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8개월째 경비원 등의 임금을 체불하고 있는 서울 서초구 잠원동 ㅇ아파트에 지난달 초 재건축을 위한 절차인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는 내용의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서울 잠원동 ㅇ아파트 경비원 등 10여명
2년8개월째 밀린 체불임금 4500여만원
2년8개월째 밀린 체불임금 4500여만원
서울 서초구 잠원동 ㅇ아파트 경비원과 전기·기계기사 10여명은 지난달 초 단지 입구에 펼침막을 내걸고 ‘체불임금 지급 촉구’ 집회를 열었다. 하루종일 꽹과리를 두드리며 시끄럽게 했지만 지나는 주민들은 흘깃 쳐다만볼 뿐이었다. 대부분 60대 안팎인 이들은 날이 더워 닷새 만에 집회를 그만두고 한동안 집회 신고만 하다 이젠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 전기기사 안아무개(52)씨는 4일 <한겨레>에 “소란을 피워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고 했다. 경비원들은 아예 변호사를 선임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소송에 들어갔다. 2년8개월째 밀려있는 이들의 체불임금은 4500만원 가량이다.
모두 4개동 408가구 규모인 ㅇ아파트는 1978년에 지어진 오래된 12층짜리 복도식 아파트다. 이 아파트 관리 직원은 19명으로, 이중 ‘감시직’인 경비원이 10명, 전기나 기계를 다루는 ‘단속직’이 4명이다. 이들은 별도 휴일 없이 두 사람이 24시간 맞교대로 근무한다. 나머지 ‘일근직’ 5명은 관리소장과 경리, 기계·전기 담당 주임과 경비반장이다. 일근자들은 일주일에 40시간 근무하고 180만원 이상의 월급을 받아가지만 단속직은 159만원, 감시직은 138만원을 받는다.
이들의 월급은 2010년 9월 6만원이 인상된 뒤 4년째 동결돼 있다. 게다가 감시직과 단속직은 2012년 1월부터 월급 일부를 받지 못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이들의 임금도 인상돼야 했지만 입주자대표회의가 인상해주지 않은 것이다. 밀린 임금 4500만원은 이 아파트의 가구 수(408)로 나누면 한 가구당 11만원꼴이다.
임금체불이 계속되자 참다 못한 직원들이 지난해 12월 지방노동청에 신고했고 지난 7월 서울중앙지법의 지급명령을 받아냈다. 감시·단속직 직원들은 아파트 출입구마다 지급명령서를 붙여놓았지만 입주자대표회의는 법원의 명령도 따르지 않고 있다.
밀린 임금도 못 받고 명절 연휴에도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이어가야 하는 감시·단속직 직원들은 한숨만 나올 뿐이다. 이 아파트 기계담당인 김아무개(61)씨는 “우리 직원들은 법 이전에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뿐인데 그냥 주면 될 것을 입주자대표회의 쪽에서 굳이 소송 등을 하려 하니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 말고도 감시·단속직 노동자들의 급여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감시·단속직은 2007년부터 최저임금법 적용 대상이 됐지만 100%가 아닌 90%만 적용받는다. 2012년부터 100% 적용하려던 것을 아파트 경비원 대량 해고가 우려된다며 고용노동부가 2015년까지 유예한 뒤 단계적으로 인상해온 결과다. 이 때문에 이들의 임금은 올해 법정 최저임금의 90%인 시급 4689원에서 내년에 100%인 5580원 이상으로 인상된다. 인상율이 무려 19%가 넘는다.
이러다 보니 이들의 사용자라 할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쪽은 당장 내년 관리비 인상을 우려해 무급 휴게시간을 늘리는 등의 방법으로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시도를 도처에서 하고 있다. 휴게시간을 주게 되면 관련 법에 따라 업무와 무관하게 쉴 수 있는 장소를 같이 제공해야 하지만 지켜지는 곳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동안 인상된 임금을 주지 않거나 경비원들에게 다른 업무를 떠넘기기 일쑤다.
곽상신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은 “내년 임금 인상을 앞두고 이곳저곳에서 편법을 쓰는 행태가 나타난다. 야간에 무급 휴식시간을 늘려 임금을 깎는 방법으로 총액임금을 그대로 두는 방법을 주로 쓰는데, 감시·단속직들이 대부분 고령 노동자들인 만큼 노동계 쪽에서도 고령노동 개선과 관련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서울 서초구 잠원동 ㅇ아파트 경비원 등이 지난달 초 단지 입구에서 연 집회에서 주민들에게 나눠준 유인물. ‘동 대표는 체불임금을 지급하라’고 적혀 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지난달 초 서울 서초구 잠원동 ㅇ아파트 각동 출입구에 붙은 서울중앙지법 명의의 ‘지급명령서’. 채권자는 전 경비반장 송아무개씨, 채무자는 동대표회장(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인 이아무개씨로 돼 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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