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휴일이 처음 실시된 지난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의 한 은행 입구에 휴점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한겨레> 경제부 산업팀 김정필입니다. 이렇게 ‘친기자’에 ‘입봉’하게 된 까닭은 토요판 팀장인 이형섭 선배의 원고 요청을 모질게 거절하지 못한 탓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9월10일’입니다. 달력을 보니 빨간색으로 ‘10일 대체공휴일’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평소 일요일 또는 연휴 마지막날 일을 해야 하는 기자들은 ‘빨간날 근무’가 익숙합니다. 평일인 다음날 독자들이 신문을 받아보려면 전날 신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번 ‘대체공휴일’에는 기자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이 꽤 눈에 띕니다. 쉴 거면 다 쉴 일이지 누구는 쉬고 누구는 일하냐는 볼멘소리가 들려옵니다. 지금부터 누구는 쉬고 누구는 일하게 된 속사정을 들춰보겠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공휴일을 지정하는 ‘법률’은 없습니다.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있긴 합니다. 3·1절과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이 국경일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이 법 어디에도 ‘공휴일’이란 표현이 없습니다. 국가의 경사로운 날이니 기념은 하되 놀지 말지는 각자 알아서 하라는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공휴일’을 지정한 근거는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에서 어렴풋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입니다. ‘대통령령’, ‘관공서’라는 단어에서 눈치 챘겠지만 이는 행정명령으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사무를 처리하는 기관에만 적용됩니다. 공무원은 이 규정에서 정한 날 맘 편히 쉬면 되지만 공무원이 아닌 분들은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법률로만 따지면 관공서에서 근무하지 않는 분들은 일년 365일 중 공휴일이 하루도 없는 셈입니다. 그런데도 관공서에 근무하지 않는 분들이 달력의 빨간날에 쉬는 건 민간기업들이 이 규정을 기준 삼아 내부 규정 또는 노사 협의를 통해 공휴일로 지정해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정한 공휴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요일, 3·1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1월1일, 설날 전날·설날·다음날, 석가탄신일, 어린이날, 현충일, 추석 전날·추석·다음날, 기독탄신일, 선거일. 이 규정은 우리 정부가 수립된 이듬해인 1949년 6월4일 제정·시행됐는데 지금까지 20차례 개정됐습니다. ‘사방의 날’, ‘국제연합일’ 등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희귀한 공휴일들이 단명 또는 장수하며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췄는데요, 지난해 11월5일 이 규정에 ‘대체공휴일’이란 조항이 추가돼 시행됐습니다. 설날과 추석, 어린이날이 다른 공휴일과 겹칠 경우 평일인 다음날 하루 더 쉰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관공서의 공휴일을 규정한 조항이다 보니 민간부문에는 강제력이 없습니다. 처음 적용된 올해 추석 연휴 마지막날 ‘대체공휴일’ 적용이 들쭉날쭉했던 건 여기서 비롯됐습니다.
원래 대체공휴일은 국회가 지난해 ‘공휴일에 관한 법률안’을 논의할 때 법률에 명시하려고 했습니다. 공휴일을 아예 법률로 지정해 근로자들이 휴일을 보장받도록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이 논의가 잘 마무리됐다면 올 추석 같은 반쪽짜리 대체공휴일은 없었겠죠. 국회 논의가 무산된 이유는 정부 부처간 이견, 경제단체의 반발 때문이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관광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며 크게 반겼지만, 안전행정부는 세계 어느 나라도 공휴일을 법으로 강제해 민간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곳이 없다며 반대했습니다. 재계 반발도 만만찮았습니다. 생산 차질, 인건비 부담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결국 경제활동 논리에 밀려 입법 노력은 흐지부지됐고 대통령령에 슬며시 끼워넣었습니다.
대체공휴일을 반대하는 분들의 처지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법안 논의 때 생산차질액이 4조원을 넘는다는 따위의 경영자 논리만이 지배한 것에는 불편함을 느낍니다. 근로자의 행복지수가 얼마나 올라가는지 궁금한 분은 없었던 걸까요. 충분히 쉬고 난 건강한 근로자가 생산현장으로 돌아왔을 때 이익비용으로 볼 수 있지는 않았을까요. 반대하는 분들 논리라면 우리 정부는 하루 행정작용을 중단함으로써 국가에 막대한 손실을 끼치는 대체공휴일을 시행하고 있는 꼴입니다. 좀처럼 칭찬받지 못하는 박근혜 정부지만 대체공휴일 개정 이유로 내세운 얘기는 새겨들을 만합니다. ‘명절과 가정을 중시하는 국민적 정서를 고려해 휴식을 통한 재충전 기회를 제공하고자 매년 일정 수준 이상의 공휴일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김정필 경제부 산업팀 기자 fermata@hani.co.kr
김정필 경제부 산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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