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습니다
한문 선생님 되려 했던 세영에게
내 가슴에 품어 함께 살아 보고 싶은 못다 핀 꽃, 우리 세영이에게.
벌써 계절이 바뀌고 있단다. 세월호 대참사가 일어난 지 197일 만에 나온 3반 친구 지현이가 생일날 인양이 되었단다. 참 기막힌 일이지?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직도 바닷속에서 못 나온 2반 친구 다윤이와 나머지 8명이 하루빨리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대참사가 세월호 유가족들 만의 일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잘 지내고 있는 거야? 너희를 편안하게 해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는 것이 미안하고 안타깝단다. 봄 냄새 물씬할 때 떠났는데, 살갗을 파고드는 어느덧 한기가 느껴지는 겨울로 접어드는구나.
그 흔한 말 한 마디도 없이 떠나버린 우리 세영이. 살려고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다했을 너를 인양된 모습에서 뼈저리게 보았단다. 눈이 감기질 않아서 핫팩으로 여러 번 녹이고 쓰다듬고 하니 그제야 감긴 너의 그 예쁜 눈을 보았다고 아빠가 며칠 전 말해주더라. 지금도 그 사진 속의 너는 좀 피곤해서 자는 듯한 모습인데, 너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날마다 세영이 사진 보며 독백 아닌 독백을 하곤 한단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잘 잤어?”, 퇴근 후엔 ”엄마 잘 다녀왔어. 하루 잘 보냈어? ”, 밤엔 “잘자!”하고. 이러다가도 너무 슬퍼서 오열도 하고 몸부림도 쳐보고, 참 기막힌 이 현실이 꿈이었으면 한단다. 남긴 너의 사진과 영상으로 위로도 해보고, 네가 있는 분향소와 납골당에서 너를 보고 느끼는, 그런 시간의 연속이란다.
적당한 크기의 계란형 얼굴에 어떤 헤어스타일도 다 어울리는 반듯한 이마, 얇고 세련된 쌍꺼풀에 새까만 눈동자와 커다란 눈매, 그린 듯 자연스런 눈썹과 긴 속눈썹, 높지도 낮지도 않게 오똑하고 매끄러운 콧날과, 라인이 또렷하고 두툼한 선홍색 입술, 입술 밖으로 살짝 보이는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 보일 듯 말듯 보이는 보조개, 쫑긋 솟은 귀와 피어싱이 잘 어울리는 귓볼, 뾰족하지 않은 U라인 턱 선과 솜털이 뽀송뽀송한 가냘프고 긴 목선, 하얗고 긴 손가락, 윤기 있고 굵은 건강한 흑발과 하얀 피부를 가진…. 엄마 눈엔 어느 곳 하나 빠질 것 없이 예쁜 우리 딸 세영이였단다. 참 예쁜데 우리 세영이 예쁘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지? 이리 빨리 가버릴 줄 알았다면 더 많이 해주는 건데. 무엇하나 후회되지 않는 게 없구나.
1997년 12월 22일에 태어나서 2014년 4월 20일까지 짧은 생을 살았구나. 너의 웃는 모습이, 너의 목소리가 무척 그립다. 사랑받을 시간도, 사랑해줄 시간도 너무 짧았구나. 늘 마침표도, 답도 없는 시간을 보낸 것 같아서, 우리 세영이를 생각하면 늘 애잔하다. 내 가슴에 많이 품어주지 못해서, 충족하게 해주지 못해서, 더욱 가슴이 아리다. 그동안 사느라 참 많이 애썼지? 이제는 우리 세영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인피니트, B.A.P의 음악을 들으며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밝은 곳에서 환하게 지내길 바래. 지금도 엄마는 네가 좋아하는 음악 들려주고 있는데, 잘 듣고 있는 거지?
예쁜 딸 세영아. 꼭 쥐고 피워보지도 못한 고운 꿈 이제는 맘껏 피우길 바랄게. 봄날엔 파릇한 아지랑이로 피어나고, 여름날엔 화사한 햇살로 피어나고, 가을날엔 노랗고 불그스름한 단풍잎으로 피어나고, 겨울날엔 하얀 눈꽃으로 피어나길. 꽃 심으면 안 필까 걱정하고, 꽃 피면 또 질까 걱정한다는데, 이제는 못다 핀 꽃 한 송이 예쁘게 활짝 피우기만 바란다. 세상에 둘도 없는 딸, 아빠와 엄마, 보디가드로 든든한 동생 대연이도 잘 지켜보고 잘 살펴봐 줄 거지?
꿈에서 친구들한테는 많이 다녀간 모양이던데, 엄마한텐 언제나 오려고 그러니? 네가 남긴 휴대폰에서 친구들 소식도 듣곤 한단다. 가끔 엄마가 답을 해줘서 친구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고, 휴대폰에서 본 우리 세영이는 참 인간관계를 잘하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단다. 우리 세영이의 삶이 담긴 유품(휴대폰)을 남겨줘서 정말로 고맙다. 카톡 마지막 프로필 문구가 되어버린 ‘조으다’ 처럼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다음 생엔 부잣집에서 태어나고 싶다던 우리 세영이의 소원은 이뤄졌을까? 또 친구 같은 엄마도 만났을까? 예쁘고, 곱게 잘 지내고 있어라. 이 엄마는 얼마의 세월이 지나면 널 만날 수 있으려나? 내 가슴에 너를 품고 살고는 있지만, 우리 세 영이랑 함께하지 못했던 세월이 참으로 서럽다.
예쁜 딸, 세영아. 엄마는 네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사랑했고, 더 많이 예뻐했다.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해 줄게. 사랑한다. 내 딸 한 세영아. 지금 이순 간도 너무너무 보고 싶다. 사랑해 잘 지내고 있으렴.♡
2014년 11월 초 겨울의 문턱에서 엄마가.
한세영 양의 남동생 편짓글
누나, 잘 지냈어?
어느덧 벌써 100일이 지나고 더 지났네. 왜 이리 빨리 갔어?
아직 할 것도 많고 꿈도 많았잖아? 부디 여기서 이루지 못한 꿈, 거기서는 다 이루고 살길 바랄게.
내 꿈에 한번이라도 나와줘. 우리 다시 만나면 여기서 있었던 일들 다 이야기해 줄게.
누나, 너무 보고 싶다. 잘 지내야해. 편히 쉬어 누나. 사랑해. ♡
누나를 사랑하는 동생 대연이가
한세영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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