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가정법원의 협의이혼 신청 창구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20일 ㄱ(50)씨가 이혼 소송 중인 자기 아내와 성적 접촉을 한 ㄴ(53)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실질적 혼인 파탄 상태라면 배상 책임이 없다”며 원고 패소 취지로 판결했다.
ㄱ씨와 아내 ㄷ(45)씨는 2004년 별거에 들어갔고, 2008년 서로 이혼 소송을 내어 2010년 대법원에서 이혼이 확정됐다. 그런데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2009년 1월 ㄷ씨는 등산모임에서 친해진 ㄴ씨와 애무를 하다 ㄱ씨에게 들켰다. ㄱ씨는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며 ㄴ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은 부정행위 때문에 혼인관계가 파탄난 게 아니라며 청구를 기각했다. 반면 항소심은 “부정행위로 혼인이 파탄난 건 아니지만 부부관계를 침해당했으므로 위자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법률상 혼인관계가 지속되는 상태에서의 부정행위에 관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보고 사건을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부쳤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장기간 별거 등으로 실질적으로 부부공동생활이 파탄돼 객관적으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라면, 제3자가 부부의 일방과 성적인 행위를 하더라도 부부공동생활 침해 행위라고 할 수 없으므로 불법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부부생활의 실체가 없는 경우까지 제3자에게 불법행위 책임을 지우는 것은 지나친 사생활 침해라는 취지다. 대법원은 이혼소송이 진행 중이지 않더라도 ‘실질적 파탄’ 상태라면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은 민사소송이라 형법의 간통죄와는 일단 무관하다. 몇몇 대법관들은 이혼 소송을 낸 상태인지 등으로 ‘실질적 파탄’ 여부를 엄격히 따져야 한다는 별개의견을 냈다. 다른 일부 대법관들은 간통죄의 보호 대상은 개인이 아니라 “성풍속·성도덕이나 일부일처주의에 터잡은 혼인제도”이므로 어느 선까지 간통죄로 처벌할지는 따로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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