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25일 양승태 전 대법관이 제15대 대법원장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전임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 진보적 의견을 많이 내어 ‘독수리 5형제’로 불렸던 김영란·박시환·김지형·이홍훈·전수안 대법관 가운데 현직은 박시환·김지형·전수안 대법관 3명뿐이었다. 그나마 박시환·김지형 대법관은 두달 뒤 퇴임을 앞두고 있었다.
1980년대에 시국사건을 다루면서 정보기관의 ‘협조’ 요청을 거부했다가 인천지법에서 6개월 만에 춘천지법 영월지원으로 인사 조처를 당했던 박 대법관은 법원 내 소장파들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고, 원광대 출신의 ‘비주류’인 김 대법관 또한 노동법에 조예가 깊고 상대적으로 진보적 색채가 있었다. 이들의 후임으로 누구를 인선하는지가 양승태 체제 대법원의 방향을 보여주는 시금석이 되는 상황이었다.
양 대법원장은 취임 이틀 뒤 기자회견에서 대법관 인선에 대해 “고도의 법적 경험을 갖춘 사람들이 필요하다”면서도 “외형적으로 다양성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얼마 뒤 양 대법원장은 김용덕(57·사법연수원 12기) 법원행정처 차장과 박보영(53·16기) 변호사를 두 대법관 후임으로 임명제청했다.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을 거친 김용덕 차장은 법이론에 밝고 요직을 두루 거친 엘리트 법관이었고, 박 변호사는 한양대 출신으로 판사를 거쳐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자녀 셋을 키우는 싱글맘이라는 점도 화제가 됐다. 김 차장이 ‘전문성’의 상징이라면 박 변호사는 ‘다양성’의 표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다른 목소리를 낼 것이라던 박보영 대법관의 실제 활동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참여한 전원합의체 판결 56개에서 반대의견을 5차례(8.9%) 내는 데 그쳤다. 별개·보충의견 또한 5차례(8.9%)에 불과해 다수의견과 조금이라도 다른 목소리를 낸 경우가 17.8%에 불과했다. 양 대법원장 취임 이후 전원합의체 판결에 참여한 전체 대법관 평균인 23.2%(반대의견 13%, 별개·보충의견 10.2%)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에 반해 전임자인 박시환 전 대법관은 재임기간 6년 동안 95건의 판결에서 반대의견을 20회(21.1%), 별개·보충의견을 15회(15.8%) 개진해 다른 목소리를 낸 경우가 36.9%에 달했다. 김지형 전 대법관도 반대의견 13회(13.7%), 별개·보충의견 17회(17.9%)를 냈다. 다양성을 대표하는 듯한 외양과 달리 박보영 대법관은 ‘다수파 추종자’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양 대법원장의 두번째 대법관 인사는 2012년 7월에 있었다. 박일환·김능환·전수안·안대희 대법관이 한꺼번에 퇴임했다. 마지막 ‘독수리 5형제’이자 여성인 전수안 대법관마저 물러나면 대법원에서 진보적 목소리가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었다. 양 대법원장은 고영한(59·11기) 법원행정처 차장, 김신(57·12기) 울산지법원장, 김창석(58·13기) 법원도서관장, 김병화(59·15기) 인천지검장을 후임으로 임명제청했다.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정통 법관·검사 출신 남성이었기에 비판이 쏟아졌다. 전임자 시절 2명에 불과했던 여성 대법관 수는 그나마 하나로 줄어들 상황이었다. 전수안 대법관은 퇴임사에서 “헌법기관은 그 구성만으로도 벌써 헌법적 가치와 원칙이 구현돼야 한다”며 에둘러 이런 인사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안대희 대법관 후임 ‘검찰 몫’ 대법관 후보였던 김병화 전 지검장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저축은행 비리 브로커와 교류하는 등 부적절한 처신을 한 사실이 드러나 낙마했다. 양 대법원장은 ‘획일화’ 지적을 고려한 듯 김소영(49·19기) 대전고법 부장판사를 후임 후보로 임명제청했다. 당시 거론되던 선배 여성 후보자들을 제치고 연수원 기수가 한참 낮은 김 부장판사가 발탁되자 법원 내부에서는 파격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김소영 대법관의 행보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참여 판결 31건에서 반대·별개·보충의견을 낸 경우는 6차례(19.4%)로 평균치에 미달한다. 양 대법원장으로서는 ‘젊은 여성 법관’이라는 카드를 통해 개혁적 인사라는 이미지를 심고, 실제로는 ‘다수파’ 대법관 한명을 추가한 셈이 됐다.
그와 함께 임명된 이들의 면면 또한 비슷하다. 고영한 대법관은 참여 판결 38건에서 반대·별개·보충의견을 5차례(13.2%), 김창석 대법관은 참여 판결 38건에서 반대·별개·보충의견을 8차례(21.1%) 냈다. 그나마 김신 대법관이 참여 판결 38건에서 10차례(26.3%) 반대·별개·보충의견을 내어 유일하게 평균 이상을 기록했다.
이들의 행보는 전임자들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뚜렷하다. 박일환 전 대법관은 재임 기간 참여한 판결 69개에서 반대·별개·보충의견을 낸 경우가 13차례(18.8%)에 그쳤지만, 김능환 전 대법관은 106개 중 35개(33.3%), 전수안 전 대법관은 107개 중 36개(33.6%), 안대희 전 대법관은 106개 중 39개(36.8%)에서 다수와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결국 양 대법원장 취임 뒤 두 차례의 대법관 교체를 통해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다양한 의견을 내던 몇몇 대법관들의 자리는 ‘대세 순응형’ 인사들로 대체됐다고 볼 수 있다. 반대의견이 적다고 획일화로 단정할 수 있느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법리라면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대법관들이 토론 과정에서 설득당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게 대법관들의 설명이다. 반대의견이 적다는 것은 결국 ‘비슷한 생각’을 가진 대법관들이 많다는 뜻이다.
비슷한 생각은 비슷한 출신에서 비롯된다. ‘독수리 5형제’ 퇴임 이후, ‘서울대 출신·50대·남성·고위법관’이라는 대법관들의 일반적 ‘스펙’ 또한 더욱 강화됐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여러 분야에서 융합·다양화가 깊어지고 있는데, 유독 사법부에서는 반대 경향이 강화되면서 퇴행이 진행되는 셈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한 전직 대법관은 “여성이나 비서울대 등 외적으로 일부 다양화를 추구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법원장이 자신의 성향에 맞는 여성, 비서울대, 비법관 출신을 선택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영향력’도 무시하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초기에 진보 성향의 대법관들을 발탁하면서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와 사법개혁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다시 주류 법관 출신들을 대법원으로 끌어들였다. 이 전 대법원장이 참여정부 때 임명한 대법관 그룹(김황식·박시환·김지형·박일환·김능환·전수안·안대희)이 전원합의체 사건들 중 반대·별개·보충의견을 개진한 경우가 평균 33.6%였지만, 이명박 정부 때 임명한 그룹(차한성·양창수·신영철·민일영·이인복·이상훈·박병대)은 그 비율이 22.6%로 떨어진다. 지금 상황은 보수 정권과 양 대법원장의 ‘협업’ 아래 단조로운 보수 일색화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지난 6월 법조계에서는 <개과천선>이라는 법정드라마가 큰 화제가 됐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젊은 변호사가 환율상품(실제 ‘키코’ 사건이 모델) 관련 소송에서 중소기업 쪽 대리를 맡은 뒤 대법관 명단을 보며 인권변호사인 아버지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지금 대법관 13명 아무나 찍어봐도 특징이 다 똑같아요….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에서 튀지 않고 보수적인 판결을 내린 법관들, 그게 지금 대법관들 구성이에요.”
“참여정부 때만 해도 제 목소리 내는 사람이 몇 있었지. 10년 전만 해도 법원이 이러지 않았어.”
드라마는 픽션이지만, 대화 내용은 논픽션이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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