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사님, 저 내일모레 그만둘지도 몰라요. 그런데요, 할 때까지는 할 거예요. 싸울 수 있을 때 싸우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김재광(45·사진) 노무사는 2007년 홈에버 ‘비정규직 아줌마 조합원’의 말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당시 이랜드가 운영하던 홈에버는 마트 계산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했다.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맞섰다. 김 노무사는 24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7년 전 싸움을 어제 일처럼 떠올렸다. “내일모레 그만둘 수는 있지만 그래도 내일은 나오겠다는 것 아니에요? 조합원들의 자아가 그만큼 커진 거예요.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홈에버 비정규직 해고와 이에 맞선 노동자들의 싸움을 다룬 영화 <카트>에는 노조위원장 강동준(김강우 분)이 파업의 정당성을 두고 노무사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는 불과 4~5초에 불과하다. 하지만 영화 속 노무사는 현실에서는 무려 512일 동안 이어진 장기 파업을 아줌마 조합원들과 함께했다. 김 노무사가 그 주인공이다.
김 노무사는 ‘회사 쪽 사건’은 맡지 않고 ‘노조 쪽 사건’만 대리한다는 원칙 아래 ‘노무법인 필’을 운영하고 있다. 공익변호사에 견주면 공익노무사인 셈이다.
2007년 아줌마 조합원들이 서울 성산동 홈에버 월드컵몰점을 점거했다. “여러분의 권리는 이렇고, 이런 건 부당하다고 얘기하면 눈빛들이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점거한 매장 안쪽으로는 들어가지도 않았고 물건 하나 안 건드렸어요. 물 하나도 밖에서 사다 드셨죠.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고, 그러면 경찰이 잡아갈 리 없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업체 쪽은 노동자들 권리에는 ‘무심’하면서도 매니큐어 색깔까지 간섭할 만큼 ‘세심’했다. “교육을 가면 20~30대 조합원들이 모여서 매니큐어를 바르면서 까르르 웃어요. ‘저 친구들은 매니큐어에 한이 맺혔나’ 싶었어요. 물어보니 복장 규정에 매니큐어 색깔도 정해줬다는 거예요.” 홈에버는 계산원들에게 빨간 립스틱만 바르라고 했다. <카트>에서도 일을 마친 계산원들이 휴지로 입술을 닦는 장면이 나온다.
같은 이랜드 계열로 홈에버와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해고 사태를 맞았던 뉴코아 노조에 대한 ‘교육’도 김 노무사가 맡았다. 파업 노동자들과의 만남을 차단하는 경찰을 피해 경찰버스 밑을 기어갈 때는 등이 시커메졌다.
김 노무사는 2007년 파업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이라는 경험도 남겼다고 했다. “노조 간부들이 재판을 받는데 판사가 깜짝 놀랐어요. 이 사람들은 이른바 운동권도 아니었어요. 그냥 대기업 취직해서 가만히 있었으면 승진해서 편안히 살 수 있었던 정규직들이에요. 정규직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비정규직과 사람과 사람으로 단결했던 경험이 그 이후에 또 있었나요?”
글·사진 진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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