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가 연 ‘고노담화 증거 공개 기자회견’에서 1993년 일본 정부 조사단의 방한 당시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 동영상이 공개되고 있다. 연합뉴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1993년 고노담화 증거 제시
“아베정부 진실 왜곡 못참아”
1993년 고노담화 증거 제시
“아베정부 진실 왜곡 못참아”
일본 정부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 흔들기에 나서자,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가 20여년 전 일본 정부가 직접 피해자들한테서 증언을 청취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고노담화의 근거가 됐던 자료로, 일본 정부의 요청에 따라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것이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는 1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노담화가 나오기 직전인 1993년 7월 말 일본 정부 조사단이 위안부 할머니 16명의 증언을 직접 청취하는 15분 분량의 동영상을 21년 만에 공개했다. 이 동영상은 당시 서울 용산구에 있던 유족회 사무실에서 이뤄진 증언을 녹화한 기록의 일부다.
동영상에는 피해자들이 통역을 통해 일본 정부 조사단에게 자신들의 피해 사례를 들려주거나 증언 일정 등을 조율하는 장면 등이 담겼다. 2012년 12월 86살 나이로 세상을 떠난 김복선 할머니는 증언에서 “내가 18살 때 큰아버지로부터 처녀들이 끌려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2~3주 동안 다락방에 숨어지냈다. 그러다 밥을 먹으러 내려왔는데, 갑자기 일본 순경이 나타나 옆에서 팔을 붙들고 나를 끌고갔다”고 증언했다.
윤순만(83) 할머니는 “무서워서 마루 기둥을 붙잡은 채 울면서 도망을 가려고 했는데 결국 부산으로 끌려갔다. 종군위안부가 되어 시모노세키를 거쳐 오사카로 넘겨졌다”고 증언했다. 윤 할머니는 “말을 안 듣는다고 매도 많이 맞았다. 팔을 비틀어서 아직도…”라며 불편한 양쪽 무릎과 수십년이 지난 뒤에도 꺾여 있는 왼쪽 팔꿈치를 들어보이기도 했다.
이날 공개된 영상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유족회는 당시 증언에 나선 길갑순 할머니의 진술도 공개했다. 당시 길 할머니는 “일본군과의 잠자리를 거부하다 뜨겁게 달궈진 인두로 등을 지지는 고문을 받았다”고 증언하며, 옷자락을 들어올려 등에 남은 화상 자국을 일본 조사단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길 할머니는 증언 5년 뒤인 1998년 74살의 나이로 숨졌다. 길 할머니의 아들인 김영만(58)씨는 “당시 증언한 16명 중 윤순만 할머니와 김경순 할머니를 제외한 14명이 이미 숨졌는데, 아베 정부는 고노담화를 매도하려는 노골적 의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증언 당시 배석했던 양순임 유족회장은 “일본 정부의 (비공개) 요청으로 21년 동안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는데, 아베 정부가 고노담화의 진실을 왜곡하는 상황에서 영상 일부를 공개하기로 했다. 앞으로 고노담화 백서를 만들어 유엔에 보고하고 세계인의 검증을 받겠다”고 밝혔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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