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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전문] ‘성유보 선생 별세’ 성한표 한겨레 전 편집국장 추모사

등록 2014-10-11 12:54

성유보 전 한겨레 초대 편집위원장의 장례식이 치러진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빈소에서 발인이 치러지고 있다. 조문객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성유보 전 한겨레 초대 편집위원장의 장례식이 치러진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빈소에서 발인이 치러지고 있다. 조문객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성유보 형!

형이 40대 후반에 기자로서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한겨레신문사 앞에 형과 함께 와 있습니다. 당시 형은 한겨레신문의 초대 편집국장(편집위원장)이었고, 나는 정치부장이었지요. 특히 정치 기사에 대한 사회적 반응이 상당히 격렬했던 초창기 <한겨레>에서 우리는 같은 연배였지만, 형은 내가 믿고 기댈 수 있는 큰 언덕이었습니다. 한겨레 창간의 정신이 터부와 나쁜 관행을 깨자는 것이었지 않습니까? 판문점에서 남북간 회담이 열리면, 당시의 관행은 “북괴가 생트집을 부렸다”고 보도하는 것이었지만, 한겨레는 “북한이 주장했다”고 보도했었지요. 지금은 모든 언론이 쓰고 있는 보도 문장이지만, 당시의 반응은 상상 이상으로 거칠었습니다. 심지어 “한겨레는 평양에서 발간되는 신문이냐?”는 욕설이 나올 정도로.

그때 형은 그 모든 외압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팩트에 충실하기만 하면, 한겨레 지면에는 못 쓸 이야기가 없다”고 기자들을 격려하셨지요?

성 형!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창간 직후 한겨레의 경영이 참 어려웠지요? 당시 기업에 대한 한겨레의 입장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우리는 너희들에 대한 비판기사를 거침없이 쓸 것이다. 너희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광고를 다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매사가 ‘기브 앤 테이크’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억지라고 할 수도 있었지요. 심지어 대기업 광고가 실리는 바로 그날 그 지면에 그 대기업에 비판적인 기사가 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판에 어떤 대기업이 우리에게 선뜻 광고를 주려 하겠습니까? 그러니, 대기업 광고를 수주해야 하는 광고국 사원들의 고충이 어떠했겠습니까? 기자를 하다가 누가 광고담당을 하겠다고 나서겠습니까? 그런 광고 일을 초대 편집국장을 지낸 형이 자진해서 맡았지 않습니까?

유보 형!

동아일보 기자로 사회에 첫 출발을 하여, 유신권력과 사주의 합작에 의해 해직당하고, 동아투위를 결성하여 활동하다가 투옥되는 전 과정을 통해, 형은 희생이 요구될 때는 항상 맨 앞줄에 서고, 갈채를 받을 때는 맨 뒷줄에 서는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와 같은 형의 태도는 한겨레에서도 여전했었지요. 형은 신문을 만들 수 있을 때는 누구보다 철저한 전문 언론인으로서 신문에 올인했고, 신문사를 떠나면 언론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기 위한 운동에, 그리고 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운동에 올인했습니다. 형의 이러한 자세와 철저한 자기 관리는 신문사 후배들에게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한 동료들에게도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 형!

형의 그토록 철저했던 자기관리를 왜 건강관리에는 적용하지 않았습니까? 형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결국 목숨을 앗아간 병마는 아마도 젊은 시절의 고통스러운 옥살이 동안 뿌리를 내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형이 만일 병마와의 투쟁을 독재권력과의 투쟁에서 쏟았던 그 열정과 열심으로 전개했다면, 악독한 병마인들 너끈히 이길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형이 질병의 벽을 끝내 넘지 못하고 주저앉기 불과 열흘 전 형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생각나네요. 한겨레에 발표한 회고록에서 밝힌 형의 이름 ‘이룰 태림’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었지요. 큰 숲이 되라고, 어릴 때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었다고. 저 세상에서 큰 숲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서둘러 이세상을 떠나신 것인가요?

 

하지만 유보 형!

뒤에 남은 부인과 자녀들은 어떻게 지내라고 이토록 빨리 떠나셨나요? 이분들이 슬품의 폭풍에 휘말려 쓰러지지 않도록 형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형과 함께 했던 많은 동료와 후배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혹시 지금은 외롭더라도 조금만 참으세요. 우리 다들 형이 먼저 가신 그곳에 모여 새 언론을 이야기하는 날이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리세요.

이제 압제자도 없고, 그래서 분단도, 전쟁도, 고통도, 착취도, 갈등도, 차별도 없는 그곳에서 편히 지내소서.

2014년 10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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