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5일 오전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세 모녀의 비극적 죽음을 기억하는 그리스도인 연대’ 회원들이 정부의 사회 안전망 구축 촉구와 이웃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며 추모의식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서울에 사는 ㅂ(76)씨는 정부의 기초노령연금 7만5000원과 고물·폐지 등을 주워서 버는 9만원 정도가 한 달 소득의 전부다. 자식이 여섯이나 되지만 연락이 끊기거나 “잘 곳이 없다”며 아버지를 찾아올 정도로 형편이 어렵다. 그는 이웃한테서 받은 고추장이나 된장만 놓고 밥을 먹는다. 폐지를 줍다가 발견한 버려진 라면이나 배추 껍데기를 가져다 먹기도 한다. 옷이나 생필품도 대개 주워서 쓴다. 지하층 방은 곰팡이로 가득하다. 그런데도 그는 20년 전부터 별거하고 있는 아내 소유의 집 때문에 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청을 못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사람을 수급권자로 정하게 돼 있다. 그런데 재산이 있으면 처분이 불가능해도 소득이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근로능력이 있는 성인은 실제 소득이 있든 없든 1인당 60만원을 버는 것으로 간주해 ‘복지 사각지대’를 양산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13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최저생계비 이하 비수급 빈곤층 인권상황 실태조사’ 연구용역 보고서를 보면, 정부가 ‘지원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이들 상당수가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자들보다도 더 빈곤한 삶을 사는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최근 1년 사이에 돈이 없어 겨울에 난방을 하지 못한 적이 있다’는 응답 비율은 수급 빈곤층(25.3%)보다 비수급 빈곤층(36.8%)에서 더 높게 나왔다. 집세가 밀려 집을 옮긴 경험 역시 비수급(18.2%)이 수급(12.1%)보다 많았다. 단전·단수 경험도 비수급(15.6%)이 수급(10.1%)에 견줘 더 많았다. 비수급 빈곤층의 36.8%(수급 빈곤층은 22.2%)는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한 경험이 있으며, 25.8%(수급 빈곤층은 20.2%)는 의사가 처방한 약도 구입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비수급 빈곤층은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양육을 책임질 수 없다’(42.4%), ‘학원을 보낼 수 없다’(78.8%), ‘참고서나 도서를 사주지 못한다’(42.4%)고 답하는 등 극심한 빈곤 상태가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 가능성까지 차단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교육 박탈’ 경험은 수급 빈곤층에서도 높게 나타났다. 비수급 빈곤층의 자녀들은 왕따 등 학교폭력에도 노출되는 빈도가 높았다. 비수급 빈곤층 가구의 21.2%가 ‘아이가 최근 2년간 따돌림이나 무시, 놀림, 조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비수급 빈곤층은 부양의무자나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수급 심사에서 탈락하지만 이번 실태조사 결과 빚을 뺀 순재산의 경우 비수급 빈곤층(평균 486만원)이 수급 빈곤층(평균 559만원)보다 오히려 적었다.
이런 상황에서 비수급 빈곤층 10명 중 2명(20.2%)은 ‘최근 1년 사이에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자살 등 극단적인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ㅂ씨 사례처럼 기초생활보장 수급 심사에서는 탈락했지만 극도의 빈곤한 삶을 사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전담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구책임자인 문진영 서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조사 결과 비수급 빈곤층의 상당수가 1970~80년대에나 있었던 절대빈곤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있었다. 행정편의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청에서 탈락한 비수급 빈곤층이 이용할 수 있는 별도의 구제기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