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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해방 70돌 축제’ 못다한 꿈, 후배들이 이룰 걸세

등록 2014-10-09 19:17수정 2014-10-10 16:02

1987년 5월23일 서울 와이엠시에이 앞에서 나홀로 ‘호헌 철폐 직선제 쟁취’ 시위를 하고 있는 고 성유보 당시 민통련 사무처장. 고인은 앞서 민통련 사무처장을 맡았던 필자(이부영)가 투옥되고, 자신도 수배 상태였으나 지치지 않는 투쟁으로 ‘6월 항쟁’을 이끌어냈다. 사진작가 박용수씨 제공
1987년 5월23일 서울 와이엠시에이 앞에서 나홀로 ‘호헌 철폐 직선제 쟁취’ 시위를 하고 있는 고 성유보 당시 민통련 사무처장. 고인은 앞서 민통련 사무처장을 맡았던 필자(이부영)가 투옥되고, 자신도 수배 상태였으나 지치지 않는 투쟁으로 ‘6월 항쟁’을 이끌어냈다. 사진작가 박용수씨 제공
[가신이의 발자취] 성유보 한겨레 초대 편집위원장을 보내며
어느 때 만나도 느릿느릿한 말투나 걸음걸이, 길모퉁이 어디선가 매일 마주쳤을 동네 아저씨의 얼굴이었지. 마음속으로는 무슨 궁량을 펼치든지 겉으로는 낙천적인 이룰태림 자네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렇게 홀연히 가시다니.

자네와 나는 거의 한평생을 어울려 산 셈이었지. 4월 민주혁명의 여진이 아직 뜨겁던 1961년 입학한 대학은 펄펄 끓고 있지 않았던가. 4월혁명 그 아름다운 황혼에 흠뻑 취했었지. 자네는 이미 1960년 2·28 경북고 부정선거 규탄데모로 4월혁명의 전령사 노릇을 하지 않았던가. 청년기, 그것도 시대의 고뇌와 문제의식이 용광로처럼 들끓던 현장에서 삶의 중요한 고비를 시작해야 했네. 아직 여물지 못했던 우리 영혼은 새로운 충격을 소화·흡수하기에 벅찼지.

졸업과 군 제대 후 자네와 나는 직장에서 다시 만났네. 당시 한국 언론의 대표주자 <동아일보> 기자로서 말이네. 우리의 운명을 뒤틀어놓는 1972년의 유신체제는 오늘까지 우리를 옭아매고 있지 않는가. 40돌을 며칠 앞둔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를 맞았고 우리는 134명의 선후배 동료들과 함께 1975년 동아에서 쫓겨나 거리의 언론인이 되었네. 자네와 나는 대학 입학과 동아 입사 동기, 그리고 해직과 감옥행도 동기가 되고 말았지. 1986~87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내가 민통련 사무처장으로 일하다가 투옥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도피하거나 잡혀가자 자네 혼자서 사무처장으로 민통련을 지켜내고 거대한 6월 민주항쟁의 불씨를 살려내지 않았던가. 앞서 <말>지 창간을 주도하여 자유언론의 맥을 이어온 일도 자네 몫이었네. ‘독재 타도’ ‘직선제 쟁취’라는 국민적 여망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로 엮어낸 자네를 비롯한 당시 운동 지도부는 항쟁의 견인차 노릇을 감당했네. 6월 민주항쟁은 4월 민주혁명과 함께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서 민주시민 쪽이 승리를 거둔 사례로 기록되었네.

민주주의 승리의 당연한 연장으로 자네는 민주·자유·독립 언론의 건설에 나섰네. <한겨레>의 창간, 그 초대 편집위원장으로 창간호를 받아든 자네의 기쁨과 보람이 어떠했겠는가. 다른 모든 것이 변하는 일이 있어도 국민이 기금을 모아 만들어준 한겨레는 두고두고 국민의 은혜에 보답할 것이네. 자네의 다음 발걸음은 방송일로, 언론개혁운동으로, 결국에는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희망래일운동으로 이어졌지. 이제는 민주시민의 흩어진 대오를 함께 모으는 작업에 몸과 마음을 쏟아넣다가 먼저 쓰러지셨네.

1976년 초 어느 추운 날, 자네와 정정봉 형과 셋이서 받던 ‘청우회 국가보안법·긴급조치 위반 사건’ 결심공판에서 자네의 최후진술이 지금도 내 가슴을 울리고 있네. 민족시인 이육사의 시 ‘광야’였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중략) /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자네가 그처럼 그리던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아직도 오고 있는 중일세. 이룰태림, 이제 자네가 그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되었네. 며칠 전 “내년 해방 70돌에는 광화문 일대에 난장판 축제를 벌이고 한 일주일쯤 해방의 거리를 만들어 보고 싶다”던 희망을 후배들이 준비하겠지. 우리의 청춘, 우리의 꿈, 우리의 투쟁, 우리의 못다 한 이야기는 우리보다 나은 후배들이 이어받아 이루어낼 걸세. 고단한 삶의 짐 내려놓으시고 편히 가시게. 나도 곧 따라가겠네. 잘 가시게, 나의 동지여!

이부영/친구·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회장

※ [바로 가기] 민주·통일 이룰태림, 참언론인 고 성유보 선생 사이버 추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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