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 승무원들로 보이는 이들이 해경 구조선으로 탈출하는 모습. 서울지방해양경찰청 제공
선원재판 과정서 진술 나와
기관사 “마음 진정시키려”
탈출 때 승객 기다린다 말 안 전해
다친 조리원 놔둔 것도 함구키로
기관사 “마음 진정시키려”
탈출 때 승객 기다린다 말 안 전해
다친 조리원 놔둔 것도 함구키로
그들은 승객 구조를 위해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구명조끼를 입고 침몰하는 배 복도에서 탈출을 준비하던 세월호 선원들은 캔맥주를 나눠 마셨다. 해경에 구조된 선원들이 다친 동료 조리원을 배 안에 두고 나온 사실에 대해 입을 다물기로 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나왔다.
2일 광주지법 형사11부(재판장 임정엽) 심리로 열린 세월호 선원 15명에 대한 재판에서 1등 기관사 손아무개(57·구속 기소)씨는 “세월호 3층 복도에서 기관부 선원들과 함께 구조를 기다리면서 박아무개(53·구속 기소) 기관장과 캔맥주를 나눠 마셨다”고 진술했다. 손씨는 4월16일 오전 9시 기관실에서 의자에 앉아 있다 배가 좌우로 흔들려 넘어졌다. 배가 10~15도가량 기울었던 상황이었다. “묵직하게 (화물이 밀리며) 끼익 하는 소리가 나더니, 배가 10초 동안 덜덜덜 떨렸다.” 손씨는 곧바로 기관실 밖으로 나왔다.
손씨는 기관장 방 앞에서 3등 기관사 이아무개(25·여·구속 기소)씨를 만났다. 손씨는 이씨한테서 “박 기관장님이 올라오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조타실에 있던 박 기관장은 배가 전복될 것으로 판단해 엔진을 끄고 기관실로 전화해 이씨 등 기관부 선원들에게 나오라고 지시한 뒤 3층으로 내려갔다. 박 기관장 등 기관부 선원 7명은 모두 구명조끼를 찾아 입었다. 기관사 이씨는 9시6분 손씨의 휴대전화를 빌려 집으로 전화해 “배가 가라앉고 있어 죽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손씨는 이씨의 방에 있던 캔맥주를 가져와 박 기관장과 나눠 마셨다고 한다. 손씨는 검사가 “탈출하기 용이한 장소에 있는 등 여유가 생겨 캔맥주를 마셨느냐”고 묻자 “격앙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마셨다”고 답했다. 손씨는 기관부 선원들이 오전 9시38분 해경 구조단정에 처음으로 구조된 것에 대해 “엉겁결에 탔다”고 말했다. 그는 “탈출할 때까지 아직 바닷물이 차지 않아 좌측 출입문으로 승객들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고, “선내에 승객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말도 (해경에) 하지 않았다”고 시인했다.
손씨는 선원들이 조리원 김아무개(60)씨와 이아무개(51·여)씨가 다친 사실을 탈출 5~6분 전께 알고도 그대로 두고 나왔다는 사실을 해경 조사에서는 감추다 뒤늦게 털어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와 이씨는 지난 5월과 6월 세월호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손씨는 “부상당한 동료 김씨 등을 두고 온 사실을 뒤늦게 검찰 조사 때 얘기한 이유는 뭐냐?”는 질문에 “말하지 말라고 했다”고 밝혔다. 손씨는 검사가 “당시 그 단어는 생각 안 나지만, 탈출할 때 박 기관장이 함구하라고 한 걸로 느꼈고, 그래서 얘기를 안 하다가 결국 시기를 놓쳐서 계속 얘기를 못한 것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시인했다. 손씨는 해경에게 김씨 등을 구해달라고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변명 같지만, 생각을 못했다”고 말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