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로 실종된 양승진 단원고 교사의 아내 유백형씨가 사고 발생 140일째인 2일 오후 전남 진도군 진도체육관을 떠나지 못한 채 여름옷들을 정리해 상자에 담고 있다. 진도/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팽목항 르포] 깊어지는 세월호 아픔
“우리에게 추석은 아무 의미 없어”
체육관은 밤 11시면 불 꺼져
봉사자 줄고 지원·관심 사그라들어
“이러다 수색도 중단될까 두렵다”
“우리에게 추석은 아무 의미 없어”
체육관은 밤 11시면 불 꺼져
봉사자 줄고 지원·관심 사그라들어
“이러다 수색도 중단될까 두렵다”
실종자 10명이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는 진도 팽목항은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비가 내린 3일 오전 149t짜리 여객선 ‘섬사랑 9호’가 승객 10여명을 팽목항에 내려놓고는 다시 섬으로 떠났다. 항구는 ‘일상’을 되찾았다. 항구 주변에 빼곡했던 자원봉사자 천막과 급식소들은 전부 사라지고 없었다. 한때 수백명에 이르던 자원봉사자들도 30여명만 남았다.
실종자 가족들의 옷소매는 가을로 접어들며 다시 길어졌다. 이들이 숙소로 쓰는 진도체육관 주변도 식당으로 쓰는 천막 두 곳, 천주교 광주대교구와 조계종에서 세운 천막 두 곳만이 남았다. 한때 24시간 불을 밝혔던 체육관은 이제 밤 11시면 불을 끈다. 이제 팽목항에는 22명의 가족들이 남았다. 바다는 48일 전 실종자 한 명을 돌려보내고선 여태 묵묵부답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자원봉사자들을 등 떠밀어 돌려보냈다. 미안한 마음에 5일부터 10일까지 자원봉사자들을 받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가족들은 팽목항을 떠나지 않는다. 수색작업도 이어진다. 연휴 기간 해군과 해경, 범정부사고대책본부 관계자 300여명이 남아 수색 작업과 가족 지원 업무를 맡는다.
평생 명절을 남들처럼 쇠온 실종자 가족들에게 이번 추석은 의미가 없다. 권오복(60)씨가 말했다. “진도군청 세월호 지원팀에서 차례상을 마련해 준다고 연락이 왔다. 그러지 말라고 했다. 연휴 중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우리에게 추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권씨의 동생 재근(52)씨와 조카 혁규(6)군은 실종 상태다. 베트남에서 온 제수씨는 이미 장례를 치렀다. 혼자 살아남은 조카 지연이는 겨우 다섯번째 맞는 추석을 피붙이 없이 보내야 한다.
단원고 교사인 고창석(40)씨의 아내 민아무개씨는 “명절은 남편과 같이 보내고 싶다. 추석 연휴에도 진도에 계속 머물 것”이라고 했다. 단원고 학생 황지현(17)양의 아버지 황인열(51)씨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저 차디찬 바닷속에 있는데 추석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묻는다면 1번부터 10번까지 모두 아이를 찾고 싶다는 것뿐”이라며 끝내 울먹였다. 체육관이 비어갈수록 상실감이 더 커진 이들은 먼저 보낸 가족을 차례상에라도 모실 수 있는 유족들을 부러워한다. 그래서 추석이 무의미하다기보다는 더 쓰라리다고 했다.
사고 발생 141일째. 여전히 가족을 기다리는 이들은 몸도 만신창이다. 한 일반인 실종자 가족은 폐렴을 견디다 결국 폐를 크게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뇌종양이 있는 실종 학생 어머니는 수술 일정까지 잡아놓고도 “애를 컴컴한 바닷속에 두고 내가 살 수 있겠느냐”며 수술을 거부하고 있다. 병명은 따로 못 대도, 객지에서 애간장 태우며 바닷바람을 맞아온 이들 중 성한 사람은 찾기 어렵다.
수색 작업은 진전이 없다. 한 잠수사는 “그동안 두 차례 찾아온 태풍과 궂은 날씨 탓에 실제 수중에 들어간 날이 많지 않았다. 날씨가 받쳐주지 않아 작업일수가 적다 보니 작업 진도가 원활하지 않다”고 했다. 민간 잠수사 40여명, 해군 190여명, 해경 70여명으로 구성된 수색팀은 연휴에도 모두 남아 수색을 하기로 했지만, 빈손인 날이 이어지면서 잠수사들의 피로도도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다. 박영인(17)군의 어머니 김선화(44)씨는 “날씨까지 왜 이러나 싶다”며 하늘과 바다를 원망했다.
1일에는 팽목항 가족 식당이 폐쇄됐다. 30분마다 팽목항과 체육관을 오가던 셔틀버스는 배차 간격을 2시간으로 늘려 잡았다. 7월 태풍 너구리가 지나가고 난 뒤 팽목항에 남아 있던 급식소는 두 곳에서 한 곳으로 줄었다. 지난달 태풍 나크리가 왔을 땐 천막들을 컨테이너로 바꾸는 과정에서 지원 시설 수가 다시 줄었다. 한 자원봉사자는 “태풍이 올 때마다 지원이 줄었다. 사실 태풍보다 더 무서운 것은 추석이다. 연휴 뒤에 누가 다시 제 발로 찾아올지가 걱정”이라고 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이런 분위기가 수색 작업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한다. 황인열씨는 “자원봉사자들이 하나둘 떠나갈 때마다 내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실종자 고창석씨의 아내도 “밥을 못 먹어도 상관없다. 라면을 먹든 굶든 상관없다. 다만 지원이 그렇게 줄어들다 수색 작업까지 안 하는 상황으로 갈까봐 그게 제일 걱정이다. 마지막까지 계속 찾아만 달라”고 했다.
김선화씨는 팽목항을 지키다 1일 정부세종청사로 돌아간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아쉽다고 했다. “장관도 다른 사무가 있으니 복귀했겠지만 사실 불안하다. 책임자가 있어야 수색 작업도 제대로 할 것 아닌가. 장관이 없다고 작업이 더뎌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비정한 이들의 독한 말들에도 상처를 입고 있었다. 황인열씨는 “사고 가족들을 욕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작심한 듯 “이런 일을 직접 당해봐야 그런 말씀을 안 하실 것이냐”고 모진 말도 했다. 남편을 기다리는 한 실종자 가족은 사고 뒤 인터넷 접속도 하지 않고 텔레비전도 보지 않는다고 했다.
고창석 교사의 아내 민씨가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참고 견디다가도 한번 마음이 휘청거리면 감당할 수가 없다. 신랑이 마지막 순간에 나와 어린 아이들을 두고 눈이라도 제대로 감았을까. 실종자 가족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추석에는 신랑과 함께 안산으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진도/박기용 이재욱 기자 xeno@hani.co.kr
2일 오후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실종자를 기리며 기도를 하고 있다. 진도/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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