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한전→경찰로 돈 이동
전 서장 ‘직권남용’ 불구속 송치
한전 직원 10명도 뇌물수수 입건
전 서장 ‘직권남용’ 불구속 송치
한전 직원 10명도 뇌물수수 입건
‘갑’인 한국전력 직원들은 송전탑 시공사로부터 명절 떡값과 휴가비로 해마다 수백만원씩을 받아왔다. ‘을’인 시공사는 이 돈을 마련하려고 ‘가짜 직원’ 수십명에게 월급을 지급한 것처럼 꾸며 다달이 1000만~20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한전에는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들에게 ‘공권력’을 ‘행사’하는 경찰의 도움이 필요했다. 한전은 경찰의 요청을 받고 주민들에게 뿌릴 돈봉투를 마련했다. 경찰 회식비도 전달했다.
추석 연휴 기간 경북 청도경찰서장이 관내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뿌린 돈봉투는 한전 대구경북지사와 ‘갑을관계’에 있는 시공사가 한전 직원들에게 뇌물을 주려고 조성한 비자금의 일부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반대 주민들에게 돌리자’며 한전 대구경북지사에 돈봉투 마련을 강요한 혐의(직권남용·뇌물수수)로 이현희 전 청도서장을 불구속 입건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9일 밝혔다. 또 경찰은 2009년부터 지난 9월까지 시공사로부터 명절 인사비와 휴가비 명목으로 3300만원을 받은 이아무개(56) 전 한전 대구경북지사장 등 한전 직원 10명을 뇌물수수 및 뇌물공여 혐의로 입건했다.
청도군 삼평1리에서는 일부 주민들의 반대로 2년간 송전탑 건설이 중단됐다가 지난 7월 공사가 재개됐다. 이후 반대 주민과 시민단체의 시위와 경찰력 배치가 일상이 됐다. 경찰은 이 전 서장이 시위 중 다친 주민들에게 치료비와 위로금을 지급하면 대치가 해소될 것으로 보고 이 전 지사장에게 3000만~5000만원을 지원해 달라고 강력히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찬성 주민들과의 형평성 문제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하던 이 전 지사장은 9월 초 시공사로부터 600만원을 받고, 나중에 시공사가 보전해준다는 조건으로 자신의 돈 1100만원을 보탠 1700만원을 이 전 서장에게 전달했다. 이 전 서장은 이를 주민 7명에게 100만~500만원씩 자신의 이름으로 전달했다. 이 전 서장은 “한전에 강권하지는 않았다. 문제 해결을 위해 협의했을 뿐”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이 전 지사장은 ‘경찰 회식비가 필요하다’며 시공사로부터 100만원을 받아 이 전 서장에게 건네기도 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시공사는 2009년부터 가짜 직원 20명의 급여 명목으로 13억9000만원의 비자금을 만들었다. 경찰은 시공사 대표 등 3명도 횡령 및 뇌물공여 혐의로 입건했다.
청도 돈봉투 살포 사건을 계기로 송전탑 건설 비리가 추가로 드러날지도 관심거리다. 경남 밀양에서도 한전이 주민을 매수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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