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소비 중독과 과잉경쟁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고 비워내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
모바일 게임 ‘캔디크러시’ 끊기
내 스마트폰은 2017년 10월을 살고 있었다
“언니 분명히 중독될 거야.”
‘캔디크러시 사가’를 소개하며 동생이 한 말은 저주이자 예언이었다. 게임 소개는 생략. 한때 테트리스와 지뢰찾기 중독자였다는 점만 밝혀둔다. 캔크에 중독되는 건 한나절이면 족했다.
약이 올랐다. 한 번만 더 움직이면 단계 성공인데 무브(move) 소진. 하트 및 아이템 구매가 시작됐다. 스마트폰 소액결제는 참 쉬웠다. 첫 달 2만원이던 결제금액이 4만원, 8만원으로 늘었다. 술 취해 침대에 누워 게임한 날은 하루 1만원을 넘기도 했다. 지하철 정거장을 지나치면서, 변기에 앉아서, 나는 소액결제 클릭을 해댔다. 410단계였던가. 일주일이 넘도록 깨지 못했다. 추가 무브와 온갖 찬스 아이템을 구매해 퍼부었지만 소용없었다. 소액결제 12만원 청구서가 날아온 뒤 앱을 삭제했다. 2, 4, 8, 12로 늘어나는 숫자가 무서웠다.
“소액결제 안 되게 설정할 수 있어.”
정아무개 <한겨레21> 기자의 말에 다시 ‘캔크’를 시작했다. 소액결제의 유혹에서 벗어났다는 생각 때문인지 한결 여유롭게 즐겼다. 그러나 애초 실패했던 단계를 넘어서자 중독 증세가 나타났다. 하트가 다시 생길 때까지 30분은 너무 길었다.
인터넷을 뒤졌다. 시간이나 날짜 설정을 바꿔 하트를 무한정 공급받을 수 있는 방법이 소개돼 있었다. 소액결제를 할 때보다 수면 시간이 더 줄었다. 하트는 끊임없이 공급되니까요! 508단계였던가. 내 스마트폰은 2017년 10월을 살고 있었다. 캔크를 할 때만 날짜를 바꾸었더니 문자메시지 주고받은 순서는 뒤죽박죽이 됐고, 깜빡 잊고 날짜를 되돌리지 않아 알람이 울리지 않는 바람에 지각하기도 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어느 날 갑자기 날짜 변경이 되지 않았다. 해결해보려다 앱이 삭제되고 말았다.
1단계부터 다시 시작해볼까 싶은 마음이 종종 든다. 내가 끊은 게 아니라 끊어졌기에 미련이 남은 게다. 소액결제 차단 설정을 해제하거나 날짜를 바꾸는 건 참 쉽다. 끊는 데 필요한 건 자기 의지만이 아니다. 한때 캔크 마니아
자기계발서를 끊기 성공과 끊임없는 스펙쌓기에서 벗어나다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신자유주의를 찬양하는 교과서와 싸우며 10대를 보낸 나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위해 토익을 공부하는 동기들과 싸우며 20대를 보냈다. 그러던 중 나에게 이뤄내고 싶은 꿈이 생겼고, 그 꿈은 내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서동진 교수가 말한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특징을 고스란히 내면화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학습하면서 스펙을 쌓고 경력을 관리하는 데 온 기운을 쏟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자기계발서, 그중에서도 ‘성공 신화’에 빠져들었다.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 따위의 긍정 주문을 외치던 자기계발서는 애초에 집어던졌지만, 이상하게도, 특히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성공한 여성들의 신화에 몰입했다. “일과가 끝나면 너무 피곤해서 쓰러져 잠들어야 살아 있는 것 같았다”는 그녀들의 이야기에 부끄럽게도 열광했다.
하지만 자기계발서 성공 신화가 내게 남긴 것은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뿐이었다. 누구나 자기만의 강점을 지니고 있기 마련인데 성공 신화는 나로 하여금 ‘가지지 못한 것’에만 집중하게 했다. 또 성공과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른 것인데, 그녀들의 성공 방식만을 강요했다.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너 자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주문과 함께. 모든 실패를 사회구조가 아닌 ‘개인’ 탓으로만 내모는 자기계발서를 더 읽을 수는 없었다. 책을 덮으면서 그렇게 신화는 깨졌고, 삶은 달라졌다.
이제 나는 더 많은 임금과 혜택, 복지를 누릴 수 있는 전일제 근무 대신 스스로 선택해 수요일마다 쉬는 4일 근무를 하고 있다. 저녁 식사는 직접 지은 따뜻한 밥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나눠 먹고, 주말에는 어떤 성과를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공부를 한다. 무엇보다 책장 한편에 늘 꽂혀 있던 자기계발서는 이제 없다. 기존 자기계발 논리를 반대하며 느리게, 더 느리게 살 것을 권장하는 책 역시 없다. 그저 그 공간은 무언가를 해내도 설령 해내지 못해도 ‘이미 나는 충분하다’는 자존감과, 비로소 타인을 살필 수 있는 여유로 채워지고 있다.채혜원 전문직 공무원
대형마트와 신용카드와 동시에 끊기 약간의 불편, 마술 같은 변화
대형마트가 대중화될 때 주말마다 그 넓은 마트 안을 돌아다니며 허기진 듯 쇼핑을 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좀 신중했는데 점점 하나 더 주는 상품과 반값 할인, 기획 신제품 출시와 사은품 증정에 흥분해서 물건을 카트에 담아넣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집 안에 잡동사니가 늘어났다. 가계부는 구멍 나기 일쑤다. 냉장고는 가득 차 있지만 먹을 건 없는 이상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 모든 잡동사니를 정리할 틈도 없이 주말이면 어느새 습관적으로 대형마트를 방문하고 생각 없이 집어든 상품을 신용카드로 망설임 없이 결제했다. 카드 결제일마다 마치 도둑맞은 듯한 기분이 반복되면서 가장 먼저 신용카드부터 잘라냈다.
체크카드를 쓰기 시작하니 물건을 살 때마다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 잔액이 부족하지 않을까? 전두엽을 자극하는 무이자 할부와 공짜 사은품 앞에서 뜸들이기가 시작되었다. ‘한 번 더 생각하기’만으로도 일회용품이 줄고 묶음상품 구매가 차츰 줄어들었다. 한번은 급하게 장을 보고 결제하려다 잔액 부족으로 망신도 겪었다. 어쩔 수 없이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장보기를 하지 않은 그 주에 신기하게도 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냉장고 속이 가벼워졌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달 동안 마트에 가지 않고, 필요한 것이 생기면 근처 생활협동조합이나 슈퍼에서 낱개로 구매했다. 잡동사니가 줄어들더니 결제가 사라진 월급날을 맞게 되었다. 집안일은 더욱 간편해졌고 여행 적금 통장을 하나 더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약간의 불편을 감수한다고 불행해지지 않는다. 사람은 작은 불편에 금세 익숙해지게 되어 있다. 익숙한 불편이 가져다주는 선물은 의외로 크다. 나의 경험을 상담에 적용해 많은 주부들의 소비 패턴을 바꿔보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심지어 어떤 주부는 ‘마술 같다’며 작은 변화에 크게 기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상당수가 돈에 대해 극도의 결핍감과 근원적 불안에 시달린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 지독한 결핍감과 경제적 불안은 대형마트와 신용카드가 우리 일상을 야금야금 균열 낸 결과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밀가루 음식 끊기 내 몸의 아우성이 멈췄다
밀가루 끊기를 시작한 데는 좀 지저분한 이유가 있다. ‘장 트러블’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이유를 몰랐다. 그저 잘 체하고 소화가 원활하지 않은 못난 ‘장’ 때문이려니 하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20대는 복통과 체기를 안은 채 그럭저럭 흘렀다. 30대는 달랐다. 그럭저럭 넘어가지 않았다. 여러 날 복통으로 시달리기를 몇 번 반복하고서야 내 몸이 아우성치는 이유를 찾아나섰다.
누구나 느끼는 스트레스는 큰 변수가 아니었다. 왜냐? 항상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있으니까. 몸이 아프지 않을 때도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런저런 변수를 제거하고 나니 남는 것은 하얀 악마, ‘밀가루’였다.
그러고 보니 20살에 하숙·자취 생활을 시작하면서 밀가루 음식을 자주 먹게 되자 ‘장 트러블’을 자주 겪은 것이었다. 동기들과 함께 캠퍼스에서 짜장면·피자를 시켜먹는 것은 다반사, 밤에 출출할 때면 라면이 빈속을 채웠다. 어설픈 자가 진단의 결과는 한의원 진맥을 통해 확실해졌다. 체질에 가장 맞지 않는 식재료 중 하나가 밀가루로 드러났다. 풀리지 않았던 사건의 범인을 찾아낸 것처럼 속 시원했다.
수제비와 칼국수는 아예 입에도 대지 않는다. 곤란한 경우도 많다. “비가 오니 이럴 땐 바지락칼국수지.” 누군가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이야기를 꺼낸다. 밀가루 끊기 초반에는 그냥 일행을 따라가서 밥을 따로 시켜먹었다. 그러나 칼국수 전문점에서 제대로 된 다른 메뉴는 찾기 힘들었다. 이제는 당당히 이야기한다. “저는 밀가루 음식, 특히 칼국수나 수제비는 아예 안 먹어요”라고. 아쉬운 기색이 역력하지만 자주 만나는 동료들은 이제 체념한 눈치다.
밀가루 끊기를 통해 터득한 것 중 하나는 ‘거절하기’다. 음식도, 부탁도, 사람도 받는 대로 소화시키려다간 탈이 생긴다.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거절해야 한다. 더불어 나에게 맞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마음 편하지 않은 세상에, 속이라도 조금 편하게 살았으면 한다. 밀가루 음식 끊기는 계속된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화장품 끊기 피부가 다시 숨을 쉬는 순간 올해로 내 나이 서른넷. 그러나 나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 스킨과 로션조차 바르지 않는다. 대학생 때는 예쁘게 보이고 싶고, 기미나 주름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고 싶어서 매일 화장을 하고 다녔지만, 지금은 늘 민낯으로 다닌다. 변화는 책 한 권과의 만남으로 시작되었다. 피부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광고하는 화장품들이 실제로는 피부에 화학물질을 축적시키고 피부막의 자생력을 잃게 만들어 피부 노화의 주범이 되고 있다는 논지의 책이었다. 그동안 피부를 위해 꽤 많은 돈을 화장품에 들여왔는데 그 화장품이 오히려 내 피부를 망치고 있다니 충격이었다.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기 시작하면서 성인여드름으로 고생했던 과거의 경험도 떠올랐다. 화장품에 대한 신뢰를 거두었던 그날 이후부터 지금까지 약 5년간 나는 화장품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처음 얼마간은 걱정이 많았다. 세수하고 나서 스킨·로션을 바르지 않으니 얼굴이 당겼다. 그럴 때면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 생길 것 같은 두려움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 피부의 자생력을 믿어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화장품을 바르지 않으니 세안할 때 굳이 세안제나 비누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물로만 세안한 결과 얼굴이 전혀 당기지 않게 되었다. 화장품으로 인해 손상돼 제 기능을 못하던 피부 보호막이 회복되기 시작한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 생기를 잃어간다고 생각했던 피부가 다시 탄력을 찾았고, 걱정했던 주름도 거의 생기지 않았다.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지 않아도 기미가 거의 생기지 않았다. 요즘은 오히려 또래 친구들보다 피부가 더 좋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이렇게 화장품을 끊고 나니 좋은 점이 참 많다. 화장품을 사지 않으니 경제적 여유가 생겼고, 화장하는 시간이 사라지니 아침 시간이 여유로워졌다. 그리고 어떤 화장품이 좋더라는 소문에 흔들릴 필요도 없고, 내 피부에 맞는 화장품이 뭘까 고민할 필요도 없으니 삶이 한결 단순해졌다. 더 좋은, 더 많은 화장품을 바르라고 권하는 사회에서 단호히 “노!”를 외치며, 내 피부의 자생력을 믿어보는 것은 어떨까? 화장품에 피부 건강을 맡기기보다 피부 스스로 건강을 되찾는 걸 도와줄 때, 더 건강한 피부를 갖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박선정 주부 ▷ 한겨레21 기사 더보기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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