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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내가 복직한 뒤 내가 얻은 것들

등록 2014-09-23 19:04

생생육아
“삐빅 삐삑삑삑삑 삐비~빅!”

오전 10시, 구원과도 같은 전자음에 귀가 쫑긋 선다. 도우미 이모님의 출근을 알리는 출입문 자물쇠 소리다. 환한 표정으로 딸과 인사하는 이모님의 손엔 검정 비닐봉지가 들려 있다. “요즘 아침 못 먹는 거 같아서…. 이거라도 먹어요.” 집 근처 지하철역 노점에서 파는 뜨끈한 토스트였다. 나를 가엾게 여기는 이모님의 뜨끈한 마음에 감동해 눈곱 낀 내 눈에 눈물이 맺히는 듯했다.

아내 복직한 지 한달 반, 나의 일과는 이렇다. ‘새벽형 인간’인 딸(마침 오늘이 딸의 첫 생일이다. 딸, 생일 축하해!)은 야속하게도 새벽 5시에 깬다. 그때부터 서로 주거니 받거니 아이를 돌보다, 오전 8시에 출근하는 아내를 따라 유모차를 끌고 밖에 나선 순간부터 아이는 온전히 내 몫이 된다. 30분여 동안 하염없이 아파트 단지를 배회하는데, 아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왜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와 있는지 이제야 알게 됐다. 집에 돌아와선 딸의 거센 도리질을 뚫고 설득해가며 입속에 이유식을 밀어넣는다. 시계를 보면 아직도 9시. 어머니와 장모님에게 영상통화로 딸과 놀아달라 한 뒤, 부쩍 행동반경이 넓어진 딸과 추격전에 가까운 놀이를 시작한다. 더디게 한 시간이 흐르면 이모님께 아이를 넘기고 그제야 출근 준비를 한다.

편집기자의 업무 특성과 회사가 가까운 사정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꽤 길다. 직장인 아빠치고는 육아 기여도 또는 숙련도가 꽤 높은 편이지만, 아이와 단 몇시간, 규칙적으로, 단둘이 보내는 게 이리도 버거운지 몰랐다.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내의 복직 이후 한달 반 만에 4킬로그램이 빠졌다.

사실 아내는 ‘출산휴가+육아휴직’ 1년3개월을 다 채우지 못하고 1년 만에 복직했다. 아내는 가끔 옷을 차려입고 출근하는 직장여성들을 보면서, 카톡을 통해 회사 동료들에게 들은 회사 얘기를 전하면서 “빨리 복직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가급적이면 오래 쉬는 게 좋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이른바 ‘경력단절’ 없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휴직 기간을 꽉 채우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원할 때 복직하라고 했고, 그 결과 육아의 비중은 역전됐다.

아내가 복직한 뒤, 같이 있을 땐 몰랐던 육아휴직 중인 아내의 삶을 더 잘 알겠다. 아내에게 꾸준히 강조한 ‘아이의 규칙적인 생활’이 결코 쉬운 점은 아니라는 것도 알겠고, 아이를 돌보면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다른 소소한 가정사를 챙기기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겠다. 가장 절실히 깨달은 건 퇴근 시간 무렵 “집에 언제 오냐”고 묻던 아내의 카톡이 내가 보고 싶어서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내의 복직 뒤 얻은 것은 몇가지 더 있다. 엄마만 찾던 아이가 아빠를 찾는 순간이 더 늘어났고, 아이의 일상에 대해 내가 아내에게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오늘 아침에 얘 혼자 짚고 일어섰어”나 “얘가 자기 퇴근할 시간쯤 되면, 자기 사진 보고 엄마~엄마~ 해” 같은.

아내에게도 물었다. 복직하고 좋아진 점이 뭐냐고. (무드 없는) 아내의 대답은 단순했다. “글쎄… 수입이 늘었다는 거?”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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