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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김부선 코스프레’를 해봤어요. 그랬더니…

등록 2014-09-19 19:29수정 2014-09-20 01:32

배우 김부선. 한겨레 자료사진
배우 김부선. 한겨레 자료사진
[친절한 기자들]

“관리비 얼마씩 내고 계세요?”(40*호) “잘 모르겠는데… 한번 찾아봐야 알아요.”(30*호) “오늘 이사와서요, 뭐 내라는 대로 내야죠.”(10*호) “글쎄요, 잘 기억이….”(50*호)

실시간 검색어 ‘김부선, 난방비’. 순간 제 머릿속엔 지난달 제 통장을 빠져나간 원룸 관리비 10만5천원이 떠올랐습니다. 3년째 살고 있는 원룸엔 으레 25일이 되면 관리비 고지서가 날아오지만 한번도, 이 금액이 어떻게 산정된 것인지 알아볼 생각을 못한 것이죠.

안녕하세요? 저는 <한겨레>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온라인부 김미향 기잡니다. 맨얼굴로 나오는 한겨레 기사에 ‘화장’하는 일을 합니다. 사진을 고르고 촌철살인 제목을 뽑아 한겨레 기사가 독자의 선택을 받도록 만듭니다. 독자들이 좋아하는 립스틱을 골라 기사에 입술색을 칠하는 역할이지요. 그래서 전 독자들의 관심사에 항상 귀를 쫑긋 세워야 합니다.

이번주 온라인 독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아파트 관리비’였습니다. 12일 서울 성동구 옥수동의 한 아파트 반상회에서 주민들끼리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몸싸움에 연루된 사람 중 배우 김부선씨가 있었음이 알려지자 누리꾼(네티즌)들의 궁금증은 폭발했습니다. 김부선씨는 “난방비 비리를 폭로하려다 맞은 것”이라는 예상 못한 항변을 했습니다. 때마침 구청의 조사자료를 통해 부선씨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그는 누리꾼들에게 뜨거운 지지를 받았죠. 성동구청에 전화해보니 “2012년 김씨가 난방비에 대해 직접 민원을 넣었고 2013년 서울시의 실태조사 결과 김씨의 주장이 신빙성 있다”고 했습니다.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옥수동 H아파트의 전 가구가 겨울 난방비를 낸 총 1만4472건 중에서 난방량이 ‘0’, 즉 난방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표기된 건수가 300건이나 나왔습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가구인데도 말이죠.

사연은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부선씨는 2003년 이 아파트에 이사를 옵니다. 오자마자 나온 난방비가 80만원이나 되자 이상하게 생각한 부선씨는 앞집, 옆집, 윗집의 난방비를 직접 물어보고 다닙니다. 가족이 5명이나 되는 집에서도 난방비를 3천원밖에 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는 직접 알아냈습니다. 동대표를 붙잡고 ‘어떻게 이렇게 적게 나오느냐’ 꼬치꼬치 묻습니다. 그렇게 10년을 따져묻고도 달라지는 것이 없자 2012년 구청에 민원을 넣습니다. 구청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에게 관리비 징수 사항을 공개하라고 행정지도를 하지만 상황은 지지부진 흘러갔습니다. 서울시가 전 가구 실태조사를 한 뒤에야 드디어 난방량 ‘0’인 세대가 드러납니다. 누군가 계량기를 조작한 것은 아닌지 구청은 현재 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입니다.

지난 8월6일 서울 신촌 일대에서 ‘민달팽이 유니온’ 조합원과 프로젝트 연구원이 거리를 지나가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원룸 관리비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다. 민달팽이 유니온 제공
지난 8월6일 서울 신촌 일대에서 ‘민달팽이 유니온’ 조합원과 프로젝트 연구원이 거리를 지나가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원룸 관리비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다. 민달팽이 유니온 제공
저도 부선씨 ‘코스프레’를 해봤습니다. 퇴근하고 옆방, 앞방, 아랫방의 벨을 누르며 민폐를 끼쳤습니다. “지난달 관리비 얼마 내셨어요?” 총 5명의 이웃에게 물었는데 ‘생각이 안 난다’며 답을 못한 분이 3명이었습니다. 건물 주인 아저씨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관리비 10만5천원이 어떻게 나오는 건지요?” 아저씨는 “그냥 다 합친 거예요 다. 총액만 내면 돼. 껄껄” 하시네요. “전 가구 공통인 고정관리비 9만원에 전기료 1만5천원 나왔다”는 추가 설명을 듣긴 했지만 관리실로 내려가 장부를 보여달라 하니 고정관리비를 집마다 다르게 받고 계셨습니다. 어느 집은 8만원, 어느 집은 10만원, 저희 집은 9만원… 그간 총 금액만 습관적으로 냈는데, 가구마다 돌아다니며 난방비를 묻고 실생활에서 발품을 발아 정의를 따지려 한 부선씨의 10년 싸움이 절절하게 다가왔습니다. 폭행 사건에 연루돼 안타깝지만 김부선씨는 생활공간에서 작은 부조리부터 개선하려 한 ‘생활 진보’가 아닐까요?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저도 이제 ‘생활 진보’가 되려 합니다. 원룸 관리비를 투명하게 하는 방안으로 주인아저씨와 ‘표준 관리비 내역서’를 만들어볼까 합니다. 주거 문제를 고민해온 청년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은 “임대차 계약시 관리비의 항목과 금액을 계약서에 넣어 서로 나눠 갖고, 임대인이 건물 관리에 관한 지출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정책적으로 의무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전합니다. 용감한 개인 한 명이 비리를 파헤치는 것에만 기댈 수는 없잖아요?!

김미향 온라인뉴스팀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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