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과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9월1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선고를 받은 뒤 취재진을 피해 법정을 나서다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들과 이를 막는 수행원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자 비켜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대법원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동료 부장판사를 비판하는 글을 내부통신망에 올린 김동진(46·사법연수원 25기)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에게 정직 2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동료 판사의 판결 비판을 이유로 중징계를 받은 전례는 찾기 어렵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3일 법관징계위원회(위원장 민일영 대법관)를 열어 “(김 부장판사의 행위는) 법관윤리강령의 품위 유지 의무, 구체적 사건에 관한 공개적 논평 금지 조항 등을 위반한 것으로, 법관의 품위를 손상하고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렸다”며 이렇게 결정했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 9월12일 원 전 원장에게 일부 무죄 판결이 나자 법원 내부통신망에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A4 5장 분량의 글에서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정치 개입’을 한 것은 맞지만 선거 개입은 아니라고 한 이범균 부장판사의 판단은 ‘궤변’이고 ‘지록위마’(指鹿爲馬)”라고 했다. “인사를 앞두고 입신영달을 위한 사심 판결”이라고도 했다.
대법원은 이 글을 3시간 만에 삭제했다. 그러자 법원 직원들이 대법원의 조처에 반발하는 글을 올렸고, 성금석 부산지법 부장판사도 “대법원의 삭제 조처가 사법부 내 언론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비판 글을 썼다. 당시 판사들 사이에서는 김 부장판사의 글을 두고 “틀린 말은 아니다”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인신공격까지 한 것은 심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수원지법은 그로부터 2주 뒤 법관윤리강령 위반을 이유로 대법원에 김 부장판사의 징계를 청구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7일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결론을 못 내자 이날 다시 회의를 열어 징계를 결정했다.
이에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는 성명을 내어 “판결에 대한 법원 안팎의 비판은 오히려 판결의 공정성과 완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이번 징계는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라며 “양승태 대법원장은 징계를 철회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정직 처분은 과거 법관 징계 사례들에 견주면 강도가 높다. 2007년 서울중앙지법 정아무개 부장판사가 ‘동료 법관들이 특정 사건 처리 결과에 따라 인사상 이익이나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대법원장 탄핵소추를 요구하는 글을 여러 차례 내부통신망에 올리고 언론 인터뷰를 했다가 정직 2개월을 받았다. 또 2012년 서울동부지법 유아무개 부장판사는 증인에게 “늙으면 죽어야 해요”라고 말했다가 견책 처분을 받았고, 같은 해 부산지법 동부지원의 최아무개 부장판사는 학력이 초졸인 피고인에게 대졸 아내가 있는 것을 두고 “마약 먹여 결혼한 것 아니에요?”라고 말했다가 감봉 2개월의 징계에 처해졌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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