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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젠 축구 못 하나요?” 둥지 잃은 청소년 외인구단

등록 2014-12-23 19:13수정 2014-12-23 22:07

강서FC 선수들이 서울 강서구 강서개화축구장에서 내년에 치러질 전국대회를 앞두고 겨울철 훈련에 땀을 흘리고 있다. 팀은 이 축구장을 빌리는 데 매달 100만원 정도를 내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A href="mailto:jijae@hani.co.kr">jijae@hani.co.kr</A>
강서FC 선수들이 서울 강서구 강서개화축구장에서 내년에 치러질 전국대회를 앞두고 겨울철 훈련에 땀을 흘리고 있다. 팀은 이 축구장을 빌리는 데 매달 100만원 정도를 내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클럽팀 강서FC, 합숙소 사라질 위기

“나쁜 짓은 다 해봤어요. 그런데 할 수 있는 게 축구밖에 없었어요. 갈 수 있는 곳도 여기밖에 없어요.”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있는 축구클럽 ‘강서에프시(FC)’의 공격수 조아무개(17)군은 두달 전 이 팀에 합류했다. 조군은 어머니 없이 아버지 손에 컸다. 아들을 축구선수로 키우고 싶었던 아버지는 경기 성적이 좋지 않으면 자주 매를 들었다고 한다. 18일 만난 조군은 “경기를 잘해도 칭찬해줄 사람이 없어서 외로웠다”고 했다.

185㎝의 큰 키에 축구 유망주로 꼽혔던 조군은 결국 공을 버리고 지난해 초 거리로 나왔다. 조군은 고시원에서 살며 하루 14시간 편의점·치킨집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았다. ‘튀어’ 보이려고 그렇게 모은 돈 400만원을 등에 문신을 새기는 데 쓰기도 했다. 지난 7월 무면허로 배달 오토바이를 몰다가 사고를 내 ‘소년범’이 됐다.

기초수급 가정·보육시설 출신 등
선수 18명 대다수가 형편 어려워
부상탓 선수꿈 접은 30대 감독이
자비 털어 적자 메우며 동고동락

대안학교 성지고가 숙소 내줬지만
서울시에 임대료 못 내 학교 이사중
감독은 새 둥지 찾지만 여의치 않아
“어디로 가든 끝까지 함께 축구할것”

조군을 방황의 늪에서 꺼내준 것은 다시 축구였다. 친구가 강서에프시에서 선수로 뛰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서울가정법원에서 연을 맺은 위기청소년 지원단체 ‘어게인’ 조호진 대표의 도움으로 조군도 이 팀에 둥지를 틀었다.

회비 한푼 낼 형편이 안 되는 조군을 거둬준 것은 이 팀의 젊은 감독 김경환(33)씨다. 고려대 축구선수로 뛰었던 김 감독은 부상으로 일찍 선수생활을 접고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해 8월 코치로 이 팀에 왔지만 곧 팀이 깨졌다. 남은 선수 3명을 데리고 선수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기초생활수급자, 보육시설 출신 등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고등학교 축구부에 있다가 합숙비를 내지 못해 쫓겨나거나, 강압적인 훈련 문화를 견디지 못해 제 발로 팀을 나온 학생도 있었다. 그렇게 조군을 포함해 18명이 모였다. 이들에게 김 감독은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 축구에만 집중하자”고 했다.

강서구 방화동에 있는 대안학교 성지고의 김한태(81) 교장이 이 팀의 딱한 사정을 듣고 지난 5월 비어 있는 2층짜리 건물을 합숙소로 내줬다. 김 감독도 살던 집을 내놓고 5000만원을 대출받았다. 3살배기 딸, 임신한 아내와 함께 합숙소 2층 ‘감독실’에서 생활한다. 한달 식대만 400만원이 들 정도로 먹성 좋은 학생들의 식사를 김 감독의 아내가 삼시세끼 챙긴다. 자비로 산 45인승 중고 버스는 김 감독이 직접 운전한다.

한달 합숙비를 완납하는 학생은 3명뿐이다. 축구장 대여료에 코치 월급 등 한달 적자만 400만~500만원에 이르는데도 김 감독은 “아이들이 성공해 나중에 다른 어려운 학생들을 도우면 그만이다. 아이들이 마음잡고 운동을 하니 기특하다”고 할 뿐이다.

김 감독의 마음은 통했다. 개성을 존중하고 강압적인 훈련 방식을 버리자 학생들은 신이 나서 운동장을 뛰었다. 주장 이영현(17)군은 “다들 운동할 땐 운동하고, 쉴 땐 쉬는 가족 같은 분위기라 축구가 재미있다. 친구들끼리 싸울 때를 빼면 감독님이 화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강서에프시 선수들은 모두 성지고 학생이지만, 팀은 성지고 축구부가 아닌 독립된 축구클럽이다. 강서에프시는 올해 고등학교 조별리그에서 3승을 거뒀다. 9개 팀 가운데 7위를 차지했다. 새로 꾸려진 팀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3학년 선수 가운데 진로를 바꾼 2명을 제외한 5명이 모두 축구로 대학 진학에 성공했다.

그런데 ‘위기 청소년’들을 붙잡아준 이 팀에 위기가 찾아왔다. 합숙소를 비워줘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김한태 교장은 “학생 수 감소로 등록금 수입은 줄어드는데 서울시에 내는 연 3억원 가까운 임대료를 댈 수가 없다. 화곡동 다른 교정으로 학교를 옮겨야 한다. 축구팀 사정이 안타깝지만 도울 방법이 없다”고 했다. 성지고는 22일부터 이사를 시작했다. 합숙소 건물도 곧 비워줘야 한다.

강서에프시의 선수 겸 학생들은 “선생님, 우리 이제 어디로 가요”라고 묻는다. 김 감독은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했다. 팀을 받아줄 새 둥지를 찾느라 바쁘다. 내년 2월부터 시작하는 전국대회를 대비한 동계훈련 준비까지 하고 있다. 김 감독은 “어디로 가든 학생들과 끝까지 함께 축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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