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69) 선장 등 세월호 선원들에게 적용된 살인 혐의를 1심 법원이 무죄로 판단하면서 검찰 입장이 다소 난처해졌다. 승객들을 방치한 채 자신들만 탈출한 선원들에게 이례적으로 살인 혐의를 적용하며 엄벌 의지를 보였지만 법원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검찰의 항소심 전략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2일 판결문을 보면, 광주지법 형사11부(재판장 임정엽)는 검찰이 적용한 살인 혐의에 유죄 입증의 정도가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검찰이 대형 인명참사에 직접적 책임을 물으려고 적용한 혐의는 살인·살인미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도주선박, 유기치사상이다. 재판부는 이 가운데 가장 형량이 낮은 유기치사상만 유죄로 판결했다. 도주선박 혐의는 법해석이 잘못됐다는 취지로, 살인·살인미수 혐의는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각각 무죄 판결했다.
재판부는 수사 과정의 진술조서와 일부 공소사실을 배척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퇴선명령에 대한 진술이다. 선원들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는 선장이 퇴선명령을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 선장은 재판에서 진술을 번복했고, 퇴선 지시를 들었다는 진술과 듣지 못했다는 진술이 엇갈렸다. 재판부는 이 선장의 법정진술에 무게를 둬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재판부는 검찰이 살인의 고의를 입증하려고 낸 증거가 아예 잘못된 것도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제주해상교통관제센터(VTS) 직원이 참사 당일 오전 9시께 퇴선 준비를 지시했으나, 선원들이 이를 묵살했다고 공소사실에서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인명들 구명조끼 착용하시고 퇴선할지 모르니까 준비 좀 해주십시오’라는 제주관제센터 교신 내용은 녹음파일에 녹음돼 있지 않고, 무선통신일지에 따로 작성돼 추가로 기재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정황을 비추어 볼 때 관제센터에서 미리 퇴선 준비를 지시했다는 진술은 믿기 어렵고 이 같은 교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도 없으므로 이 교신 내용은 범죄사실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검찰이 해경에서 받아낸 증거가 가필 내지는 조작됐을 가능성까지 짚은 것이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이 선장이 정말 퇴선명령을 했는지를 따지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광주지검 관계자는 “판결문을 보면, 거의 모든 공소사실을 인정한 뒤 유일하게 퇴선명령이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 반대로 인정해 살인의 고의를 부정하고 있다”며 “퇴선명령에 대한 선원들의 진술조차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재난사고에서 ‘고의’의 정의를 폭넓게 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한 검사장은 재판부가 박기호(53) 기관장에게는 부상당한 조리사 2명을 구조하지 않은 데 대해 살인죄를 인정한 점을 지적했다. 그는 “눈앞에서 도움을 요청한 부하 직원에 대한 살인의 고의는 인정해주고, 선실에 있었던 수백명 승객에 대한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작위적 판단 기준”이라고 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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