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입고 성행위’ 야동 등
“명백하게 인식되면 처벌”
기준 모호한데 형량 높아
법원마다 유·무죄 오락가락
표현의 자유 침해 여지도
“명백하게 인식되면 처벌”
기준 모호한데 형량 높아
법원마다 유·무죄 오락가락
표현의 자유 침해 여지도
최근 대법원이 잇따라 성인이 교복을 입고 등장하는 음란물이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이 아니라고 판결하면서, 오락가락하는 판단 기준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조문의 모호함을 정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동·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엄단 여론으로 형벌은 세졌지만, 그 기준은 법원도 헷갈릴 정도이기 때문이다.
■ 유·무죄 오락가락 음란물 판단 기준
박아무개(34)씨는 2012년 교복 입은 여성이 성행위를 하는 동영상 하나를 인터넷에 올렸다가 기소됐다. 1·2심은 모두 유죄로 봤다. 벌금 300만원과 성범죄 재발방지 교육 40시간 수강을 선고한 2심은 “외관상 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인물이 교복으로 보이는 옷을 입고 학생으로 연출돼 있다. 일반인은 아동·청소년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동영상은 청소년 출입이 금지된 모텔에서 촬영된 게 분명해 보였다. 여성 몸에 문신도 많았다. 박씨는 이 점을 내세워 “등장인물을 아동·청소년으로 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외모나 신체 발육 상태, 영상물의 출처나 제작 경위, 등장인물 신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외관상 의심의 여지 없이 명백하게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돼야 처벌 대상”이라며 무죄 취지로 원심을 깼다. “등장인물이 다소 어려 보인다는 이유로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외에도 지난달 말 성인이 교복을 입고 등장한 음란물 두 건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법 조항이 애매해 빚어지는 혼선은 여전하다. 아청법은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표현물이 등장해 성교·자위행위 등을 하는 필름·비디오물·게임물’을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로 규정하고 이의 제작·배포·소지 행위를 금하고 있다. 2007년 관련 조항이 처음 생길 때는 실제 아동·청소년이 등장해야 처벌 대상으로 삼았으나, 2012년 3월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표현물’로 처벌 범위가 넓어졌다. 2012년 12월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정도여야 한다고 개정돼 처벌 대상을 좀더 분명히 제시했지만 여전히 모호하다.
서울북부지법 형사5단독 변민선 판사는 지난해 5월 교복 입은 여성이 성행위 하는 음란물을 상영한 혐의로 기소된 배아무개(38)씨 사건에서 헌법재판소에 아청법 조항의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변 판사는 “(현행법대로라면) 성인 배우가 가상의 미성년자를 연기한 영화 <은교>도 음란물로 처벌될 수 있다. 그러면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적 착취나 학대를 방지하기 위한 입법 취지를 벗어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 야한 만화도 처벌해야 하나
김아무개(48)씨는 2011년 10월 청소년들이 성관계를 맺는 장면이 있는 만화 17개를 인터넷에 올렸다가 기소됐으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캐릭터 제작에 아동·청소년이 참여했다거나 실제 아동·청소년이 출연한 것처럼 조작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미성년자의 성행위를 묘사한 작품을 무조건 처벌해야 한다면) 반인반수나 요괴 같은 상상 속 캐릭터나 <춘향전> 같은 고전에는 어떤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처럼 애니메이션도 종종 이 법에 따른 처벌 대상이 되고 있다.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위한 활동 등을 하는 사단법인 오픈넷은 “살인 장면이 나온 영화의 제작자나 배포자를 살인죄로 처벌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수원지법 안산지원도 지난해 “만화를 실제 아동이 등장하는 음란물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 과잉금지 원칙에 반한다”며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 동의하에 성관계 촬영했는데 무기징역?
김아무개(26)씨는 2012년 1월 박아무개(당시 17살)양과 성관계를 맺으며 동의하에 휴대전화로 촬영했다가 바로 삭제했다. 둘이 헤어진 뒤 박양이 김씨를 강간 등의 혐의로 고소했는데, 검찰은 김씨에게 아청법상 음란물 제작 혐의도 적용했다. 하지만 1·2심은 음란물 부분에 무죄를 선고하며 “음란물에는 해당하지만 ‘제작’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제작’ 처벌 조항은) 강제로 등장하도록 하거나 금전적 대가로 유인해 출연하게 하는 경우를 막기 위한 조항”이라고 밝혔다. 김씨에게 아청법의 음란물 제작죄가 인정됐다면 법정형량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이다. 살인죄에 버금간다.
아청법의 법정형량은 이처럼 높다. 영리 목적 배포는 10년 이하 징역, 단순 배포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소지만 해도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일반 음란물’ 소지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아청법 위반 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 20년간 신상정보가 등록되고 10년간 교직 등에 취업 제한도 받을 수 있다.
서울북부지법 변민선 판사는 아청법에 대해 위헌심판을 제청할 때 “1~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2000만원 이상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된 형법상 음화반포죄나 청소년보호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과 비교하면 아청법 처벌 조항은 지나치다”는 의견도 냈다. 형법이나 정보통신망법의 ‘일반 음란물’ 조항으로 다스릴 수 있는 사안도 수사기관이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아청법을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성규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청법은 아동 성착취를 예방하기 위한 법인데 본래 취지와 달리 그릇된 성문화 근절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명백히’라는 말이 들어갔다고 해서 의미가 명백해지는 게 아니므로 (아청법 조항은)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원철 이경미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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