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열린 루나의 은퇴식에서 김영관(왼쪽) 조교사가 루나를 격려하고 있다. 부산경남경마공원 제공
다리 절던 암말, 훈련뒤 5년간 13승
훈련시킨 조교사, 상금에 사비 보태
뇌성마비 1급 보치아 선수 돕기로
훈련시킨 조교사, 상금에 사비 보태
뇌성마비 1급 보치아 선수 돕기로
선천적인 장애를 가진 말을 훈련해 유명 경주마로 키워낸 조교사가 이 경주마의 이름으로 장애인 운동선수를 후원한다.
한국마사회 렛츠런파크부산경남(옛 부산경남경마공원)은 9일 “김영관(54) 조교사가 12일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장애인 운동선수를 위해 써달라며, 자신이 훈련시킨 경주마가 우승해서 받은 상금에 사비를 보태 2500만원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성금은 ‘보치아’의 부산 대표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정아무개(31·뇌성마비 1급)씨의 훈련도구 마련과 생활비로 사용된다. 보치아는 뇌성마비 등 중증 장애인을 위한 스포츠로 표적구에 가깝게 공을 던지는 쪽이 이기는 경기다.
김씨는 경주마 ‘루나’의 이름으로 성금을 기부한다. 암말인 루나는 2001년 ‘인대염증’ 때문에 뒷다리를 저는 상태로 태어났다. 앞을 보고 빨리 달려야만 하는 경주마로서는 치명적이어서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지만 김씨가 2005년 9월 경매시장에서 한 마주한테 루나를 추천했다. 뒷다리를 절었지만, 심폐기능이 뛰어난 말의 특징인 넓은 어깨를 갖고 있는 것을 눈여겨본 것이다. 이에 마주는 당시 최저가인 960만원에 루나를 사들였다.
일반 운동종목의 감독 격인 조교사는 말과 기수, 마필관리사를 총괄적으로 관리한다. 김씨는 루나한테 인삼과 영양제를 먹이고 원적외선 찜질 치료를 계속했다. 다리를 저는 루나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루나의 허리를 강하게 해 속도를 올리는 훈련을 반복했다.
루나는 2005년 9월30일 부산경남경마공원 개장식 때 공식 경기에 처음으로 나서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내리 5연속 우승했다. 루나는 2009년 11월 은퇴할 때까지 5년 동안 33차례 경기에 출전해 11승을 올리며 몸값의 78배인 7억5700만원의 상금을 벌어들였다. 특히 루나는 은퇴하기 전 빗속에서 치러진 마지막 공식 경기에서 꼴찌를 달리다가 극적으로 우승을 했다. 경주마로는 황혼기를 맞은 선천성 장애 말이 역전 우승하자 한 영화제작자가 루나를 소재로 영화 <챔프>(2011년)를 만들었다. 올해 만 13살인 루나는 현재 제주도에서 우수한 2세를 낳는 씨암말로 살고 있다.
루나는 김씨한테 행운을 가져왔다. 여기저기서 김씨한테 말의 사육과 관리를 부탁해 김씨는 40여마리를 관리하는 유명 조교사가 됐다. 김씨가 관리하는 말들은 얼마 전 김씨한테 10여년 만에 700승 달성이라는 영광을 안겼다.
김씨는 “루나의 삶은 기수 생활을 하다가 실패한 뒤 관리사를 거쳐 조교사가 된 저와 닮은 점이 많다. 루나가 장애를 이기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받은 감동이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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