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부선.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토요판] 커버스토리
김부선 인터뷰
‘난방비 0원’의 현실과 투쟁하며 겪은
억울·분노·자조·슬픔·희열에 관하여
김부선 인터뷰
‘난방비 0원’의 현실과 투쟁하며 겪은
억울·분노·자조·슬픔·희열에 관하여
지난 가을 영화배우 김부선(53)은 한국 사회 ‘생활 진보’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공동주택 거주 인구 70%에 육박하는 한국 사회는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람은 많지만 감시가 부재한 공간이 아파트 자치단체들이다. 그곳에서 김부선씨는 난방비 비리를 추적해왔다. 배우로서 몸을 사릴 법도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한겨레>는 지난달 27일 김씨를 서울 옥수동 자택에서 어렵게 만났다. 그는 언론에 대한 불신이 커서 기자들과의 개별 접촉을 피해왔다. 구조적 문제인 난방비 비리를 외면하고 주민과의 폭행 장면만을 강조하던 첫 언론 보도에 그는 이미지가 생명인 배우로서 인격살인을 당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이제 조금 용기를 낸 걸까. 김씨는 지난 11년간 서울 옥수동 아파트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와의 인터뷰 속에서 생활 진보는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또 그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되는지 살필 수 있었다. 시민단체 한국투명성기구는 김부선씨를 올해의 ‘투명사회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4일 발표했다. 지난달 27일 옥수동 자택 거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는 김부선씨의 모습. 김씨는 주민과 갈등을 겪은 일을 설명할 때 힘겨운 듯 자주 눈물을 보였다.
▶ 2004년 배우 김부선을 제2의 전성기로 이끌었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는 그가 고등학생(권상우)을 꾀며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 말은 김부선씨의 인생 철학이 담긴 대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왜 자신이 사는 동네와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조리 모두에 나서서 행동하는 걸까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김부선씨의 말을 전하되 민감한 내용은 사실관계 확인을 거친 뒤 실었음을 밝힙니다.
“양심껏 난방비 다 내고 마을잔치 열어 화해하자”
다소 진부한 표현이지만 ‘행동하는 양심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단어는 양심 자체가 아니라 ‘행동하는 양심’이다. 침묵하는 양심은 세상을 관조하거나 비판할 뿐이다. 그러나 행동하는 양심은 부조리를 직접 대면한다. 맞서 싸운다. 상처도 입지만 주변을 변화시킨다. 연예인 김부선(53)씨는 침묵하는 양심이 아니라 행동하는 양심에 속한다.
그의 고발과 행동으로 우리 사회는 ‘아파트 공화국’의 각종 불투명함에 대한 감시의 부재를 깨달았다. 국회는 이를 바로잡기 위한 입법 경쟁에 들어갔다. 부조리가 만연한 사회에서 외롭게 분투하던 ‘전국의 김부선’들은 모처럼 용기를 내고 있다. 이러한 공을 인정하여 한국투명성기구는 김부선씨를 올해 ‘투명사회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4일 발표했다.
지난달 27일 김부선씨를 서울 옥수동 자택에서 만났다. 앞서 22일 <한겨레>에 실린 옥수동 아파트 난방비 비리 관련 기사(친절한 기자들 ‘김부선 아파트, 보일러 튼 건 귀신일까요?’)를 보고 김씨가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겨레>는 경찰이 난방비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던 주민들을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했지만, 경찰에 ‘난방비 0원’인 사유를 제대로 소명하지 못한 옥수동 ㅈ아파트 11가구에 동 대표 등 전·현직 주민 간부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열량계 조작이 실제로 존재했음이 의심되는 정황들도 지적했다. 자신의 문제제기를 진실공방처럼 다루는 듯한 언론 보도들에 김부선씨는 지쳐가고 있었다고 했다.
김씨를 만나 난방 비리를 파헤치게 된 과정 등 세간에서 김씨에게 궁금해했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옥수동 아파트 난방 비리 사건에는 주민 감시기구의 부재, 김부선이라는 사람에 대한 주민들의 편견, 언론의 선정적인 접근 등이 실뭉치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동호대교와 한강이 창밖으로 널찍하게 보이는 김씨의 아파트 거실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첫달 관리비 고지서 받고 눈을 의심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겨도 우리 사회는 침묵을 권해요. 더구나 저는 배우니까 더 침묵하고 살라는 거죠. 그러면 안 돼요. 우리 사회가 이렇게 부조리에 침묵하니까 세월호 사고가 생기고, 용산 참사가 생기는 거예요. 비리를 목격하면 알리고 책임자를 아웃시켜야지요.”
‘왜 아파트 난방 비리 문제를 이렇게까지 추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씨가 단호하게 말했다. 가수 방미가 ‘김부선은 좀 조용히 지냈으면 좋겠다’고 블로그에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 글을 언급하자 김씨는 기자에게 반문했다.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았을 때 침묵하고 살아서 우리 사회가 좋아진 적 있나요?”
-난방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뭔가요?
“서울 옥수동의 아파트로 이사를 온 게 11년 전이에요. 영화계 지인의 소개로 42평(138.843㎡)형 이 아파트를 샀어요. 첫달 관리비 고지서를 받고 눈을 의심했어요. 난방비가 50만원이 넘게 나온 거예요.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비슷한 평수의 집에 살았을 때 난방비가 20만원이었어요. 이웃들에게 수소문해보니 다섯 식구가 사는 앞집은 그달 난방비가 3300원, 윗집은 1만원이 부과됐더라고요.”
옥수동 아파트는 중앙난방 시스템이어서 어느 가구가 난방비를 실제 사용량보다 적게 내면 다른 가구가 난방비를 떠안게 될 수 있는 구조였다. 김씨는 동 대표를 찾아가 물었다.
“동 대표가 여기 난방비 안 내는 사람들 많다고 알려주는 거예요. 열량기 자체가 그렇다고. 그래서 제가 관리사무소를 찾아갔어요. 관리비 관련 자료를 달라고 하는데 안 주더라고요. 그때는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냥 참고 살았어요.”
-문제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언제부터였나요?
“2012년 1월께였나. 아파트 관리소장이 그제야 얘기하는 거예요. 사실은 ‘난방비 0원’인 가구가 100가구가 넘어 조처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제가 9년 동안 못 밝힌 난방 비리에 대해 구체적인 얘기를 들은 거죠. 저는 그 얘기를 듣고 의자에 주저앉아 버렸어요.”
-그러고 나서 무엇을 하셨나요?
“아파트 단지 곳곳에 벽보를 붙여서 주민간담회를 열자고 했어요. 난방비 부과 방법에 대해 논의하자고 했지요. 서울시에 진정서도 냈어요. 그러고 있으니까 성동구청이 감사에 들어가더군요. 언젠가는 결과가 나오겠지 했는데 안 나오는 거예요. 그러다가 집 앞의 부동산에서 감사가 끝났다는 얘기를 올해 초에 들었어요. 관리사무소에 가서 감사 자료 달라니까 ‘개인정보가 들어 있어서 안 된다’고 안 줬어요. 성동구청에 갔더니 ‘정보공개 청구하면 주민 누구나 볼 수 있는 자료’라고 알려주는 거예요. 그 얘기를 다시 관리사무소장에게 하니 그제야 주는 거예요.”
김씨가 살고 있는 옥수동 ㅈ아파트 단지에는 536가구가 살고 있다. 감사 자료에서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동절기(12·1·2·3월) 27개월간 ‘난방비 0원’인 경우가 300건으로 확인됐다. 69가구는 난방비 0원인 경우가 2회 이상이었고, 10회 이상인 경우도 세 가구가 있었다. 구체적인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뭔가 이상했다. 김씨는 입수한 감사 자료를 복사해 주민들에게 돌렸다. 베일에 둘러싸여 있던 난방 비리 문제가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는 듯했다.
주민들은 들끓었다. 열량계는 조작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열량계의 배터리를 고의로 빼놓으면 난방비를 0원으로 만들 수 있었다. 옥수동 아파트에 설치된 열량계는 검정 기준이 강화되기 이전인 2012년 7월 이전 제품이어서 충분히 조작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의 판단이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흐르는 동안 기존의 부녀회나 입주자대표회의는 뭘 했나요?
“아무것도 안 하는 거예요. 주민 대표들이 더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들은 그런 모습이 없어요. 뭔가 난방 비리와 연관되어 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올해 2월 29명의 주민이 모여 5만원씩 걷어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어요. 대표는 제가 맡았고요. 제가 성동구청도 오가고 하면서 계속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지요.”
-좀 이상한 건 주민들이 중앙난방 시스템에서 개별난방으로 전환하자고 하는데 김부선씨가 여기에 반대하고 나선 겁니다.
“개별난방 전환에 반대한 게 아니라, 그 시기와 방법을 놓고 의견을 달리한 거예요. 저는 지금까지 편법으로 난방비를 내지 않은 가구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어서 개별난방 전환 비용을 충당하거나 아파트 증개축을 하면 자연스럽게 개별난방 전환이 될 거니까 그런 방식으로 해보자는 거였어요. 개별난방 전환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비리를 덮고 급한 불부터 끄려는 거라고 생각해요.”
‘난방비 0원’에 동 대표 등 포함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
열량계 조작 의심 정황도 지적
자신의 문제제기를 진실공방으로
모는 여론에 그는 지쳐가는 중 “절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는데
저도 경고합니다, 무고죄가 있어요
불의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비리 저지른 사람들 난방비 내세요
그걸로 떡볶이잔치 열어 화해해요”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 2’ 찍는 느낌 -9월12일 문제의 폭행 사건은 왜 벌어진 건가요? “그날 저희 단지에 두 개의 회의가 예정돼 있었어요. 하나는 제가 모임을 제안한 거고, 하나는 입주자대표회의(동 대표 중심)에서 제안한 거예요. 저는 단지 내에 안내문을 붙여서 오후 6시까지 모여 ‘아파트 증개축, 개별난방 전환 비용, 엘이디(LED) 교체 건, 구청 지원금 등을 논의하자’고 했어요. 입주자대표회의는 개별난방 전환에 대해 논의하자고 저녁 8시에 주민회의를 소집했고요. 저녁 7시30분쯤인가 제가 관리사무소에 모여 있던 주민 10여명을 상대로 설명하고 있었어요. 성동구청이 경찰에 난방비 안 낸 가구들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는 소식도 함께 전하려 했어요. 그때 전 부녀회장 윤아무개씨 등이 ‘개별난방 전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라’며 저를 막더군요. 그래서 제가 ‘뭔 소리냐. 지금은 내가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니까 개별난방 전환 회의는 저녁 8시부터 하라’고 맞섰죠.” 말싸움이 계속되던 중 김부선씨는 ‘괴물 같은 ×’이라고 윤씨 등에게 욕설을 했다. 윤씨 등 일부 주민들도 김씨에게 ‘대마초 피우는 ×’ ‘방송기자들 불러’라며 흥분했다. 결국 양쪽은 서로를 폭행하기에 이르렀다. “난방비 비리를 파헤치는 것에 반감을 가져온 사람들이 제 회의를 방해하려 한다고 느꼈어요. 제가 그냥 회의장을 나가버렸어요. 한 주민이 ‘저런 건 연예부 기자를 불러 방송을 다 태워버려야 해(방송을 못 하게 해야 한다는 뜻)’라고 폭언을 하더군요. 연예인은 방송국이 직장이에요. 직장에서 해고당하게 하겠다는 말과 같은 거죠. 저는 인격 살인을 당하는 느낌이었어요. 아파트에서 일어난 비리들을 밝혀내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주민들에게 사과를 먼저 해야 해요. 개별난방 전환 비용도 그들이 감당해야 해요. 왜 선량한 주민들이 그 돈을 내야 합니까. 지금까지 피해를 본 것도 속상한데요. 요즘 내가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1995년 개봉작) 2를 찍는 느낌이에요.” <한겨레>는 폭행 사건의 또다른 당사자인 윤씨와도 접촉했다. 그는 자신의 말은 아무것도 쓰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다. <한겨레> 취재 결과, 폭언이 오가는 몸싸움은 양쪽 모두 벌였다. 경찰은 쌍방폭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김씨는 폭력 사건에 대한 해명을 할 때 호흡이 빨랐고 말이 길었다.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김씨가 감정을 추스르고 차분해졌을 때 ‘그래도 폭력은 나쁘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저는 그날의 몸싸움을 후회하지 않아요. 예전에는 배우라는 직업 때문에 무조건 참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불이익을 많이 겪고 사니까 이제는 ‘너희들이 때리면 나도 가만 안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아파트 주민 비리 파헤치는 과정에서 폭력과 폭언이 없다면 좋겠지만 그게 나올 수밖에 없어요. 국회에서는 몸싸움 안 하나요? 그렇지만 몸싸움이 본질은 아니잖아요. 언론들은 왜 거기에만 집중하는 거죠?” 몸싸움 사건을 다룬 최초 언론보도는 선정적이었다. 한 종편 방송사는 지난 9월15일 이를 김부선씨의 단순 폭행 사건처럼 보도했다. 폐회로텔레비전(CCTV)에서 김씨가 주민을 폭행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싸움의 발단이 된 난방비 관련 문제나 아파트 증개축 문제 등에 대한 설명은 충실하지 않았다. 방송사는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지만 김씨는 배우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기자에게 전화가 오더라고요. 저더러 주민을 때렸는지 여부만 묻더군요. 제가 왜 이 싸움이 일어나게 된 건지 설명했지만 난방비 비리 문제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제 회의 시간에 몰려온 주민들이 제게 어떤 폭언을 했는지 녹취록도 건네줬는데 제가 일방적으로 주민을 폭행한 것처럼 보도했어요. 보도를 늦추어 달라고 해도 부장이 보도하라고 해서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어요.” 이에 대해 해당 기사를 보도한 기자는 <한겨레>에 “그날 폭행 사건의 핵심은 난방비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난방비 비리를 주민들이 조직적으로 은폐했다고 볼 근거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김씨는 언론을 불신하게 됐다. 언론 대신 자신의 페이스북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난방비 0원 가구’ 관련 감사 자료를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서울시가 뒤이어 ‘김부선씨가 제기한 난방 비리 의혹은 실제 감사가 진행된 사안’이라고 밝혀 여론은 반전됐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경찰은 지난달 17일 난방 열량계 조작(사기 혐의) 의심 가구에 대해 최종 무혐의 처분했다. 경찰은 보도자료에서 “옥수동 아파트 11세대(38건)는 난방량이 ‘0’인 이유가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아 ‘조작’의 의심을 떨칠 수 없으나, 구체적인 행위자를 특정할 수 없는 등 형사입건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경찰 수사 결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냥 주민들 불러다 놓고 범죄를 자백하라고 말만 하면 누가 솔직하게 말하겠어요? 난방비 0원이 나온 이유로 오랫동안 집을 비워서라고 설명했다면 전기세와 수도세도 안 나와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건 또 10만원, 20만원씩 나와요. 집을 비웠다는 건 당연히 거짓말 아닌가요? 왜 형사입건시키지 않는 거죠?”
-김부선씨도 난방비 0원이 나온 적 있지요. 일부 주민들은 ‘난방비 폭로 사건의 주역인 김부선 본인도 계량기 검침량이 0입니다’라고 쓴 펼침막도 내걸었는데?
“맞아요. 2013년 초에 제게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열량계에 고장이 난 건지. 그래서 제가 관리소장을 찾아가 왜 이러냐고 바로 따졌어요. 그러니까 소장이 저더러 열량계를 바로 고치겠다고 안 하고 그냥 쓰라는 거예요. 난방비는 지난해 평균 요금만 내래요. 그래서 그달(난방비 0원으로 나온 달)에는 평균 요금을 낸 거예요. 난방비를 안 낸 게 아니고요. 그걸 두고 마치 저도 난방비를 안 낸 파렴치한 주민인 것처럼 뭍타기를 하다니요.”
본질과 상관없는 비난들 난무
“누구든 자유토론 할 수 있는데
대마초 해서 얼굴 찌든 사람과
마주하며 살고 싶지 않다”며
적대감 드러내는 일부 주민들 “‘여대생 공기총 살인 사건’에서
청부살인 지시한 부잣집 사모님
역할을 배우로서 해보고 싶어
옥수동에서 그런 고관대작
부인들을 많이 만나봤기에” ‘난방 열사’로 불리고 싶지 않아 경찰 수사 결과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다. 열량계 봉인지 관리에 대한 기록이 관리사무소에 남아 있지 않는 등 주민들을 사기 혐의로 입건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지만 ‘난방비 0원’인 이유를 경찰에 제대로 소명하지 못한 주민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단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해 검찰과 법원에서 판단을 더 구해보는 게 좋지 않았겠냐는 주장도 나온다.
경찰 수사가 유야무야되면, 고발에 나섰던 주민들은 이제 역으로 소송에 시달리게 된다. 신창섭 아파트선진화운동본부 감사는 <한겨레>에 “고소고발 사건 중 70~80%가 증거불충분 무혐의 처리된다. 문제를 제기한 주민은 명예훼손 피소를 당하거나 주민단체에서 배척되는 보복을 당한다”고 말했다. 김부선씨도 이미 몇몇 주민에게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 상태다.
“경찰이 무혐의 처리한 것을 두고 저를 주민들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고 하는데 저도 경고합니다. 무고죄라는 게 있어요.” 김씨는 또 한번 일전을 치를 각오를 다지고 있다. “저는 불의를 절대 용서하지 않아요. 저를 만만하게 봤다면 잘못 본 겁니다. 저는 ‘대마초 금지를 반대하는 헌법소원’까지 냈던 사람입니다. 난방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이 양심껏 그동안 안 낸 난방비를 내고, 그 돈으로 마을잔치 열어 떡볶이 해서 같이 먹고 서로 화해하고 끝냈으면 해요.”
‘김부선 아파트 난방비 비리 사건’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김부선씨의 주장과 김씨의 뜻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주장, 그리고 경찰 수사 결과 등을 종합해 판단해보면, 이번 사건을 선과 악의 대립구도로만 살펴보는 것에 한계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경찰 수사 결과만으로는 이 아파트에 난방비 비리가 조직적이고 광범위했다는 증거가 없다. 주민들이 의도적으로 열량계를 조작한 것인지, 아니면 열량계가 고장 났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고치지 않은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일부는 ‘난방을 아껴 썼다’ ‘집을 비웠다’며 경찰에 거짓 해명을 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수사기관이 명확한 판단을 하지 않아 진실을 정확히 알 순 없다.
‘선의 평범성’과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이 있다. 선행과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의외로 무척 평범한 사람들인데 그러한 행동의 근원에는 그 시대 사회구조와 인과관계가 있다는 분석에서 나온 사회학 용어다. 옥수동 아파트 사건을 ‘김부선이라는 선’과 ‘파렴치한 주민이라는 악’의 대립으로 구경하듯 바라보고만 있을 게 아니라, 문제를 바로잡는 대안을 고민하는 게 중요할 수 있다.
김부선씨도 이 점을 인식하고 있는 듯 보였다. “저는 난방 열사로 불리고 싶지 않아요. 그냥 제가 난방비 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행동에 나선 것이고요. 소시민으로서 딸과 함께 제가 쓴 만큼 난방비 내고 따뜻한 겨울을 나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제 정부가 나서서 아파트 비리를 막을 수 있는 감시 제도를 만들어주었으면 해요. 대통령이 비리 척결 한마디만 하면 경찰도 이렇게 수사를 종결하진 않을 거예요. 국민의 70%가 공동주택에 살고 있어요. 대통령이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입니다.”
김부선씨와의 인터뷰는 계속됐다. 김씨는 애초 한 시간 정도 난방비 문제에 대해 해명하겠다고 인터뷰에 응했으나 기자는 ‘김부선이라는 사람’을 더 탐구하고 싶다고 인터뷰를 더 하자고 청했다. 결국 그와 10시간가량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씨의 마음속에 묻어둔 이야기들이 많았다. 억울, 분노, 자조, 슬픔, 희열과 같은 복잡한 감정들이 파노라마 사진 속의 다채로운 풍경들처럼 김씨의 얼굴에서 쏟아져 나왔다. 감정이 격해질 땐 목소리가 높아졌다. 때로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입은 쉬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그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그런 이야기 들으면 내 몸 한토막 한토막이 잘려 나가는 것 같아 슬퍼요.” 김부선씨는 1983년 <여자가 밤을 두려워하랴>를 통해 영화계에 데뷔했다. 스물네살 때의 일이다. 이어 <애마부인 3>의 주연을 맡았다. 80년대는 에로신을 가미한 성인영화들의 전성기였다.
김부선씨에게는 ‘성인영화 배우’라는 꼬리표가 오랫동안 붙어다녔다. 김부선씨는 자신이 그런 식으로 대중에게 기억되는 것이 몸이 잘려 나가는 듯 고통스러웠다. “배우가 장르를 가리고 영화에 출연하나요. 저는 예술을 하고 있는 건데 포르노 배우 취급 하는 거잖아요.” 김씨가 웃으며 말했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김부선씨에게 붙어다니는 또다른 꼬리표는 ‘대마초’다. 난방 비리 문제를 지적하는 김씨에게 일부 옥수동 주민들은 ‘대마초 피우는 여자’라고 맞선다. 개별난방 전환 방식을 둘러싸고 김씨와 대립한 한 주민은 기자에게 “누구든 자유토론은 할 수 있는데 난 대마초 해서 얼굴 찌든 사람은 마주하며 살고 싶지 않다. 자식 교육에 방해된다”며 적개감을 드러냈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는 명대사
문제의 본질과 상관없는 비난들이 난무하는 것은 김씨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이 그만큼 뿌리깊다는 방증일 것이다. 옥수동에서 김씨가 싸우고 있는 대상은 난방 비리뿐 아니라 ‘무지와 편견’이라는 숲을 거느린 거대한 산이다.
과거 김부선씨가 대마초 때문에 구속된 경험이 있는 건 사실이다. 배우로서의 삶이 끝장날 뻔했다. 2004년 김씨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이건 그가 대마초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대마초를 금지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어서였다.
“대마초는 중독성이 술과 담배보다 약해요. 세계 각국에서 비범죄화 토론이 활발해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도 비범죄화를 지지하고 있어요. 왜 우리는 미국처럼 이러한 대마초에 대한 과학적 논의조차 하지 않는 거죠?”
1989년 구치소에 들어갈 때 김씨는 고개를 숙이는 여느 사람들과 달리 티브이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며 “죄가 없잖아요”라고 외쳤다. 대마초에 대한 확신은 그때와 같다. 쾌락을 향유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는 국가가 아니라 개인 스스로에게 있다고 믿기 때문일 테다. 어쩌면 김부선씨는 대마초를 피워서가 아니라 권력과 제도에 길들여지길 거부해 표적이 된 것일 수 있다. 1986년 한창 절정의 배우 생활을 이어가던 때 알고 지내던 영화감독이 자신에게 ‘청와대 파티에 참여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여배우들이 청와대에 불려가 기생처럼 다뤄진다는 소문이 있었다. 김씨는 거절했다. 얼마 안 가 김씨는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구속됐다.
“저를 수사한 검사가 언젠가 한번은 교도소로 찾아왔어요.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가 되었다더군요. 그때 저에게 이런 얘기를 했어요. ‘대마초 피운 게 무슨 죄냐’고 그러더군요. ‘아무리 마약 하는 건달들을 붙잡아도 신문에 보도되지 않으니까 저를 이렇게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고 그러더군요. 제가 욕을 엄청 해줬어요. 당신 때문에 제가 어떤 삶을 살게 됐는데….”(당사자인 검사 출신 변호사는 <한겨레>의 사실 확인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웬만한 연예인이라면 권력에 고개 숙이는 게 세상을 사는 법이라고 이해했을지 모른다. 김부선은 달랐다. 효순·미선 장갑차 압살 사건(2002년), 김선일 추모 시위(2004년), 미국 쇠고기 반대 시위(2008년), 장자연 성상납 의혹 사건(2009년) 등이 있을 때마다 거리에 섰다. 아파트 난방 비리로 세상이 시끄럽기 불과 얼마 전에도 김부선씨는 억울하게 일을 그만두게 된 경비 아저씨를 위해 대거리를 하며 관리사무소와 다투기도 했다. ‘옥수동 김 반장’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다. 그의 무엇이 그를 행동하게 만드는 것일까.
“(대마초 사건으로) 감옥에 갔을 때 거기에 대학생들이 들어와 있었어요. 서울대생들이 농민들이 힘들다고 곡괭이를 어깨에 멘 거를 그림에 그렸다고 빨갱이로 몰려서 들어와 있더라고요. 충격 받았아요. 엘리트 대학생들이 굳이 안 해도 될 일을 하면서 약한 사람들을 돕고 있었어요. 그냥 잘나가는 특권층 자제들하고 대마초나 피우면서 놀다가 어떤 돈 많은 남자 하나 잘 만나 결혼할 생각 정도 하던 저를 반성하게 됐어요.”
그는 1988년 아이를 가졌다. 당시 유명 극장주의 아들이 아이의 아버지였다. 그러나 그는 아이를 가진 김부선을 멀리했다. 아이를 낳아도 돌보지 않았다.
“제가 너무 슬퍼서 울고 있었어요. 엄마가 제게 ‘애아빠 찾을 생각 말라’면서 해줄 얘기가 있다는 거예요. 내 아버지가 엄마의 첫 남편이 아니라는 거예요. 제주 4·3 때 엄마의 남편을 국군이 잡아가서 죽였고 엄마는 그 이후 사람이 소중해졌대요. 악착같이 가족을 위해서만 살았대요. 그 이야기를 30년간 숨기고 살다가 제게 해준 거예요. 그러면서 저더러 언젠가는 착한 남자가 나타날 거니 아이만 보고 살라는 거예요. 그때부터 딴마음 안 먹고 아이를 위해 강하게 살기로 마음먹었어요.”
김부선씨는 딸 미소를 낳았다. 미혼모라는 손가락질도 당당히 이겨냈다. 여배우이기 이전에 한 생명의 따뜻한 어머니임을 자각했다. 그렇게 키운 딸이 이제는 당당히 엄마처럼 영화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미소가 <응답하라 1994>에 (극 중 ‘칠봉이’의 야구부 매니저 역으로) 나왔어요. 얼마 전에는 (영화 <남과 여>에서) 공유 부인 역으로 캐스팅됐어요. 내 딸이 너무 자랑스럽고 예뻐요. 키우면서 용돈 한 번 준 적이 없는데 스스로 오디션 보고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어요.” 김씨의 딸 자랑은 한참 계속됐다. 그의 집 냉장고에는 딸이 아이, 청소년, 어른으로 변해가던 시기에 찍힌 각각의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김부선씨는 2004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출연했다. 김씨는 여자친구에게 차인 고등학생(권상우 역)을 위로하는 ‘떡볶이집 아줌마’ 역을 맡아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고 고등학생에게 말한다. 떡볶이집 아줌마는 과감하게 고등학생의 손을 잡고 자신의 가슴으로 이끈다. 이 대사와 장면은 김씨의 순간적인 재치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이건 김씨의 삶의 철학에서 비롯된 애드리브일지 모른다.
“대본에 없는 말이었는데, 그냥 그 순간 그렇게 말하고 싶더라고요. 사실 저도 처음 대본 받고 아줌마가 고등학생을 유혹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연극하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고등학생도 충분히 아줌마와 사랑을 나눌 수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마음 고쳐먹고 연기를 한 거죠. 제가 미혼모와 대마초쟁이라고 주홍글씨처럼 손가락질당하며 살았으니까 이런 대사도 할 수 있었던 거겠지요. 난초처럼 취급받는 여배우였다면 못 했을 텐데….”
‘배우 김부선’으로 기억되고 싶다
김부선. ‘연꽃 부’(芙)와 ‘베풀 선’(宣)의 한자를 쓴다. 연꽃은 더러운 연못에서도 아주 잘 자라 맑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진흙에 발을 딛고 있지만 진흙에 파묻히지 않는다. 연꽃의 특징을 ‘배우 김부선’은 기막히게 닮았다. 그렇기에 겉으로 강인한 듯 보이는 김부선씨는 속으로 많이 아프다.
힘들 때 자살을 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곤 한다고 한다. 옥수동 아파트 주민들과의 마찰은 힘겹다. 많은 시민들의 격려를 받았지만 정작 눈을 마주하고 살아야 하는 건 그가 싸웠던 아파트 주민들이다. 옥수동에서 김씨는 외로워 보였다. 배우로서 채 꿈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영영 잊히는 것은 아닌지 그것도 두렵다. 사회적 발언을 할수록 대중은 열광하지만 자본은 싸늘했다.
그럼에도 김부선씨가 대중에게 기억되고 싶은 방식은 ‘배우 김부선’이다.
“‘여대생 공기총 살인 사건’(사위인 판사가 여대생과 불륜관계에 있다고 의심한 장모가 여대생을 공기총으로 살해하도록 청부한 사건)에서 여대생 청부살인을 지시한 부잣집 사모님과 같은 역을 배우로서 하게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 사회 고관대작 부인들의 괴물 같은 모습과 인간성을 고발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제 모습을 보면서 소름 끼치게 만들고 싶어요. 올해 옥수동에서 그런 고관대작 부인들을 많이 만나봤기에 이 경험들이 곧 보석처럼 승화할 거라고 생각해요. 갑자기 자살하고 싶을 때마다 저에게 최면을 걸어요. ‘부선아. 네가 얼마나 강인하고 아름다운 여자이니? 진흙 속의 연꽃처럼 언젠가는 우아하게 연기로 이 세상을 고발할 때가 올 거야. 그때를 기다리자.’”
김씨는 현재 에스비에스(SBS) 주말극 <모던파머>에서 늘 술에 찌들어 사는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독실한 기독교인 엄마(이용녀)로 열연하고 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김부선씨는 신경이 날카로워 보였다. 인터뷰 내내 감정의 기복이 잦았다. 난방비 비리와 싸우는 과정에서 시달림을 많이 당해 대인기피 증세까지 있다고 했다. 그에 대한 대중의 격려가 쏟아지고 있지만 김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의 마음을 따스하게 만져줄 ‘치유의 과정’일지 모른다. 맨 위 작은 사진은 김부선씨가 2012년 3월 난방 비리 관련 주민간담회를 요청하며 아파트 단지 안에 붙인 전단지.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김부선씨 제공
김부선씨가 2012년 3월 난방 비리 관련 주민간담회를 요청하며 아파트 단지 안에 붙인 전단지.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
열량계 조작 의심 정황도 지적
자신의 문제제기를 진실공방으로
모는 여론에 그는 지쳐가는 중 “절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는데
저도 경고합니다, 무고죄가 있어요
불의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비리 저지른 사람들 난방비 내세요
그걸로 떡볶이잔치 열어 화해해요”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 2’ 찍는 느낌 -9월12일 문제의 폭행 사건은 왜 벌어진 건가요? “그날 저희 단지에 두 개의 회의가 예정돼 있었어요. 하나는 제가 모임을 제안한 거고, 하나는 입주자대표회의(동 대표 중심)에서 제안한 거예요. 저는 단지 내에 안내문을 붙여서 오후 6시까지 모여 ‘아파트 증개축, 개별난방 전환 비용, 엘이디(LED) 교체 건, 구청 지원금 등을 논의하자’고 했어요. 입주자대표회의는 개별난방 전환에 대해 논의하자고 저녁 8시에 주민회의를 소집했고요. 저녁 7시30분쯤인가 제가 관리사무소에 모여 있던 주민 10여명을 상대로 설명하고 있었어요. 성동구청이 경찰에 난방비 안 낸 가구들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는 소식도 함께 전하려 했어요. 그때 전 부녀회장 윤아무개씨 등이 ‘개별난방 전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라’며 저를 막더군요. 그래서 제가 ‘뭔 소리냐. 지금은 내가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니까 개별난방 전환 회의는 저녁 8시부터 하라’고 맞섰죠.” 말싸움이 계속되던 중 김부선씨는 ‘괴물 같은 ×’이라고 윤씨 등에게 욕설을 했다. 윤씨 등 일부 주민들도 김씨에게 ‘대마초 피우는 ×’ ‘방송기자들 불러’라며 흥분했다. 결국 양쪽은 서로를 폭행하기에 이르렀다. “난방비 비리를 파헤치는 것에 반감을 가져온 사람들이 제 회의를 방해하려 한다고 느꼈어요. 제가 그냥 회의장을 나가버렸어요. 한 주민이 ‘저런 건 연예부 기자를 불러 방송을 다 태워버려야 해(방송을 못 하게 해야 한다는 뜻)’라고 폭언을 하더군요. 연예인은 방송국이 직장이에요. 직장에서 해고당하게 하겠다는 말과 같은 거죠. 저는 인격 살인을 당하는 느낌이었어요. 아파트에서 일어난 비리들을 밝혀내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주민들에게 사과를 먼저 해야 해요. 개별난방 전환 비용도 그들이 감당해야 해요. 왜 선량한 주민들이 그 돈을 내야 합니까. 지금까지 피해를 본 것도 속상한데요. 요즘 내가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1995년 개봉작) 2를 찍는 느낌이에요.” <한겨레>는 폭행 사건의 또다른 당사자인 윤씨와도 접촉했다. 그는 자신의 말은 아무것도 쓰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다. <한겨레> 취재 결과, 폭언이 오가는 몸싸움은 양쪽 모두 벌였다. 경찰은 쌍방폭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김씨는 폭력 사건에 대한 해명을 할 때 호흡이 빨랐고 말이 길었다.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김씨가 감정을 추스르고 차분해졌을 때 ‘그래도 폭력은 나쁘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저는 그날의 몸싸움을 후회하지 않아요. 예전에는 배우라는 직업 때문에 무조건 참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불이익을 많이 겪고 사니까 이제는 ‘너희들이 때리면 나도 가만 안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아파트 주민 비리 파헤치는 과정에서 폭력과 폭언이 없다면 좋겠지만 그게 나올 수밖에 없어요. 국회에서는 몸싸움 안 하나요? 그렇지만 몸싸움이 본질은 아니잖아요. 언론들은 왜 거기에만 집중하는 거죠?” 몸싸움 사건을 다룬 최초 언론보도는 선정적이었다. 한 종편 방송사는 지난 9월15일 이를 김부선씨의 단순 폭행 사건처럼 보도했다. 폐회로텔레비전(CCTV)에서 김씨가 주민을 폭행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싸움의 발단이 된 난방비 관련 문제나 아파트 증개축 문제 등에 대한 설명은 충실하지 않았다. 방송사는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지만 김씨는 배우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기자에게 전화가 오더라고요. 저더러 주민을 때렸는지 여부만 묻더군요. 제가 왜 이 싸움이 일어나게 된 건지 설명했지만 난방비 비리 문제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제 회의 시간에 몰려온 주민들이 제게 어떤 폭언을 했는지 녹취록도 건네줬는데 제가 일방적으로 주민을 폭행한 것처럼 보도했어요. 보도를 늦추어 달라고 해도 부장이 보도하라고 해서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어요.” 이에 대해 해당 기사를 보도한 기자는 <한겨레>에 “그날 폭행 사건의 핵심은 난방비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난방비 비리를 주민들이 조직적으로 은폐했다고 볼 근거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김씨는 언론을 불신하게 됐다. 언론 대신 자신의 페이스북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난방비 0원 가구’ 관련 감사 자료를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서울시가 뒤이어 ‘김부선씨가 제기한 난방 비리 의혹은 실제 감사가 진행된 사안’이라고 밝혀 여론은 반전됐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김부선씨가 10월27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아파트 난방 비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누구든 자유토론 할 수 있는데
대마초 해서 얼굴 찌든 사람과
마주하며 살고 싶지 않다”며
적대감 드러내는 일부 주민들 “‘여대생 공기총 살인 사건’에서
청부살인 지시한 부잣집 사모님
역할을 배우로서 해보고 싶어
옥수동에서 그런 고관대작
부인들을 많이 만나봤기에” ‘난방 열사’로 불리고 싶지 않아 경찰 수사 결과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다. 열량계 봉인지 관리에 대한 기록이 관리사무소에 남아 있지 않는 등 주민들을 사기 혐의로 입건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지만 ‘난방비 0원’인 이유를 경찰에 제대로 소명하지 못한 주민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단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해 검찰과 법원에서 판단을 더 구해보는 게 좋지 않았겠냐는 주장도 나온다.
김씨가 2004년 12월9일 ‘대마 합법화를 요구하는 문화예술인 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김부선씨는 아파트 난방 비리를 알리는 과정에서 주민들과 잦은 마찰을 빚었다. 김씨 앞에는 ‘대마초·미혼모·애마부인 배우’라는 편견의 벽이 놓여 있다. 지난달 27일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김씨가 우연히 마주친 한 주민과 서로 손가락질하며 말싸움을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