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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세월호 광장에 나선 심리학자들이 말하길…

등록 2014-09-08 13:14수정 2014-09-08 14:07

[캠페인 기억 0416] 진정한 세월호 특별법이 필요하다며 처음 광장에 함께 나선 심리학자들…

“개인 치료하기 앞서 병든 사회를 바로잡아야”
지난 8월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심리학자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지난 8월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심리학자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이승욱(51)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 소장은 지난여름 울음을 참으며 출퇴근해야 했다. 버스를 타고 서울 광화문에서 내려 종각에 있는 클리닉까지 걸어다니는 그는 ‘유민 아빠’ 김영오(47)씨가 단식하며 40일간 머문 광화문광장 농성장을 아침저녁으로 지나다녔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이 소장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그즈음 그는 심리학자가 발표할 성명서 초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공론화가 망설여졌다. “상담실이라는 테두리에서 개별적으로 상담하는 심리학자들이 얼마나 참여할 수 있을까, 고작 20~30명이 동참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꾸 움츠러들었다.” 무력감과 좌절감이 밀려올 때마다 성명서를 고쳐썼지만 선뜻 동료들에게 손 내밀지 못했다.

특별법 영문 안내서 만든 이승욱 소장

광화문광장에선 외국 관광객들이 자주 보였다. 그들은 세월호 유가족 단식농성장과 특별법 촉구 서명운동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때로는 다가가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했지만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줄 자원봉사자가 없어 보였다. 이 소장은 무릎을 쳤다. “할 수 있는 일이 있겠구나.”

뉴질랜드에서 심리치료학 박사학위를 받고 뉴질랜드 국립정신병치료센터에서 심리치료실장으로 9년간 일한 경험을 살려 그는 ‘세월호 특별법 영문 안내서’를 제작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에서 발표한 성명서를 정리해 전문 편집디자이너에게 맡겼다. 자비를 들여 수백 장을 찍어냈다. 영문 안내서를 읽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세월호 특별법 촉구 서명에 하나둘 참여했다. 단 몇 명이라도, 이 소장은 뿌듯했다. 그때 심리학자 성명서가 떠올랐다. ‘그래, 몇십 명이라고 상관없다. 심리학자의 이름으로 해보자.’

8월20일 한 달 반이나 묵혀뒀던 성명서를 꺼내 몇몇 심리학자들에게 보내 의견을 구했다.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표현이 과격하다고들 했다. 이틀 동안 매달려 성명서를 다듬었다. 8월22일 오후 마침내, 이 소장이 발의한 성명서 ‘진실만이 치유할 수 있다’가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공론화됐다.

‘진정한 특별법’이 필요한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납득되지 않은 경험은 계속되는 고통을 낳는다. 비극적 현실의 이유를 밝히고자 함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왜 침몰했는가’와 ‘왜 더 많은 생명을 구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면 당사자의 고통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둘째, 유가족과 생존자를 짓누르는 죄책감을 덜어내는 출발점이다. 진짜 원인을 밝혀내야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줄 수 있다. 셋째, 과거와 다른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도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불안과 무력감, 좌절감에 더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동료 심리학자들의 폭발적 반응

예상과 달리,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휴대전화와 전자우편으로 지지가 쏟아졌다. 심리학자 373명이 8월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이 소장은 “심리학자들이 광장에 나선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치유자라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 다친 병사를 치료해 전쟁터로 다시 보내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그 전쟁을 중단하는 데 앞장서야 옳을까,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심리학자들이 던지는 물음이다. 병든 개인을 치료하기 앞서 병든 사회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심리학자가 점점 늘고 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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