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역사를 지닌 헌법재판소는 헌법기관들 중 ‘막내급’이지만 세계헌법재판회의 제3차 총회를 개최할 정도로 성장했다. 주요 사건 결정을 통해 국정 방향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고, 시민권과 관련해서도 유의미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실질적 법치주의’의 발전을 위해 다양성 강화 등 숙제도 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먼저 헌법적 가치와 인권의 범주 중 정치적 권리를 뛰어넘어 사회·경제적 권리 분야에서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나오고 있다. 서보학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한국 사회의 형식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자리잡았지만, 계층 간 격차 확대 등 실질적 인권 실태는 여전히 미흡한 상황”이라며 “헌재가 사회통합을 위한 진전된 논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헌재 내부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헌재 관계자는 “위헌성이 있는 법률에 대한 정비는 어느 정도 이뤄졌지만, 이를 넘어서는 보편적 인권 탐구는 막혀 있어 답답한 형국”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보수 정부가 이어지면서 ‘법적 안정성’과 ‘질서 유지’에 치우친 결정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런 흐름은 재판관 구성의 경직성과도 관련이 있다. 설립 초기 헌재 재판관들은 다소 파격적일 정도로 다양한 출신 분포를 보였다. 의미있는 소수의견을 많이 낸 변정수 초대 재판관은 대한변협 인권국장으로 ‘김근태 고문 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에 적극 관여해온 인물이다. 그는 국가보안법 찬양·고무죄, 사회보호법, 집시법 등 주요 사건에서 계속 위헌 의견을 냈다. 그를 제외한 모두가 합헌 의견을 내 ‘1 대 8’의 구도가 형성되는 경우도 많았다.
2기 재판관을 지낸 조승형 전 재판관은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비서실장 출신이다. 또 1기 재판관이었던 한병채 재판관은 민정당 4선 의원 출신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역임했다. 하경철 전 재판관은 인권변호사 출신이고, 전효숙 전 재판관은 헌재와 대법원을 통틀어 첫 여성 최고법관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성은 크게 약화됐다. 현직 5기 재판관들 가운데 박한철 소장과 안창호 재판관은 검사장 출신이고, 나머지 7명은 모두 고등법원 부장판사급 출신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헌법적 가치를 고민할 필요성이 있는 헌재가 엘리트 판검사 출신 일색의 구성을 보이는 것이다.
대법원과의 갈등도 풀어야 할 숙제다. 대법원은 법률 해석은 법원의 고유 권한이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법 조항 자체에 위헌 판단을 내리지 않고 ‘~라고 해석하는 한 위헌’(한정위헌)이라는 식으로 법률 해석 방향을 제시하는 헌재의 ‘변형결정’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상고법원 설치가 이뤄져 대법원이 정책적 함의가 큰 사건들을 다루는 ‘정책법원’ 역할에 집중하면 두 기관의 갈등이 더 첨예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인권법)는 “최고법인 헌법을 해석해 국민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헌재의 역할은 인정할 만하다”면서도 “사회통합을 위한 중추기관을 자임하고 싶다면 새로운 헌법적 가치와 인권적 지평을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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