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가족 / 남편의 누나
▶ 남편의 어머니, 즉 시어머니와 갈등을 빚는 며느리는 많습니다. 고부간의 갈등은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일찍 돌아가신 시부모님 대신 남편과 시누이의 지나치게 의존적이고도 집착적인 관계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 한 여성이 여기 있습니다. 남편에게 큰 애정이 없는 여성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방치하고, 딸은 고모와 아버지에게 문제를 제기하다 포기하고 맙니다. 이 가족은 함께 살지도 않은 ‘제4의 가족’인 남편의 누나를 잘 껴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나를 좀 만나야 되지 않겠어?”
남편의 누나가 또다시 내게 전화를 한다. 남편의 누나, 즉 시누이는 우리 부부 사이의 문제가 악화될 때마다 내게 전화를 했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딸에게까지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몹시 다혈질인데 화가 나서 성질에 못 이기면 전화 통화를 하다가도 욕설을 뱉었다. 나는 대충 대답을 얼버무리며 전화를 끊는다. 결혼 초기에 그녀에게 화가 나기도 했지만 임신을 하고 딸을 낳아 키우면서 그런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그녀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내 성격상 그녀와 싸우는 것도 귀찮았다. 관용이라기보다 ‘포기’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남편에 대한 누나의 집착만큼 누나에 대한 남편의 애정도 대단했다. 둘의 관계는 오누이라기보다 엄마와 아들에 가까웠다.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다닐 때 부모님을 잃은 남편은 여덟살 많은 누나를 어머니처럼 따랐다. 남편은 어린 시절, 시아주버니 집에서 자랐는데 ‘눈칫밥’을 먹었다고 했다. 가난했던 시절, 누나만큼은 남편에게 따뜻한 존재였다. 부모님을 잃은 뒤 누나는 학교를 포기하고 집안 살림을 맡았다. 철없는 남편은 누나가 싸준 도시락이 맛이 없다며 집어던지기도 했다. 누나는 성질 나쁜 남동생을 예뻐하고 사랑해주는 어머니 같은 여자였다.
남편과 누나가 특별한 관계로 자랄 수밖에 없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거친 것은 안다. 남편의 과거가 안쓰러웠지만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남편은 나와 결혼하고서도 누나에 대한 애정을 거두지 않았다. 내가 하는 다른 말은 무심코 들으면서도 누나에 대한 이야기에 감정적으로 반응했다. 무심결에 누나가 준 된장은 찌개용이 아니라 쌈장용이라서 찌개를 끓여도 맛이 없다고 했다가 사달이 나기도 했다. 남편은 밥을 먹다가 절제되지 않은 분노를 터뜨렸다. 그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인데, 누나에 대한 험담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그 일이 있고 나서 누나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부엌에 들어와서도 남편은 누나의 살림살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부엌에서 수제 요구르트를 만들고 있는 걸 보며 “누나가 말이야”라고 참견했다. 누나가 아닌, 나의 방식으로는 요구르트가 만들어질 수 없다고 했다. 김치를 담글 때도 누나와 함께 하라고 했다. 집에서 갈등을 빚고 싶지 않은 나는 남편이 원하는 대로 누나와 김장을 했다. 남편의 누나는 시장에 가는 길에 뭘 사오라고 내게 시키기도 했고, 우리 집에서 2주일간 휴가를 보내며 밥을 먹었다. 물론 식사 준비는 내 몫이었다. 내가 남편에게 화가 나서 한동안 가출했을 때 누나가 우리 아파트 이웃집 연락처까지 파악해 갔으며 이웃들에게 나에 대한 험담을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들은 적도 있다. 나는 늘 모른 척했다. 나만 포기하면 별일 없을 줄 알았다. 남편에 대한 애정이 대단히 많은 여자였다면 결혼생활을 끝장내도 열두번은 끝냈을 관계다. 하지만 나는 며칠 지나면 무덤덤하거나 심드렁해졌다. 솔직히, 그만큼 남편에게 관심이 많은 편도 아니었다. 어쩌면 나의 무관심이 남편의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키웠을지 모른다. 그러니 절대적으로 남편만 가해자고, 나만 피해자인 것도 아니다. 남편은 늘 사랑을 갈구했고 나는 늘 외면하는 잘못을 반복했다.
내가 남편과 대판 싸우고 나면
그녀가 전화해서 나랑 만나잔다
싸우기도 귀찮다, 포기했다
남편한테 애정이 없는 탓이지 대신 내 딸이 고모를 들이받아
사춘기 딸은 그 관계 이해 못해
아빠는 존경 못 받는 어른아이
난 잔인한 어른, 딸은 어른인 척 내가 외면했던 그 문제를 딸은 늘 들이받았다. 사춘기 딸은 남편과 누나의 독특하고도 의존적인 관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부부간에 문제가 생길 때, 딸이 보는 앞에서 남편은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어린아이처럼 하소연했다. “이 집에서 정말 못 살겠네!” 딸은 아버지를 존경할 수 없었다. 딸이 남편과 누나(고모)에게 불만을 터뜨려도 두 사람은 말을 듣지 않았다. 누나는 딸에게 욕설을 했고, 남편은 이를 묵인했다. 남편은 딸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딸이 남편에게 “왜 고모에게 가족 이야기를 시시콜콜 다 말하느냐”고 따지면 남편은 “그런 적 없다”고 답했다. 대화가 될 리 없었다. 나는 딸을 위로했지만 딱히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냥 고모랑 살라고 해.” 딸은 내게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다가도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와 고모에 대한 딸의 불만은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다가 한순간 꺼져버렸다. 마치 나처럼 말이다. 딸은 대학생이 된 뒤에 고모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남편에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기대를 저버렸다. 딸과 나는 꽤 친밀한 관계였는데 묘하게 우리 가족은 딸과 나, 남편과 고모라는 두 집단으로 나뉜 것처럼 돼버렸다. 누나는 우리 집에 살지 않는데도 같이 살고 있는 무형의 존재였다. 그러나 누나가 아무리 남편을 살뜰하게 챙겨준들 함께 살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누나에겐 자녀들과 별 애정 없는 그녀의 남편이 있었다. 남편은 나와 딸의 친밀한 관계에 끼지 못하고 겉돌았고, 외로워했으며, 그 외로움을 다른 집에 사는 누나에게서 구했다. 늘 악순환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늘 남편에게 충만한 사랑을 주지 않았다. 남편이 ‘어른아이’라면 나는 ‘잔인한 어른’이었다. 딸은… 쿨하게 어른인 척하는 뜨거운 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상하게도, 어울리지 않은 우리 셋의 조합은 20년이 넘도록 깨지지 않았다. 아버지를 포기했다던 딸도 완전히 포기한 게 아니었고, 남편에게 무신경한 나도 늙어가면서 이 인간이 가여웠다. 그리고 남편은 어떻게 보면 딸과 나보다 착한 사람인데, 언제나 우리를 짝사랑했다. 남편은 경제적으로 무능하지 않았고 가정에 불성실한 것도 아니었다. 누나에 대한 애정만큼 우리 가정에도 꽤 충실했다. 우리 가족은, 앞으로도 ‘제4의 존재’인 누나와 함께 적당히 살아갈 것이다. 헤어지지 않겠지만, 삶의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삐걱거리겠지만 그렇다고 가족이 아닌 것은 아니다. 이상한 가족
그녀가 전화해서 나랑 만나잔다
싸우기도 귀찮다, 포기했다
남편한테 애정이 없는 탓이지 대신 내 딸이 고모를 들이받아
사춘기 딸은 그 관계 이해 못해
아빠는 존경 못 받는 어른아이
난 잔인한 어른, 딸은 어른인 척 내가 외면했던 그 문제를 딸은 늘 들이받았다. 사춘기 딸은 남편과 누나의 독특하고도 의존적인 관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부부간에 문제가 생길 때, 딸이 보는 앞에서 남편은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어린아이처럼 하소연했다. “이 집에서 정말 못 살겠네!” 딸은 아버지를 존경할 수 없었다. 딸이 남편과 누나(고모)에게 불만을 터뜨려도 두 사람은 말을 듣지 않았다. 누나는 딸에게 욕설을 했고, 남편은 이를 묵인했다. 남편은 딸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딸이 남편에게 “왜 고모에게 가족 이야기를 시시콜콜 다 말하느냐”고 따지면 남편은 “그런 적 없다”고 답했다. 대화가 될 리 없었다. 나는 딸을 위로했지만 딱히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냥 고모랑 살라고 해.” 딸은 내게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다가도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와 고모에 대한 딸의 불만은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다가 한순간 꺼져버렸다. 마치 나처럼 말이다. 딸은 대학생이 된 뒤에 고모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남편에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기대를 저버렸다. 딸과 나는 꽤 친밀한 관계였는데 묘하게 우리 가족은 딸과 나, 남편과 고모라는 두 집단으로 나뉜 것처럼 돼버렸다. 누나는 우리 집에 살지 않는데도 같이 살고 있는 무형의 존재였다. 그러나 누나가 아무리 남편을 살뜰하게 챙겨준들 함께 살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누나에겐 자녀들과 별 애정 없는 그녀의 남편이 있었다. 남편은 나와 딸의 친밀한 관계에 끼지 못하고 겉돌았고, 외로워했으며, 그 외로움을 다른 집에 사는 누나에게서 구했다. 늘 악순환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늘 남편에게 충만한 사랑을 주지 않았다. 남편이 ‘어른아이’라면 나는 ‘잔인한 어른’이었다. 딸은… 쿨하게 어른인 척하는 뜨거운 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상하게도, 어울리지 않은 우리 셋의 조합은 20년이 넘도록 깨지지 않았다. 아버지를 포기했다던 딸도 완전히 포기한 게 아니었고, 남편에게 무신경한 나도 늙어가면서 이 인간이 가여웠다. 그리고 남편은 어떻게 보면 딸과 나보다 착한 사람인데, 언제나 우리를 짝사랑했다. 남편은 경제적으로 무능하지 않았고 가정에 불성실한 것도 아니었다. 누나에 대한 애정만큼 우리 가정에도 꽤 충실했다. 우리 가족은, 앞으로도 ‘제4의 존재’인 누나와 함께 적당히 살아갈 것이다. 헤어지지 않겠지만, 삶의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삐걱거리겠지만 그렇다고 가족이 아닌 것은 아니다. 이상한 가족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