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로 3100억 ‘혈세’ 쏟아부어
여론 압력 떼밀려 33개월만에 늑장조사
예보 “부실 더 큰기업 많아 순위서 밀려”
여론 압력 떼밀려 33개월만에 늑장조사
예보 “부실 더 큰기업 많아 순위서 밀려”
예금보험공사의 삼성상용차 부실경영에 대한 조사는 의혹투성이로, ‘삼성 봐주기’ 흔적이 곳곳에 드러난다.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자금의 운용책임을 맡고 있는 예보의 삼성 봐주기 의혹은 청와대가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관련해 정부 부처의 삼성 봐주기 의혹을 내사 중인 것과 맞물려 파장이 예상된다.
처음부터 늑장조사=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과 금융기관 처리를 위해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분식회계 등으로 불법대출을 받은 부실기업에 대해서는 검찰 고발과 손해배상소송 등 책임을 엄히 추궁했다. 하지만 삼성상용차는 예외였다. 경영난으로 2000년 11월 청산에 들어갔으나, 부실경영에 대한 조사 착수는 2년9개월이 지난 2003년 9월에서야 여론의 압력에 떼밀려 시작했다. 예보는 “삼성차 부실책임과 관련해 삼성과 채권단 간 협의가 진행 중이었고, 부실채무가 더 큰 기업들이 많아 순위에서 밀렸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삼성상용차는 삼성차와는 별개사안이고, 서울보증보험의 삼성상용차 회사채 지급보증으로 들어간 공적자금이 3100억원에 달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예보의 이런 늑장으로 인해 분식회계를 입증해 줄 관련자료들이 상당부분 사라졌다. 예보도 조사 보고서에서 “회계관련 자료가 일부만 보관되어 있다”며 “품위서 등에 대한 전산자료는 삼성에스디에스에 보관되어 있으나 판독이 불가능하다”고 실토했다. 조사가 급진전한 것은 2003년 9~11월의 현장조사에서 회사가 분식회계를 계획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가 입수됐기 때문이다. ‘97년 공고손익 확정(안)’이라고 된 이 문서는 정식결제까지 받은 기안문 형태로 되어 있다.
예보의 묵인 의혹= 예보는 조사보고서에서 “문건을 조사한 결과 일반관리비를 건설 중 자산이나 연구개발비로 계상하는 등의 수법으로 158억원의 분식회계를 한 혐의가 발견됐다”고 명시했다. 예를 들어 자금·총무·인사 등 건설현장과 무관한 본사지원부서에서 쓴 경비를 건설 중인 자산으로 처리해서 98억원의 이익을 부풀렸다는 것이다. 삼성은 2004년 4월 1차 소명을 통해 당시 대구공장의 모든 지원부서가 공장건설과 관련한 직접·간접적 업무를 수행 중이었다며 분식회계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예보는 회사의 업무분장표에도 지원부서는 공장건설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되어있고, 금감원 회신에 따르더라도 지원부서 경비는 전액 일반관리비로 처리하는 게 타당하다며 일축했다.
그러나 예보는 분식회계에 책임이 있는 대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검찰 고발과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미뤘다. 그러다가 8개월 뒤인 2004년 12월 삼성이 제출한 2차 소명서를 대부분 받아들여 분식 금액을 18억원으로 대폭 줄였다. 회계전문가들은 삼성의 1, 2차 소명서가 내용상 차이가 없는데도 예보가 애초 방침을 180도 바꾼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예보도 보고서에서 삼성의 2차 소명과 관련해 “일반적으로 건설현장에 총무, 인사 등의 지원부서가 존재한다는 것은 과장됐으며 … 일반 지원부서가 주로 건설 지원업무를 수행했고, 본사기능이 미미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재확인했다. 회계법인에 속한 한 회계사는 “예보가 애초 해석을 뒤집은 이유로 당시 지원부서 경비의 회계처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을 들었으나, 이는 지원부서의 경비처리는 건설과의 관련성을 따져야 한다는 종전 태도와 정면 배치된다”고 지적했다.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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