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조작은 엄마가, 백일장은 선생님이, 발표대회는 다른 학생이…
대리·대역 시켜 대회참가 수상
봉사·선행에 국외체험까지
현직교사가 돈받고 조작 도와
입학사정관 전형 통과해
업무방해 혐의로 5명 입건
대리·대역 시켜 대회참가 수상
봉사·선행에 국외체험까지
현직교사가 돈받고 조작 도와
입학사정관 전형 통과해
업무방해 혐의로 5명 입건
“가을 높은 하늘로 사위어 간다/ 구름 사이로 전해오는/ 생활의 흔적은/ 깨달음의 눈빛으로 익고/ 손을 따라 역사가 전해지는데/ 가슴 한 켠에 쌓던 세월이던가/ 뜻을 모아 순백의 소리로 펼쳐/ 온 누리를/ 감싸 안았다.”
2010년 서울 ㄱ고 2학년이던 손아무개(20)씨는 전국 백일장대회에서 이 시로 금상을 받았다. 그러나 경찰은 이 시가 손씨의 작품이 아니라고 했다. 손씨 누나가 다니던 고교 국어교사 민아무개(57)씨는 손씨 어머니 이아무개(49)씨의 부탁을 받고 이 시를 포함해 모두 4편을 대신 써줬다고 한다.
이씨는 교사 민씨와 손잡고 아들을 문학적 재능뿐 아니라 ‘괜찮은 품성’에 ‘프레젠테이션 능력’까지 겸비한 다재다능한 학생으로 ‘포장’했다고 한다. 이씨는 아들의 봉사활동 실적을 만들려고 민씨가 알고 지내던 개인병원 사람을 통해 121시간짜리 허위 봉사활동 확인서를 받아냈다. 손씨는 길에서 주운 지갑을 신고한 뒤 경찰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지갑 주인은 민씨 어머니였다.
손씨는 2010년 ‘주요 20개국(G20) 국가들의 기후변화에 대한 청소년 발표대회’, 2011년 ‘녹색성장을 위한 기후변화 대응 토론대회’에서 연달아 입상했다. 그런데 현장에서 발표를 한 이는 손씨가 아니라 발표 능력이 뛰어난 같은 학교의 다른 학생이었다. 발표 자료 역시 손씨가 아닌 민씨가 대신 만들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손씨를 대신할 학생 섭외는 ㄱ고 교사 권아무개(55)씨와 홍아무개(46)씨가 맡았다고 한다.
손씨는 2010년 열흘 동안 영국과 노르웨이 등을 다녀왔다며 학교에 ‘북유럽의 문화적 특성 체험’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이는 입시 자료로 활용되는 생활기록부에 올랐다. 하지만 손씨는 이 기간 외국여행을 가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어머니와 교사들이 만들어낸 ‘화려한 스펙’으로 무장한 손씨는 2012년 서울 ㅅ대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합격했다. 여기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이듬해 다시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통해 ㄱ대 한의대에 17.6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8일 손씨와 어머니 이씨, 허위 경력을 만들어준 교사 민씨 등 5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민씨는 이씨한테서 2500만원을 받은 혐의도 사고 있다. 화려한 스펙의 어두운 이면은 민씨가 다른 학부모한테 돈을 받고 중간·기말고사 시험문제를 유출한 혐의로 구속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경찰은 ‘지갑 선행’ 역시 연출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또 손씨 누나의 대학 입학 과정도 의심하고 있다. 경찰은 “손씨 누나 역시 입학사정관제 전형으로 2009년 ㅅ여대에 합격했다. 하지만 핵심 관련자들이 진술을 거부하는데다 공소시효 5년이 지나 혐의 입증이 쉽지 않다”고 했다.
손씨는 현재 휴학 상태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발표 자료는 내가 만든 것이 맞다”며 일부 혐의를 부인했다고 한다. 손씨가 다니는 ㄱ대 관계자는 “재판을 통해 사실관계가 확정되기 전까지 구체적 조치를 취하기 어렵지만 자체적으로 확인에 나섰다”고 했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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