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가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와 관련해 사과하며 고개숙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다음카카오가 13일 오후 6시 긴급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석우 공동대표가 직접 나서서 ‘감청영장에 응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화제가 됐습니다. ‘사이버 검열’ 논란으로 이용자들이 앞다퉈 텔레그램 등 외국산 메신저로 갈아타자 내놓은 처방입니다. ‘공무집행방해죄로 감옥에 가는 것도 감수하겠다’는 각오에 언론은 다음카카오가 극약처방을 내놨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카카오가 감청영장에 응하지 않으면 정말 공무집행방해죄로 감옥에 가게 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문자메시지 전송 회사에 근무 중이던 ㄱ씨는 회사 서버에 보관된 고객들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2만8811건을 열어봤다는 이유로 기소됐습니다. 2012년 10월 대법원은 ㄱ씨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감청은 송·수신이 동시에 이뤄지는 경우만 의미하고 수신이 완료된 내용을 알게 되는 것은 감청이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실시간으로 오가는 대화 내용을 엿듣는 행위만 감청인데 ㄱ씨 행위는 감청이 아니므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판례에 비춰보면 다음카카오가 서버에 보관하고 있는 문자메시지는 감청영장으로 취득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니 이제까지 다음카카오가 감청영장에 응한 게 잘못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만약 다음카카오가 대법원 판례에 준해 “실시간 감청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감청영장 집행을 거부했다면, 검찰은 감청영장 대신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서버에 남아있는 문자메시지를 가져갔을 겁니다. 다음카카오는 ‘사이버망명’ 사태가 벌어지자 뒤늦게 문자메시지 보관기간을 2~3일로 줄였는데요. 그런 조처가 좀 더 빨리 이뤄졌다면 압수수색 영장을 가져와도 검찰이 원하는 기간의 문자메시지가 남아있을 가능성은 작았을 겁니다.
물론 다음카카오도 잘못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14일 다음카카오 관계자에게 전화를 해봤더니 “좀 더 철저히 검토했어야 했는데 미숙했다.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국가기관이 집행하니까 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다음카카오를 이해해주자는 반응도 있습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여론의 뒷받침이 없다면 다음카카오가 법리를 내세워 감청영장집행을 거부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거부했다면 검찰이 물밑 보복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감청영장에 응한 다음카카오를 상대로 이용자들이 민사상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법적 검토를 제대로 해서 이용자의 정보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 응하지 않아도 될 감청영장 집행에 응했기 때문에 배상을 받을 수 있다. 승소 확률이 50% 정도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변호사는 “법원의 영장에 응했기 때문에 다음카카오는 과실이 없다. 과실이 없으면 배상책임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의견이 다소 엇갈리네요.
이석우 공동대표는 13일 기자회견에서 “관련 법제도를 따르는 것만으로 이용자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있다고 자만하였습니다”라며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다음카카오가 관련 법제도를 ‘제대로’ 따랐다면 ‘사이버 망명’ 사태는 애당초 벌어지지 않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 공동대표의 발언에 그 점은 쏙 빠져 있네요. 다음카카오가 이제부터라도 준법경영을 해나갈지 지켜볼 일입니다.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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