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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딸 같아서” “수업 행위”…뿌리깊은 ‘권력형 성추행’

등록 2014-11-13 00:44수정 2014-11-13 08:38

골프 인구 500만 시대에 들어섰지만 아직 접대 위주의 골프문화를 벗어나지 못한 한국에서 경기보조원(캐디)들은 쉽게 폭력에 노출된다. 사진은 인천 중구 영종도 골프장에서 경기를 즐기는 일반인들./한겨레21 자료사진
골프 인구 500만 시대에 들어섰지만 아직 접대 위주의 골프문화를 벗어나지 못한 한국에서 경기보조원(캐디)들은 쉽게 폭력에 노출된다. 사진은 인천 중구 영종도 골프장에서 경기를 즐기는 일반인들./한겨레21 자료사진
유명한 음대 교수 최근 징역형
전직 검찰총장·국립의료원장 수사중
“강제로 껴안아” “내 몸 더듬어”
피해 입은 여직원들이 고소

주로 갑을관계 여성들이 피해
지도층 그릇된 성의식이 원인
전 국회의장, 유명 서울대 교수 등의 성추행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12일에는 전 검찰총장과 전 국립중앙의료원장이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사실이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른바 ‘권력형 엘리트’ 출신들이 제자나 피고용인과의 ‘갑을관계’를 악용한 ‘권력형 성범죄’를 저지르는 데 주목한다.

이런 상황에서 저명한 음대 교수가 제자 4명을 잇달아 성추행한 혐의로 최근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유명 연주자의 아버지이기도 한 ㅈ교수는 지난해 ㅇ대 음대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넉 달 동안 18~22살 여학생 4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법원은 “사제관계로 자신의 감독을 받는 피해자들을 위력으로 추행했다”고 판단했다.

ㅈ교수의 판결문을 보면, 갑을관계가 명확한 ‘일대일 도제식’ 교육 방식을 악용한 전형적 사례다. 그는 강의실에 혼자 레슨을 받으러 온 학생의 가슴을 만지거나 속옷에 손을 집어넣었다. 여학생들의 바지 지퍼를 내리고 주요 부위를 만지기도 했다. 불과 4개월 동안 14차례나 그런 행동을 한 사실을 법원이 인정했다. ㅈ교수는 성적 폭언까지 하면서도 “딸 같아서 그랬다”고 했다. “딸 같아서”는 박희태(76) 전 국회의장이 골프장 캐디를 성추행했다는 혐의에 ‘해명’하겠다며 한 말이기도 하다.

ㅈ교수는 “신체접촉 행위는 제자들의 자세를 교정하고 박자를 맞추기 위해 엉덩이를 두드리거나 배를 만진 것으로, 이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레슨 방법의 하나다.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던 중 나온 행위”라고 주장했다. 또 “주요 부위를 만지는데도 성인인 피해자들이 교수의 위세에 눌려 이를 수용한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항소심도 1심 형량을 그대로 유지하며 유죄를 인정했다. 지난달 31일 울산지법 형사3부(재판장 정계선)는 갑을관계에 의한 성폭력임을 분명히 하며 “피해자들은 ㅈ교수의 교내 지위가 대단히 높고 자신들의 장래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도제식으로 이뤄지는 교육의 특성 등에 비춰 (성인인 학생들이 위세에 눌렸을 리가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최근 저명 수학자인 서울대 ㄱ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학생들도 “(교수와 학생이라는) 갑을관계 때문에 그동안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전직 검찰총장으로 경기도의 한 골프장 회장인 ㅅ씨도 골프장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당해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 성폭력수사대는 “골프장 안내데스크에서 일하던 20대 직원이 검찰총장 출신인 ㅅ씨한테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고소장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이 직원의 아버지는 ㅅ씨가 지난해 6월 골프장 기숙사에 있는 딸의 방에 찾아가 샤워하던 딸을 나오게 한 뒤 강제로 껴안고 볼에 입을 맞추며 ‘내 아내보다 예쁘다. 애인 해라’는 등의 말을 하며 치근대다 5만원을 건네고 떠났다고 주장했다. 이 직원은 얼마 뒤 사직했다. ㅅ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퇴사하겠다고 해서 만류하려고 만났고, 다른 여직원 2명이 동석해 넷이 20분 정도 얘기하고 헤어졌다. 그 여성과 둘이 있은 사실이 없고, 어떠한 부적절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며 “허무맹랑한 고소에 법적 대응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 국립중앙의료원장 ㅇ씨도 20대 비정규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강제추행)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교수 출신인 그는 이 직원의 신체를 여러 차례 만진 혐의를 받고 있다. 그도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성추행 사건은 검찰에 송치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처분이 나오지 않고 있다. 박 전 의장은 지난 9월 강원도의 한 골프장에서 20대 여성 캐디의 몸을 더듬고 만진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했다. 경찰은 9월 말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춘천지검 원주지청은 “보완할 사안이 있다. 조만간 사건을 처분할 것”이라고 했다.

권력형 엘리트 출신들은 위계와 권력 관계에 매우 민감하다. 권력의 작동 방식도 잘 알고 있다. 이런 특성들이 성범죄에도 반영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임혜경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장은 “이만한 지위면 이렇게 해도 괜찮다는 잘못된 의식이 체화돼 있다”고 했다. 최지나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은 “기본적으로 직급이 낮은 사람은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회지도층이 특히 무감각하다”고 했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성범죄를 저질러도 별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을 타깃으로 삼는다”고 했다. 이 연구위원은 “대학에서 성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지도교수가 석·박사 과정 학생에 대해 논문부터 이후 임용까지 막강한 권한을 갖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진명선 최우리 박경만 박수혁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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