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살던 한 노인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홀몸 노인을 위해 써달라고 거액을 남긴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3일 새벽 5시50분께 충북 영동군 영동읍 임계리 한 원두막에서 인근 동네에 사는 원아무개(68)씨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원씨가 숨진 주변에선 현금 1천만원과 유서가 함께 발견됐다. 원씨는 유서에서 “외로움과 우울증, 불면증에 시달렸다. 이 돈으로 마을에서 장례를 치르고 남으면 마을 기금으로 써달라”고 밝혔다.
원씨는 숨지기 일주일 전부터 주변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6일 오전엔 영동읍사무소에 들러 2천만원을 건넸다. 이미애 영동읍 주민복지 담당은 “원씨가 주변에 있는 노인들을 위해 써달라며 돈 봉투를 건넸다. 언론에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고서야 돌아섰다. 음료수 한 잔 권한 게 마지막이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읍사무소는 원씨의 바람에 따라 도움을 줄 대상자를 찾고 있다.
원씨는 18일엔 마을에 발전기금 2천만원도 내놨다. 이 마을 김종현(68) 이장은 “‘마을 노인 등을 위해 뭔가 일을 하고 싶어서 얼마 안 되지만 내가 가진 것을 내놓는다’며 돈을 줬다. 원씨의 뜻대로 회의를 열어 마을 노인을 위해 쓰기로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떠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원씨는 포도 농사를 하다 수년 전 그만둔 뒤 주변 건물 경비일로 생계를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이장은 “부인과 헤어진 뒤 거의 홀로 생활해왔다. 좀 내성적이긴 했지만 마음이 따뜻한 이웃이었다. 원씨의 뜻을 가슴에 새기겠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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