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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어머니의 다큐를 찍었다…‘그녀’를 이해하게 되었다

등록 2014-12-19 21:07수정 2014-12-21 12:00

이철재 에코큐레이터(전 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가 17일 서울 중랑구 묵동 자신의 집에서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 어머니 송기순씨와 이야기를 나누며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있다. 틈틈이 어머니와 인터뷰를 하면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중이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이철재 에코큐레이터(전 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가 17일 서울 중랑구 묵동 자신의 집에서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 어머니 송기순씨와 이야기를 나누며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있다. 틈틈이 어머니와 인터뷰를 하면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중이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인터뷰 ; 가족
에코큐레이터 이철재씨 가정
▶ 이철재(44)씨는 어머니 송기순(73)씨와 함께 삽니다. 서로 지지고 볶고 살면서 아들은 다큐멘터리를 찍어볼까 생각했고 차츰 여성으로서 어머니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화하는 새로운 가족상을 만들어 가는 ‘인터뷰; 가족’은 독자 여러분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실명과 익명 기고 모두 환영합니다. 보내실 곳 gajok@hani.co.kr. 200자 원고지 기준 20장 안팎. 원고료와 함께 사진도 실어드립니다.

올해 일흔셋 되신 어머니는 얼마 전 한달 넘게 입원했었다. 원래 골다공증이 심한 상황인데 집 뒤꼍에서 대추를 따다 넘어지면서 척추, 팔꿈치 등 여러 곳이 부러졌다. 병원에서는 퇴원 후 요양원을 권했지만, 집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피운 건 어머니였다. 어머니 퇴원하시고 한달 동안, 프리랜서로 생활하는 내가 가사를 전담하다시피 했고, 그런 아들에게 어머니는 미안해하면서도 이래저래 얘기를 많이 하고 싶어한다.

일흔셋 어머니와 함께 사는 아들
일만 하다가 장가를 미뤘다
잔소리에 아웅다웅하다가
스마트폰 들고 인터뷰를 하다

“결혼 안 할 거야? 2세가 늦었잖아
며느리 차려준 밥상 먹고 싶다”
“내가 며느리 노릇 하고 있잖아
저녁에 추어탕 사올게”

엄마, 병원에서 퇴원하고 요양원 가라고 했잖아? 왜 안 갔어? 거기 가면 집에 있는 것보다 더 빨리 나을 수 있었는데 말이야.

엄마 같은 병실 쓰는 사람들이 요양원은 죽을 때 가는 거라고, 웬만하면 거기 가지 말라고 하더라. 죽는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 속에 있으면, 내 속이 편하겠니?

그게 뭔 말씀이래. 누가 그래? 요즘 요양원은 시설도 좋고, 얼마나 잘해주는데. 엄마는 골다공증이 심해서 요양 잘해야 빨리 걸어 다닐 수 있다니까. 엄마, 돈 때문에 그랬구나. 나 원고료 받은 것 있었는데… 그리고 형제들 돈 모으면 됐는데….

엄마 지금 아들 덕분에 좋은 것 먹고 잘 지내고 있잖아.

집에서는 한계가 있지. 나 나갔다 올 일도 많은데, 그때 엄마 돌볼 사람도 없잖아. 암튼 엄마는 겨울 동안 집에서 꿈쩍을 마셔야 돼. 그게 약값 줄여 돈 버는 거야.

엄마 아들, 아들한테만 일 시켜서 미안해. 근데 밥 먹고 나서 창문 열고 청소 좀 해라. 어제 세탁기 돌렸으면 꺼내서 옥상 빨랫줄에 널어야지 뭐했어? 세탁기 나오는 물로 화장실 청소 좀 하지 그 물 그냥 버렸어? 그리고 옥상 텃밭 좀 치워. 옆집에서 저 집 더럽게 산다고 손가락질하잖아. 아, 내일 정화조 청소차 들어온다고 하니까 뒤꼍 정리 좀 하고. 아들, 미안해.

뭐 미안하다면서 시킬 일은 다 시키네. 참나 어련히 알아서 할까봐 작업반장같이 그렇게 잔소리하고 싶어? 엄마 잔소리 보면 ‘와 이래서 시월드라는 말이 있구나’ 싶어. 아니 형수들한테는 그렇게 잘해주는 분이 아들은 완전 달달 볶네.

엄마 너도 하고 싶은 말 엄마한테 다 하는데, 나라고 못할 것 있니. 그나저나 너 전에 사귀던 아가씨 지금 뭐해?

왜 뜬금없이 그 친구 이야기를 꺼내?

엄마 네 나이가 올해 몇이니? 결혼 안 할 거야? 2세가 너무 늦잖아. 내가 그래도 힘이 있을 때 네가 애를 데려와야 봐주지. 그 아가씨 나한테 참 잘했는데…

누가 안 한대? 지금은 결혼이 문제가 아니고 엄마 잘 모시는 게 문제지. 결혼하면 엄마한테 신경 덜 쓰게 될 텐데 그래도 좋아?

엄마 엄마는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가 차려준 밥상을 받고 싶어.

엄마, 엄마 아들이 지금 며느리 노릇까지 하고 있잖아. 근데 왜 이리 밥을 못 드셔? 내가 한 반찬이 맛이 없어서 그래? 약 드셔야 하잖아?

엄마 아니. 내가 입맛이 없네. 나는 첫 숟갈에 입안이 꺼칠하다 싶으면 안 들어가잖아. 엄마 어렸을 때 네 외할머니가 먹을 게 없으니까 밀기울 얻어다가 죽을 썼는데, 그렇게 꺼칠해서 도통 먹을 수가 없었어. 거기다 밀가루 한 그릇만 넣으면 부드러워져서 그래도 먹을 만한데, 안 넣은 거야. 엄마가 안 먹고 있으면 네 외할머니는 외삼촌에게 죽을 퍼주면서 “저년은 배불러서 안 처먹는다”고 그랬어. 나중에 엄마 시집와서 한참 지나 그 얘기 하니까 외할머니가 “그때 왜 그런 얘기 안 했냐?”며 미안해하시더라고.

외할머니는 엄마 시집가기 전날까지 일 시켰다면서?

엄마 말도 마라. 당장 내일 새벽에 전남 벌교에서 경기도 양평으로 떠나야 하는데, 길쌈을 엄청 떠안기더라. 왜 그러셨는지 몰라. 나중에 외할머니에게 물어보니까 아무 말씀 안 하시고, 그냥 미안하다고 하시더라고. 그때 외할머니가 참 야속했는데, 지금은 네 외할머니 참 보고 싶어. 우리 엄마가 해주신 추어탕이 먹고 싶어. 미꾸라지 삶아서 절구에 빻고, 걸러서 끓여주시던 건데, 참 맛있었거든. 그거 생각나.

내가 추어탕 해드릴까? 근데 내 음식 솜씨로 미꾸라지 삶아서 요리하는 건 불가능해. 차라리 저녁때 추어탕 사올게. 근데 어쩌다 벌교 사람이 양평까지 시집가게 된 거야?

엄마 외할머니 쪽에 이모할머니가 있었는데, 그분이 소개했어. 없는 집 살림에 입 하나 빨리 줄이자고 열여덟에 시집보낸 거지. 네 막내이모 있잖아. 엄마랑 열살 터울 지거든. 시집가기 전날에 막내이모가 “성님 가지 마, 성님 가지 마” 하더라. 어찌나 마음이 짠하던지. 그래서 지금도 막내이모가 엄마한테 잘하잖아. 그런데 양평까지 왜 이렇게 머니. 새벽에 출발해서 그 다음날에야 도착했어. 제일 반겨준 건 네 할머니야. 나이 열여덟이 뭘 알겠어? 할머니가 “아가, 이리 와 보렴” 하면서 차근차근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는 거야. 시어머니는 참 잘 만났다고 생각을 했지.

아버지는? 아버지 첫인상이 어땠어?

엄마 무뚝뚝했어. 한번은 밭에서 일하는데 호미 좀 건네 달라는 게 “이놈 좀 주소” 했다고 굉장히 화내더라. 전라도에서는 물건을 ‘이놈, 저놈’ 하잖아. 그걸 남편한테 ‘이놈’이라 했다고 화내는 거야. 굉장히 무서웠어. 그래도 자상할 때도 있었는데, 술만 들어갔다 하면 성질부리는데, 아이고 밥상 들어엎기를 숱하게 했지. 서울 와서 자식들 만둣국 끓여놓은 밥상 뒤엎는데, 그거 주워 담으면서 내 속이 다 뒤집어지더라.

확 이혼해버리지 그랬어?

엄마 네 누나랑 똑같은 소리를 하네. 네 누나가 중3 때인가, 고1 때인가, 아버지가 술 먹고 하도 심하게 하니까 학교 가면서 “엄마, 이혼해” 하면서 울면서 뛰어가더라. 속이 너무 상했지. 네 아버지에게도 화가 났고. 그래서 ‘나도 술 한번 먹어보자’ 싶어 소주를 샀어. 반병 마셨는데, 아이고 세상이 뒤집어지는 거야. 이런 걸 왜 마시나 싶었는데, 참고 마시면 더 마실 수도 있게더라고. 그때 네가 옆에서 “엄마 술 먹지 마, 엄마 술 먹지 마”라고 말리지 않았으면 엄마는 지금 네 아버지처럼 술꾼이 됐을 거야.

뭐, 그럼 아들하고 같이 술 한잔하는 거였지. 근데 엄마도 그랬어? 요즘 고양이들(이름이 ‘아롱이’와 ‘다롱이’였는데, 어머니가 헷갈려 하면서 기억을 못해 이름을 바꿨다. 한 놈은 노란 빛깔이 고와 ‘노랭이’로, 다른 한 놈은 하도 밥 달라고 징징거려 ‘징징이’로 말이다) 밥 먹는 거 보면 왠지 뿌듯해. 엄마도 사남매 밥 먹는 거 보면 그랬어?

엄마 그렇지 않아도 너 없으면, 고양이들이 아빠 어디 갔는지 매번 찾더라. 그랬지. 그래도 너무 미안해. 부모 잘못 만나 잘 못 먹이고, 못 가르치고, 너는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네 큰형, 누나, 작은형 모두 대학 가고 싶어 했는데, 집안 형편이 그럴 수 없었잖아. 제일 미안한 건 큰형 밑으로 죽은 딸이야. 세살 때 죽었어. 연분이라고. 시골에서 아버지 돈 벌러 나가면 밭일해야 하는데, 애 둘을 다 데리고 갈 수 없었어. 네 큰형만 둘러업고, 작은애는 방 안에 두고 나갔지. 점심때 들어오면 기저귀가 젖다 못해 흘러서 애 발이 짓물러졌더라. 젖도 많이 못 줬어. 보리쌀도 없어서 풀 캐다가 죽 써 먹는데 젖이 나올 리가 없었거든. 연분이가 네 아버지를 참 잘 따랐어. 아버지 보면 “아부 아부” 하면서 반기는데, 그 무뚝뚝한 양반도 연분이를 참 예뻐했지. 애가 열이 나도 없는 살림에 읍내 병원을 데려갈 수가 있나? 그저 밤새 찬물로 작은 몸뚱이를 닦아줬지. 잠깐 물 갈러 갔는데, 아버지가 “연분아 연분아”라고 소리치면서 흐느끼는 거야. 연분이는 자기 죽는 거 엄마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그렇게 간 거야.

연분이 누나 모습 기억나? 뭐 벌써 50년 전 일이지만….

엄마 안 나. 그래도 그건 생각나. 네 아버지랑 연분이를 동네 어귀에 묻어 두고 왔는데, 네 큰형이 밤에 “엄마 연분이 데려와, 연분이 데려와” 하더라. 그때 네살 된 네 큰형도 동생 없어진 게 서러웠나봐.

엄마가 마음이 많이 아팠구나. 연분이 누나 모습은 기억나지 않아도 그때 그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는 걸 보면. 그래서 서울로 온 거야?

엄마 뭐 시골에서 먹고살기 힘들었기도 하고.

암튼 사남매 잘 키워줘서… 감사해… 항상…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도….

몇해 전 15년 동안 상근 활동하던 환경단체를 그만두고 시작했던 것 중에 하나가 ‘어머니 다큐’였다. 내 어머니가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그리고 어머니의 삶은 나와 가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한번 제대로 알고 싶은 생각에서 말이다. 핸드폰 또는 카메라로 어머니를 인터뷰했다. 처음엔 카메라를 들이대면 ‘뭐 하는 짓이냐’던 어머니가 어느새 당신 하고 싶은 말씀을 차분하게 다 하신다.

이 과정을 통해 어머니는 내 어머니를 넘어 없던 시절 고생했던, 자식들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살아왔던 우리들의 어머니의 모습으로 이해가 된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아이가 생긴다면 할머니가 어떤 분이셨고, 또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그 이야기를 보여줄 생각이다.

이철재/에코큐레이터·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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