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촛불문화제가 열린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유족들의 발언을 듣던 한 참가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와 국민대책회의는 이날 광화문광장을 비롯해 수원, 인천, 청주 등 13개 지역에서 ‘성역 없는 진상규명 특별법 촉구 문화제’를 열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법학자들이 말하는 해법
‘정치적 책임규명은 조사위서
범죄수사는 특검서’ 투트랙 제안
조사위에 구인장·자료요구권 등
최소한의 강제력 담보하고
특검 임명은 유족 뜻 반영돼야
‘정치적 책임규명은 조사위서
범죄수사는 특검서’ 투트랙 제안
조사위에 구인장·자료요구권 등
최소한의 강제력 담보하고
특검 임명은 유족 뜻 반영돼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5개월이 넘었지만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 “성역 없는 진상조사를 통해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전사회적 다짐은 정치적 공방으로 변질되고, 유가족들의 고립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겨레>는 21일 진보적 성향의 법학자나 전문가들에게 해법을 물어봤다. 전문가들은 “(유족들이 요구하는)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 사법체계를 흔들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로 하면서도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권을 강화하고, 진상조사위와 특별검사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진상규명을 해 나가자”는 ‘현실론’을 제시했다. 세월호 구조에 실패한 원인과 그에 따른 정치·사회적 책임은 ‘진상조사’를 통해 밝혀 사회적 관심을 이어가고, 범죄 사실은 ‘특별검사’를 통해 처벌하자는 일종의 ‘투트랙’ 제안이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강경 자세로 인한 세월호 특별법의 장기 표류로 진상조사가 첫걸음도 떼지 못하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 성격도 있다. 정부와 여당에 대한 유족들의 불신을 해소하면서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도 받아들일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자는 것이다.
■ “진상조사위 실질적 권한 필수적”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담당할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하자는 주장이 “사법체계에 전혀 위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삼권분립을 훼손하기 때문에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줄 수 없다”며 국회와 세월호 유가족들의 논의를 봉쇄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세월호 특별법 수사권·기소권 쟁점이 과도하게 정치쟁점화되며 본질인 진상조사의 중요성이 가려지는 측면이 있다”며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권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해결책을 우선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현재 여야는 특별법 2차 합의안에 진상조사위에 동행명령권과 자료제출요구권(위반시 과태료 최대 3000만원) 부여 등 최소한의 장치를 뒀지만, 해경·해수부 등 정부기관과 청해진해운 등 민간에 대한 강제력이 완전히 담보되지 않는다는 한계를 지적받고 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고와 관련된 범죄는 수사할 수 있다. 하지만 구조하지 못한 책임에 대해선 수사로 밝혀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철저한 조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대통령의 7시간’은 범죄 혐의가 있는 게 아니어서 수사 대상이라 보기 힘들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사는 해야 할 문제다”라며 “정치적 책임은 조사로, 범죄는 수사로 밝혀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적어도 조사를 위한 자료 제출이라도 보장되는 해법을 찾고 수사와 기소는 특검에서 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조합을 할 수 있다. 법원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며 정부와 여당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 “조사를 통해 사회적 관심 이어가야”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권 강화를 위해 조국 교수는 미국의 9·11 조사위원회가 가졌던 구인장(소환장·subpoena) 제도를 제시했다. 법원이 정하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등보다 수위는 낮지만, 국회나 진상조사위가 조사 대상자를 위원회나 회의에 부를 때 강제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구인장’ 제도가 비교적 효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제처 법령정보관리원이 6월에 낸 ‘미국 9·11 조사위원회 개관’ 연구보고서를 보면 “위원회는 연방항공청(FAA)·국토부·뉴욕시 등 세개의 국가기관에 대해 ‘소환권’을 사용했고 모두 소송 없이 원만하게 해결됐다”고 밝혔다. 오창익 사무국장은 “최소한 관련 자료만은 진상조사위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에 신청하는 방식으로 확보하는 방안을 특별법으로 정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런 제도를 통해 진상조사위의 조사권을 수사권에 버금가도록 강화시킬 수는 없을지라도, 사회적 관심을 모으고 유족들의 불신을 해소하는 데 의미가 있을 것이란 견해도 나온다. 세월호 국민대책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한 법학 교수는 “현재의 진상조사위에서 강제조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도 “국민들의 관심을 어떻게든 지속적으로 모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조사 대상자들이 국민 시선을 의식해 진상조사위에 안 나올 수 없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도도 중요하지만 유족들이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신뢰를 구축할 수 있게 만드는 데 달렸다”고 말했다.
■ “유족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특검으로 수사·기소”
전문가들은 진상조사위의 조사를 바탕으로 특검이 수사와 기소를 맡아 범죄 사실을 수사하고 처벌하는 ‘투트랙’ 방식으로 갈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오창익 사무국장도 “진상조사위에 최대한 수사·조사 장치를 마련하고 특검이 2차 수사 하는 방식 등을 조합하는 방안으로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단, 유족들의 의견이 반영된 특검 임명은 필수적이라는 게 대부분의 견해다. 유가족들은 엉망진창이었던 정부의 초기 대응과 국회의 부실한 국정조사와 청문회 등을 거치며 강한 불신을 갖게 되면서 자신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세월호 특별법을 더욱 강하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유족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기소권 부여를 더욱 강하게 요구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를 모질게 외면하는 청와대와 여당의 태도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진상조사위를 통해 가능한 데까지 철저하게 조사하고, 그 이후에 특검을 적절하게 병용해야 한다”며 “세월호 참사는 가해자나 책임자 일부가 국가기관일 수 있기 때문에 조사 당사자가 될 수도 있는 정부와 여당은 (특별검사 추천권에서) 제외돼야 할 특수한 상황”이라며 “기존 상설특검법과 달리 특별법에 특별규정으로 여당 추천 대신 세월호 유가족들이 추천한 인사들이 특검을 추천하는 방안을 담는 것이 필요하고 이는 ‘특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법적으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승준 이유주현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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