직원들을 대상으로 내년부터 적용할 방침이다.
최저임금은 ‘적어도 이만큼은 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최소 수준으로서의 기준이지만, 실제로는 상당수 노동자에게 ‘실질적인 최고임금’으로 작동해왔다. 기업들이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 수준 이상은 주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은 지난해 기준으로 1인가구 월평균 가계지출(148만9000원)의 68%에 그치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3인가구 평균 소비액의 50%, 서울시 최소 주거기준(36㎡)에 필요한 주거비, 서울 평균 사교육비의 50% 등을 고려해 생활임금을 산출했다. 박문규 서울시 일자리기획단장은 사교육비를 반영한 이유에 대해 “사교육비가 생활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에 부합하는 생활임금을 책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활임금은 이미 서울 성북구와 노원구, 경기도 부천시, 경기도교육청 등에서 먼저 도입했고, 최근 경기도에서도 내년 1월부터 도입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김순희 서울시 노동정책팀장은 “생활임금을 도입하는 자치단체가 늘어날수록, 최저임금 수준이 지나치게 낮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실제 최저임금을 현실화하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생활임금 개념의 도입과 최저임금 인상 등은 저소득층의 생활수준을 높여 소득 분배 상태를 개선하는 정책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국민경제 선순환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적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서울시에서 조례를 바꿔 생활임금을 도입한다고 하지만, 각 자치구에 자동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또 생활임금이 현행법과 충돌할 우려가 있다며 용역·민간위탁업체 소속 노동자에 대해서는 생활임금 도입을 미루고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논평을 내어 “그간 생활임금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공공부문이 선도적으로 나서 민간영역에 만연해 있는 저임금 구조를 해소하겠다는 도입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서울 노원구는 이달부터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까지 생활임금을 적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번 서울시의 발표로 생활임금이 적용되는 대상은 118명가량(추정)에 불과해 상징적인 의미 외에 파급효과는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김순희 팀장은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정규직으로 바뀐 비정규직이 6000명에 달하고, 이들의 임금이 올라가면서 생활임금 적용 대상이 크게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문규 단장은 “국회에 간접고용 노동자에게도 생활임금을 적용할 수 있게 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적용 대상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음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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