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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어른들이 ‘색칠 공부’에 빠진 이유…

등록 2014-09-29 15:33수정 2014-09-29 16:03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대신 다양한 색칠 도구로 여러 가지 밑그림에 색깔을 채워넣는 ‘색칠놀이’가 성인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어른들의 색칠놀이’는 잡념으로부터의 자유를 선물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예술작품’을 완성하는 쾌감도 준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대신 다양한 색칠 도구로 여러 가지 밑그림에 색깔을 채워넣는 ‘색칠놀이’가 성인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어른들의 색칠놀이’는 잡념으로부터의 자유를 선물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예술작품’을 완성하는 쾌감도 준다.

마음 치유 내세운 ‘컬러링북’ 인기몰이,
“잡념 사라지고” “색을 골라 마음껏 칠하는 쾌감”
책읽기, 영화보기, 음악듣기…. 바깥활동을 그리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누군가 취미를 물을 때 망설이다 하는 대답이다. 이 얕은 취미의 영역에 새로운 분야가 등장했다. 색칠놀이. 어릴 때 하던 ‘색칠공부’가 다양한 유형의 밑그림에 색깔을 채워넣는 방식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다만 ‘마음을 치유하는 색칠놀이’ ‘안티 스트레스 컬러링북’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요리책보다 더 빨리 팔려나가는 프랑스

영어강사 이지윤(29)씨는 자전거타기, 등산 등 활동적인 여가를 즐기는 편이다. 쉬고 싶을 때도 뭔가를 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 성격이다. 그런 이씨가 ‘쌍코’ ‘소울드레서’ 등 여성들이 주로 가는 온라인 카페에서 최근 ‘컬러링북’에 색칠한 작품을 올려놓는 포스팅을 자주 접했다. “<비밀의 정원>이라는 책인데, 유행처럼 너도나도 하더라고요. 예쁘기도 하고, 색깔을 칠하다보면 재밌을 것 같기도 해서 저도 사게 됐어요.” 이씨는 카페에 <비밀의 정원>을 들고 가 친구와 한 페이지씩 나눠 색칠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집에서 저녁에 홀로 한두 시간 색칠한다. “야외활동에 지쳐 쉬고 싶을 때도 할 일이 필요한데, 이건 저한테 맞는 정적인 취미인 듯해서 좋아요.” 이씨는 친구에게도 선물하려고 같은 책을 한 권 더 샀다.

컬러링북은 프랑스를 필두로 유럽에서 선풍적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해부터 컬러링북이 실용서 분야의 독자적 장르로 자리잡았다. 대형 출판사들은 장르별·문양별로 관련 책을 출판해 컬러링북만 수십 종에 이른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컬러링북 열풍’과 관련한 글을 쓴 캐스린 브롬위치는 “프랑스에서는 컬러링북이 요리책보다 더 빠른 속도로 팔려나가고 있다”며 “날씬해지는 법, 아이를 키우는 법, 데이트하는 법은 물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에 일가견이 있는 프랑스 사람들이 새롭게 발견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컬러링북이다”라고 썼다.

국내 출판사들도 이 흐름에 주목하고 책을 들여왔다. 옷, 가방, 구두, 다양한 스타일의 여성 일러스트에 채색할 수 있는 <아트테라피>(북샵일공칠 펴냄), 채색과 낙서를 결합한 <치유와 몰입을 위한 아트테라피 컬러링북>(한스미디어 펴냄) 등 서너 종이 최근 출간됐다. 대형 서점은 ‘컬러링북’ 판매 코너를 별도로 마련했다. 이 가운데 국내에서는 <비밀의 정원>이 인기다. 출간 한 달 만에 6쇄를 찍으며 4만여 부가 팔려나갔다. <비밀의 정원>은 조해너 배스포드라는 영국의 손작업을 주로 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펜과 잉크로 그린 밑그림에 색깔을 입히도록 돼 있다. 밑그림은 정원에서 발견할 수 있는 벌·나비·거미·잠자리·딱정벌레 같은 곤충을 비롯해, 새·물고기·고양이·쥐 등 작은 동물들과 도토리·포도 등 열매, 꽃과 나뭇잎 패턴 등이 다양하고 세밀하게, 한편으론 복잡하게 그려져 있다. 군데군데 비밀스러운 자물쇠, 보물상자, 병 속의 편지 등도 숨겨져 있고 원하는 패턴이나 그림을 그릴 수도, 글자를 써넣을 수도 있다.

<비밀의 정원>의 작가 조해너 배스포드의 페이스북에는 전세계 사람들이 작업한 ‘작품 사진’이 매일 올라온다. 조해너 배스포드 페이스북 갈무리
<비밀의 정원>의 작가 조해너 배스포드의 페이스북에는 전세계 사람들이 작업한 ‘작품 사진’이 매일 올라온다. 조해너 배스포드 페이스북 갈무리
옷 입을 때는 피하는 빨간색도 과감히

컬러링북이 유럽에서 주목받은 데는 ‘안티-스트레스’ ‘아트테라피’라는 부제의 힘이 크다. <비밀의 정원>을 국내에 번역 출간한 김경태 출판사 클 편집장은 “애초 영국에서 범상한 반응에 그쳤던 컬러링북들이 프랑스로 건너가면서 ‘치유’(테라피), ‘안티-스트레스’라는 말이 붙었다. 그러면서 컬러링북 시장이 아이들의 영역에서 성인으로까지 확 커졌다”고 말했다.

김일웅 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은 ‘안티-스트레스’라는 말에 혹해서 <비밀의 정원>을 샀다. 저녁 약속이 많아 사람들과 술을 자주 마시고 가끔 걷기운동 정도를 하는 그는, 컬러링북을 산 뒤에는 저녁 약속이나 일정이 없으면 굳이 약속을 잡지 않고 집으로 가서 ‘색칠놀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 같지는 않지만 색칠하는 동안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지는” 경험을 했다. 또 색을 입혀가면서 흑백뿐이던 밑그림에 생기를 도는 걸 보면서 ‘내가 뭔가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만족감도 생겼다. 오현주 ‘민중의 집’ 활동가도 “어떤 색을 칠할까 고민하면서 색깔을 고르고 채색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쾌감이 있다. 옷 입을 때 왠지 피하게 되는 녹색이나 빨간색을 자주 쓰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고 말했다.

색칠놀이의 과정과 결과는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개인의 일상을 공유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더욱 전파된다. 조해너 배스포드의 페이스북에는 전세계 사람들이 공들여 채색해 완성한 작품들이 매일 업데이트된다. 국내에서도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이 직접 완성한 ‘어른들의 색칠놀이 작품’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색칠놀이는 정말 ‘안티-스트레스’가 되는 걸까. 백낙선 스에나가메소드 색채심리연구소장은 “색채라는 것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단계, 표현 중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단계, 이 두 단계를 통해 치유가 된다”고 말했다. 백낙선 소장은 “본격적인 ‘아트테라피’가 되려면 각자의 성향이나 심리상태에 맞는 누리에(형태)를 선택하는 등 여러 가지 요소가 필요하지만, 본인이 원하는 방향대로 자유롭게 표현하면서 잠재된 무의식을 표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색칠놀이를 취미 삼아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는 좋다”고 말했다. <색채심리학> <그림 속에서 나를 만나다> 등을 쓴 미술치료 전문가 김선현씨는 “어떤 일에 집중하고 원하는 색깔로 채색함으로써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한정된 틀 안에 도식적으로 칠하는 행위는 경우에 따라서는 창의력 등을 훼손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색은 치유력을 가진다, 괴테 말씀

200년 전 괴테는 말했다. “사람들은 대체로 색에서 기쁨을 느낀다. 눈은 빛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또한 색을 필요로 한다. 흐린 날 태양이 그 지방의 한 부분을 비추어 그곳에 색이 나타나도록 만들었을 때 느꼈던 상쾌한 기분을 기억해보라. 다채로운 색의 보석들이 치유력을 가진다는 생각도 이러한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안락함의 깊은 느낌으로부터 생겨난 것일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지금 다채로운 색을 사용하는 색의 바다에 빠졌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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