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링해에서 침몰한 트롤선 ‘501오룡호’ (사조산업 제공)
“계환아. 전부 살아나서 부산에서 소주 한 잔 하자.”
3일 <한겨레>가 입수한 명태잡이 원양어선 ‘501오룡호’의 김계환(44·경남 고성군) 선장과 사고 지점 근처에서 항해 중이던 참치잡이 원양어선 ‘오양호’ 이양우 선장의 마지막 교신에는 김 선장이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함께했음을 시사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교신 내용과 사조산업 쪽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1일 러시아 서베링해에서 조업 중이던 ‘501오룡호’는 오전 9시30분(이하 한국시각)께 물고기 창고에 물이 찼다. 낮 12시~오후 1시 사이에 ‘501오룡호’는 근처를 항해 중이던 카롤리나 77호(러시아 선적)에서 펌프를 빌려 물을 빼려고 시도했다. 이어 이날 1시께 ‘501오룡호’ 김 선장은 ‘오양호’ 이 선장에게 “물고기 창고에 찼던 바닷물을 절반 넘게 빼냈다. 괜찮은 것으로 보인다”고 교신했다.
하지만 10분 뒤인 오후 1시10분께 ‘501오룡호’는 왼쪽으로 45도가량 급격히 기울어졌다. ‘501오룡호’ 김 선장은 ‘오양호’ 이 선장에게 “균형을 잡은 듯한 배가 10분 만에 급격히 왼쪽으로 기울어져 퇴선 명령을 받았다”는 내용의 긴급 연락을 보냈다.
이어 오후 1시30분께 ‘오양호’의 이 선장은 ‘501오룡호’의 김 선장과 마지막 교신을 했다.
“형님께 마지막 하직인사 하고 가야 안 되겠습니까.”(김 선장)
“그러지 말고 차분하게 선원들을 안전하게 퇴선시키고 너도 꼭 살아서 나와라.”(이 선장)
“이제 배 안의 등이 전부 꺼졌어요. 선원들을 저렇게 만들어놓고 무슨 면목으로 살겠습니까.”(김 선장)
“제발 그러지 말고, 선원들 안전하게 퇴선시키고 나와라.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이 많다. 별일 아닐 수 있다. 계환아. 전부 살아나서 부산에서 소주 한 잔하자.”(이 선장)
그 뒤 교신은 끊어졌다.
김 선장의 가족과 사조산업 등에 확인한 결과, ‘501오룡호’ 김 선장과 ‘오양호’ 이 선장은 10년 넘게 알고 지낸 각별한 사이였다. 김 선장은 2004~2007년 이 선장 아래에서 1등 항해사로 근무했다. 김 선장의 어머니는 “10여년 동안 둘이서 정말 친하게 지냈다. 아들한테서 이 선장과 호형호제할 정도라고 들었다. 이 선장이 2008년 다른 배의 선장으로 부임하면서 아들이 자신이 지휘하던 배의 선장이 되게 했다”고 말했다.
실종 선원 가족들은 “선장과 선원들이 배와 함께한 듯하다. 침몰하면서 배 안에 만들어진 에어포켓(뒤집힌 선내에 갇힌 공기)에 의존해 생존할 가능성도 있지 않느냐. 빨리 사고 지점에서 인양을 하든지 해서 구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 “정부가 너무 무관심한 것 아니냐. 정부는 지금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세월호 사고 이후 꾸려진 국민안전처는 무슨 구실을 하는가. 정부 관계자가 우리에게 단 한마디도 설명한 적이 없다. 제발 좀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사조산업은 침몰사고 3일째인 이날 오후 2시 현재 사고지점 근처에서 수색·구조작업을 통해 7명의 주검을 인양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침몰사고로 7명이 구조됐고, 8명이 주검으로 발견됐다. 실종자는 45명이다.
한편 국민안전처 산하 부산해양경비안전서는 이날 수사팀을 꾸려 선체 결함 가능성 등 ‘501오룡호’ 침몰 사고 원인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부산/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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