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토요판팀에서 일하는 허재현입니다. 올 한 해는 ‘간첩 조작 의혹 보도’를 계속 이어가고 있어 저를 눈여겨봐주시는 독자님과 국정원 관계자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종류의 관심이든 저에게는 무척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국정원과 미묘하게 ‘썸타는’ 관계는 계속될 것 같으니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다음주 개막 예정인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이야기를 좀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영화 담당 기자는 아니지만 다큐멘터리 <다이빙벨>(감독 이상호·안해룡) 상영 논란이 점점 이슈로 떠오르는 바람에 제가 관련 취재를 좀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부산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에서 공식 상영될 예정입니다.
특정 영화에 대한 찬반논란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생각들이 ‘민주주의의 용광로’ 속에 뒤엉켜 논쟁하며 슬기로운 해법을 찾는 사회이니까요. 그러나 부산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서병수 부산시장이 나서서 상영중단 압력을 넣고 있다는 의혹은,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정치적 외압으로부터 영화제를 지켜야 할 조직위원장이 나서서 정권의 눈치를 보고 특정 영화의 상영 중단을 거론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부끄러운 일이고 아시아 최고 권위를 가진 영화제에 크나큰 흠집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부산시가 압력을 행사했는지는 좀 모호합니다. 서병수 시장의 뜻을 받아 부산시 공무원이 직접 이용관 집행위원장에게 상영을 중단하라고 말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만, 부산영화제 쪽은 부인하고 있습니다. 25일 오전 이 위원장은 저와의 통화에서 “부산시 공무원과는 수시로 전화를 주고받는다. 부산시 쪽에서 다이빙벨 상영작 선정과 관련해 난감하다는 얘기를 한 정도다. 상영하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어서 우리는 신경 안 쓰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올해 부산영화제 예산은 123억5000만원입니다. 이 중 부산시 예산이 60억원 넘게 투입되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 14억6000만원도 투입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시가 “다이빙벨 상영은 난감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과연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도 되는 발언일까요. 게다가 부산시의 유감 표명은 이런저런 경로로 수차례 전달됐다고 합니다. 특정 영화에 대한 우려 표시는 매해 반복되는 일이었다고도 하는군요.
폭력에 너무 자주 노출되면 나중에는 이것이 폭력인지 아닌지 무감각해지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부산영화제에서 벌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정지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가 상영됐습니다. 전주영화제 관계자는 “당시 전주시로부터 영화 상영과 관련해 어떤 연락도 받은 바 없다. 오히려 전주시 공무원들이 영화제를 보호하기 위해 애썼다”고 전했습니다. 당시에 국정원과 보수단체 등에서 전주시에 수차례 전화를 걸어 항의했지만 전주시가 상영 프로그램을 절대 건드려선 안 되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항의를 막으려고 애썼다는 전언입니다. 전주영화제 관계자는 “시는 영화제 지원에만 최선을 다해야지 상영 프로그램의 어떤 부분도 관여해선 안 되고, 언급조차 해서는 안 된다. 부산영화제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외압에 휘둘리지 않아서 올해는 그럭저럭 넘어간다 하더라도 내년, 내후년에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지요. 한 영화인은 “부산시와의 갈등이 표면화되어 문제가 커지는 것보다는 내부적으로 풀어가는 게 좋겠다고 판단해 영화제 쪽이 ‘외압 받지 않았다’고 해명하는 것 같은데 이런 무기력한 대응이 외압을 지속시킨다”고 비판했습니다.
진실은 앞으로 부산시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며 파악하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내년에 부산영화제 집행위원회 구성원들이 대폭 물갈이되거나 혹은 예산상 어떤 불이익이 발생하면 지금 세간에 나도는 관측들이 뜬소문은 아닌 것으로 판명나겠지요.
부산영화제 쪽이 다이빙벨 영화의 줄거리와 상영작 선정 이유, 선정 책임자 등을 문화체육관광부에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문화부는 한선교 의원의 자료제출 요청이 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곧 국정감사입니다. 부산영화제 내부에서는 부산시 외압 관련 내용을 발설한 제보자 색출에 나섰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부산영화제는 “괜찮아, 이겨낼 수 있어”라고 할지 모르지만, 지켜보는 이들은 “안 괜찮아, 불안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허재현 토요판팀 기자 catalunia@hani.co.kr
허재현 토요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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