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경찰서장, 한전서 돈 받아
100만~500만원 봉투 8개 뿌려
“한전에 제안해 돈 전달” 시인
경찰청 전달 경위 등 감찰 착수
100만~500만원 봉투 8개 뿌려
“한전에 제안해 돈 전달” 시인
경찰청 전달 경위 등 감찰 착수
고압 송전탑 건설을 둘러싸고 주민과 한국전력공사(한전) 사이에 5년째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경북 청도에서 관할 경찰서장이 한전에서 받은 1000만원대 돈을 일부 주민들에게 뿌린 사실이 드러났다. 중립적 위치에서 양쪽의 위법 여부를 공정하게 판단해야 할 경찰 책임자가 주민 회유용으로 의심되는 ‘돈 심부름’을 자처한 것이어서 파장이 일고 있다. 경찰청은 이 서장에 대한 감찰에 들어갔다.
‘청도 345㎸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원회’와 경찰의 말을 종합하면, 추석 이튿날인 9일 청도경찰서 정보보안과 전아무개 계장이 ‘이현희 경찰서장’이라는 글씨가 찍힌 돈봉투를 삼평1리에 사는 ‘23호 송전탑’ 반대 주민들에게 돌렸다. 돈봉투 8개에는 100만~500만원씩 모두 1600만원이 들어 있었다. 주민 4명은 돈봉투를 받지 않거나 돌려줬고, 다른 4명은 자녀가 대신 받거나 경찰서 직원이 돈봉투를 집에 두고 갔다고 한다.
300만원이 든 돈봉투를 받은 이억조(74) 할머니는 11일 “경찰이 ‘약이라도 좀 드시라’면서 돈봉투를 가져왔다. 이런 것을 받으려고 싸우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놓고 갔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지난달 19일 다른 할머니 3명과 경북도청에서 송전탑 건설 반대 농성을 하다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이현희 청도경찰서장은 이 돈의 출처가 한전이라고 밝혔다. 이 서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관할 서장으로서 송전탑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주민들이 고생하는 모습도 안타까워 약값이라도 보태자는 뜻을 한전에 먼저 전달했다. 한전으로부터 1600만원을 받아 돈봉투를 만들었다”고 인정했다. 그는 “돈의 일부는 한전 대구·경북 건설지사장으로부터 직접 받았고, 일부는 한전 직원으로부터 전달받았다”고 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경찰청은 곧바로 감찰에 들어갔다. 경찰청 관계자는 “감찰팀 4명을 청도에 보내 조사에 착수했다. 이 서장이 돈을 뿌린 경위나 돈의 출처 등을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경위와 목적이 어떠하든 현직 경찰 간부가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징계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경찰 쪽 설명이다.
이보나 반대대책위 상황실장은 “공정한 법 집행을 해야 하는 경찰이 반대 주민을 회유하기 위해 한전의 앞잡이 노릇을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대대책위는 이 서장을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앞서 경찰은 지난 6월 경남 밀양 초고압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농성장을 강제 철거할 때도 과도한 공권력 행사로 비난을 산 바 있다.
돈의 ‘출처’로 지목된 한전 대구·경북 건설지사 쪽은 “우리도 당황스럽다.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한전 본사 역시 “전달된 돈이 한전에서 지급된 것인지 등을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이 지역을 지나는 송전탑은 울산 신고리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대구에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청도군 일대에선 전체 송전탑 40기 중 39기의 공사가 끝났다. 삼평1리만 공사 재개를 둘러싸고 한전과 일부 소수 주민 사이에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송호균 김정필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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