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등 18개 시민단체 회원들이 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검찰에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선거법 무죄 1심 판결’에 항소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현장에서]
‘선거 시기에 정치 개입을 한 것은 맞지만 선거 개입은 아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의 판결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수원지법 김동진 부장판사가 “선거 개입과 관련 없는 정치 개입은 뭐냐”며 이 판결을 정면 비판한 글을 법원 내부 통신망에 올린 것은 사법부 안에서조차 이번 판결을 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음을 보여준다.
김 부장판사가 글을 띄운 지 3시간 만에 대법원은 ‘정치적 발언’이라며 삭제했지만, 판사들 사이에서는 “일부 표현이 지나치다고 볼 여지가 있을망정 비판의 내용이 틀리진 않다”는 말이 나온다. 게시판에는 대법원의 삭제 조처를 비판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렇게 법관이 다른 법관의 판결을 비판한 것을 두고 일부 언론은 ‘법관의 독립’ 원칙을 훼손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과거 김 부장판사가 자신이 한 판결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그를 ‘돌출 판사’로 묘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법원 내부에서 동료 판사의 판결에 대한 문제 제기를 법관의 독립 원칙을 이유로 금기시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김 부장판사의 문제 제기는 ‘법관의 독립은 법관이 법정신을 올바로 구현한다는 전제에서 가능하다’는 경고를 내포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이 비판받는 핵심 이유는 선거 시기에 노골적으로 한쪽 편을 든 정치 개입을 ‘선거 개입’이 아니라고 한 데 있다. 선거가 곧 정치인데 말이다.
‘법관의 독립’은 법관이 법치주의를 판결로 제대로 구현해낼 때 가치를 갖는다. 독립과 독단은 다르다. 이번 판결이 법치주의 정신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다고 보기에 동료까지 문제를 삼는 것 아닐까. 김 부장판사는 시민 누구나가 던질 법한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째, 국정원장이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에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는데 그게 왜 선거 개입이 아니라고 보는가. 둘째, 국정원장이 대선 시기에 ‘선거 개입’은 아닐지라도 정치 개입이라는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는데 왜 집행유예를 선고해 실질적 처벌을 하지 않는가.
판결문을 들여다봐도, ‘선거’와 ‘정치’의 의미 관계를 곰곰이 생각해봐도, 국정원 직원들의 행위에 ‘이해’해줄 만한 구석이 없는지를 아무리 따져봐도 답이 구해지지 않으니까 이런 질문이 나오는 것이다.
법관들이 귀중하게 여기는 법리가 국가기관이 저지른 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데 쓰이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정의가 바로 설 수 있을 것인지 우려하는 사람은 김 부장판사만이 아닐 것이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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